#도서제공

더 멀리의 시간, 더 큰 책임을 상상하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지구를 짊어지고 있고, 그 무게가 같은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게 된다고.

아마도 뾰족하기 그지없던 사춘기 시절의 생각이었던 것 같고,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무게를 짊어진 사람을 찾아 헤맸더랬다.

그리고 이제 반백년을 살아보니,

그 무게가 같으면 어떻고, 다르면 또 어떠하리 싶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묵묵히 버텨내면서 오늘을 걷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 곱씹는 것,

그게 어른다운 생각이 아닐까 한다.

《의젓한 사람들》

김지수 / 양양하다

이 책은 인터뷰집이다.

예술가, 작가, 철학자, 의사…

전혀 다른 배경의 14명이 ‘의젓함’이라는 화두에 각자의 삶으로 답한다.

도대체 ‘의젓함’이 무엇이길래.

낯선 제목,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김지수라는 이름 석자,

그리고 김기석 목사, 양희은, 진은숙, 박정민, 나태주, 플뢰르 펠르랭,

가마타 미노루 등 다양한 이름의 무게에 이끌려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을 여는 김기석 목사의

“무의미를 이기는 유일한 길은 고통받는 타자에게 다가서는 것”

이라는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야만 했다.

이 책은 “좋은 사람이 되어라”는 도덕적 강요와는 거리가 멀다.

‘각자 자기 슬픔의 우물만 길어 마시다 보면, 결국 그 깊은 데서 우리는 지하수맥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한마디가 오히려 나를 오래 흔들었다.

그동안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얼마나 의젓했나,

도움이 아니라 ‘함께 있음’으로 버텨준 적이 있었을까—

읽으면서 내내 돌아보게 된다.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한없이 나약해진다.

삶이 자꾸 무거워질 때마다, 이 책의 한 문장이 내내 곁을 지켰다.

‘고통과 시간, 인내와 책임이 인과관계의 실로 연결되어 있다.’

실패와 흔들림, 때로는 외면하고 싶은 순간조차도 자신의 몫을 떠안고 살아내는 사람들.

그 밑바닥엔 타인에 대한 책임, 윤리, 작은 덕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지수 작가가 삶에서 길어 올린 “윤곽이 분명한 언어”였다.

관념적 조언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한복판에서 건져올린,

아프게 하지만 정확하게 흔들리는 문장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필사를 해보기도 했다—

어떤 문장은 적어두지 않고서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인터뷰집이면서도 각 인물의 고민이 내 이야기처럼 닿았다.

오늘 당장 내게도 필요한 태도, 마음의 힘을 일으키는 질문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의 곁에

더 오래 머물고,

그들의 슬픔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고 있다.

같이 묻고 싶은 질문

삶에서 내가 선택한 '가치 있는 고통'은 무엇일까?
‘타자에게 의젓한 존재가 되어보라’는 말을 내 삶에 진짜 적용한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의젓함이란, 꼭 대단한 도덕 명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용기, 책임, 그리고 참을성일지도 모른다.

《의젓한 사람들》은 버티는 것조차 고된 시대에

“그래도 우리는, 누군가의 구원 서사가 되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에 작은 책임의 빛—

‘의젓함’이라는 조그만 언어를 하나 더 보태게 됐다.

한줄평

더 멀리의 시간, 더 큰 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의젓함”이라는 인간의 태도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


#의젓한사람들
#김지수인터뷰집
#양양하다#책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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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엄마와 함께 가는 미술관 여행 - 아이와 꼭 한 번 가봐야 할 미술관 12
최미연(미대엄마) 지음 / 로그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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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처음 미술관에 들어섰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조용한 전시장, 그림 앞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 그리고 혹시 우리 때문에 누군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하던 저 자신까지. ‘완벽한 준비’와 ‘정답’을 찾아 헤맸지만, 그보다는 아이와 나란히 작품 앞에 선 그 순간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미대엄마와 함께 가는 미술관 여행》이 가만히 일깨워주었습니다.

책에는 미술관 노하우나 정보도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엄마와 아이가 각자의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경험, 그리고 그 감상을 따로 또 같이 기록해보는 ‘미술관 노트’의 제안을 따라가며 일상이 조금 더 특별해진다고 느꼈어요. 아이가 “이건 왜 예뻐?”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어?”라고 묻는 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오히려 함께 상상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되어 갑니다.

사실 어린아이와 미술관을 찾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도 있어 속상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용히 그림을 즐기며 자기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흐뭇해집니다. 언젠가 “나도 그림작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하던 아이의 말처럼, 미술관은 우리 가족에게 꿈과 추억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장소가 되고 있어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여유가 있습니다. 엄마가 완벽할 필요도,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겠다는 부담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것. 미술관이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조차 따뜻한 위안이 되어줍니다. 아이와 함께 미술관 여행을 시작하고 싶은 모든 부모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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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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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감자껍질로 파이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2차 대전 중 독일 점령지였던 건지 섬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독특함은 전체가 편지글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작가 줄리엣이 건지 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북클럽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통금시간에 걸린 사람들이 급조해낸 '문학 토론회'라는 변명이 어떻게 진짜 북클럽이 되었는지, 책을 읽지 않던 어부와 농부들이 어떻게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편지 한 통 한 통으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직접 보지 못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만 들여다보는 독서 경험이 새롭다.
각 인물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개성과 성장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처음엔 책 읽기를 짜증내던 도시가 "셰익스피어 없이는 못 살겠다"고 고백하는 편지, 전쟁의 상흔으로 웃음을 잃었던 아이슬라가 제인 오스틴 덕분에 유머를 되찾았다는 이야기, 목숨을 걸고 책을 구하러 다녔던 암벨리아의 용기까지. 이들에게 북클럽은 단순한 독서모임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안전망이었다. 책이 사람을 연결하고, 삶을 편집해주는 힘을 이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핑계로 시작된 일이 언제부터 진심이 되는지, 우연한 만남이 어떻게 삶을 바꿔놓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감자껍질로 만든 파이 한 조각을 나누며 책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충분히 상상되는 따뜻한 소설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문학과 연대의 힘으로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편지글 형식이 주는 특별한 감동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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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의 엣지 워커 - 한계를 넘어 성장하는 커리어 리포트
이윤학 지음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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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워커(Edge Worker)’라는 제목부터 예리한 이 책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에서 자산운용사 대표까지 커리어를 확장해온 저자 이윤학의 실전 전략을 담고 있다. 그는 말한다. “평균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도, 하나쯤은 완전히 평균을 뛰어넘는 필살기가 필요하다”고. 그 말 앞에서 멈칫했다. 영어교육, 문헌학, 그림책 큐레이션. 나에게도 엣지가 있기는 한데, 밥이 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저자가 제안하는 4단계 전략―상장하기, 펀더멘털 다지기, 내재가치 높이기, 상승 모멘텀 그리기―는 명료하고 논리적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대부분 '조직'이라는 플랫폼 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조직 바깥에서, 특히 인문학이나 창작 기반의 엣지를 키우는 이들에게는 창의적 해석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엣지를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저자의 경험이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라는 점이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원치 않는 발령과 성과 없는 시도, 좌천 같은 우여곡절을 통해 엣지를 다듬어온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더한다. 삶의 전략을 그리는 데 실용적인 도구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나만의 엣지를 연결하고 확장할 방향을 고민 중이라면, 이 책은 충분히 실속 있는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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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의 생일 스콜라 창작 그림책 99
레베카 스테드 지음, 그레이시 장 그림, 염혜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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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진짜 내 소원도 아빠가 들어줄까?” 이사 첫날, 낯선 공간 앞에 선 아이는 속으로 묻는다. 낮은 미끄럼틀도, 파란 욕조도 없는 302호에서 아이는 말하지 않은 진짜 소원을 가슴에 품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리움과 불안을 꾹 눌러 담는다.

《302호의 생일》은 뉴베리상 수상 작가 레베카 스테드와 에즈라 잭 키츠상 수상 작가 그레이시 장의 만남으로 탄생한 그림책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그림과 텍스트가 조화를 이루며 진심을 전한다. 아빠는 아이가 말한 세 가지 소원을 다 들어준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아이가 말하지 않은 그 소원까지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아빠의 마음이다.

이 책은 단지 아이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직장, 새로운 관계 앞에서 흔들리는 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을 잃고 낯선 것과 마주해야 할 때, 누구나 302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말한다. “괜찮다. 천천히 해도 된다. 누군가는 곁에서 기다려줄 거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변화를 지나고 있는 어른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그림책. 《302호의 생일》은 무엇보다 '기다림의 온기'가 어떻게 마음의 색깔을 바꿔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변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한 응원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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