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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25년 6월
평점 :
#도서제공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감자껍질로 파이를 만든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2차 대전 중 독일 점령지였던 건지 섬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소설의 독특함은 전체가 편지글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작가 줄리엣이 건지 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북클럽의 진짜 이야기가 펼쳐진다. 통금시간에 걸린 사람들이 급조해낸 '문학 토론회'라는 변명이 어떻게 진짜 북클럽이 되었는지, 책을 읽지 않던 어부와 농부들이 어떻게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편지 한 통 한 통으로 재구성해가는 과정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직접 보지 못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만 들여다보는 독서 경험이 새롭다.
각 인물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개성과 성장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처음엔 책 읽기를 짜증내던 도시가 "셰익스피어 없이는 못 살겠다"고 고백하는 편지, 전쟁의 상흔으로 웃음을 잃었던 아이슬라가 제인 오스틴 덕분에 유머를 되찾았다는 이야기, 목숨을 걸고 책을 구하러 다녔던 암벨리아의 용기까지. 이들에게 북클럽은 단순한 독서모임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안전망이었다. 책이 사람을 연결하고, 삶을 편집해주는 힘을 이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핑계로 시작된 일이 언제부터 진심이 되는지, 우연한 만남이 어떻게 삶을 바꿔놓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감자껍질로 만든 파이 한 조각을 나누며 책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충분히 상상되는 따뜻한 소설이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문학과 연대의 힘으로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편지글 형식이 주는 특별한 감동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