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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이 화제에 놓였다. 고교생때 대학병원에서 전문의학논문을 써 수시전형으로 대학진학을 하고, 낙제를 하고도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붉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예전 정유라가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것도 다르지 않다며, 각 대학에서 학생시위는 물론이고, 수시전형이 고위층 자녀들의 입시비리의 온상이라며 폐지를 촉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이어지는 실태이다. 얼마 전 방영을 마친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드라마상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삐뚤어진 자식 사랑과 과열된 입시경쟁이 만들어낸 비리를 주제로한 추리소설이 있다. 국내에서 이미 보증받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 살인사건>이다. 이 작품은 무려 2002년 출간작으로 최근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좋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손해만 볼 거라고 한 건 엄마잖아.
나쁜 짓을 하고 돈을 받는 공무원도 도쿄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역시 도쿄대학을 나온 다른 공무원이나 경찰이 감싸주니까
형무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지.
이 세상은 출세한 사람이 최고잖아.‘
- “우리에겐 진실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날 밤, 네 쌍의 부부가 없앤 진짜 흔적은 무엇일까?
네 가족과 한 명의 학원 강사가 호숫가 별장으로 모인다. 그들은 자식들을 명문학교에 보내겠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친분을 쌓아가던 끝에, 사립학교입시를 위한 합숙과외까지 시작한 것이다. 평소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던 슌스케도 아들과 아내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이 합숙에 참여하게 된다. 별탈 없이 아이들의 공부에만 신경쓸 줄 알았지만, 이 고요한 호숫가 별장에서 별안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슌스케의 아내가 그를 찾아온 비서를 살해한 것이다.
슌스케는 자신의 비서와 내연의 관계를 가졌다. 한편으로는 아내 역시 누군가와 바람을 피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 전직 흥신소직원이었던 비서에게 아내의 뒤를 조사하라 지시했고, 비서는 서류를 가져준다는 핑계를 대고 별장까지 찾아온 것이다. 비서는 슌스케와 근처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슌스케는 별장에서 피투성이로 쓰러진 비서를 발견한 것이다. 아내는 내연녀인 비서가 이혼을 요구하자 발끈해 우발적으로 스탠드로 내리쳐 살인을 저지른 것을 고백하고, 남편인 슌스케는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오히려 다른 부부들이 의기투합해 시체를 유기하자고 제안하는데... 가족도 친구도 아닌 네 쌍의 부부가 공범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추악한 욕망, 더러운 비리,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은 진실이 떠오른다!
- ‘과열된 입시경쟁과 비리’, 지금 읽어도 이질감 없는 소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재밌게 봤다면 적극추천!
간혹 유명작가들의 예전 작품이 더 좋은 경우를 발견하곤 한다. 아마 이 작품역시 그렇다고 느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수의 작품을 출간하고 다양한 소재로 끊임없이 활동 중이다. 그의 모든 작품이 출간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두터운 팬층을 가진 대중적인 작가인데, 그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은 ‘재밌다’라고 평가하지만, 오래 전부터 봐온 독자는 ‘예전만 못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2018년 출간작인‘살인의 문’같은 경우는 평점이 7점대까지 떨어졌다. 본인은 아직이라 평을 못하지만). 그래서 인지 최근 비채, 현대문학, 알에치케이, 제인에서 예전 작품을 리커버해 개정판으로 출간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2002년 작품으로 게이고의 오래전 작품이다.
하지만 예전작품이라서 결과가 뻔히 예상된다든지, 사회적 통념과 동떨어져 공감요소가 부족하다든지, 클래식 추리소설처럼 꼼꼼하게 읽어야하고 느리게 진행된다든지 하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속도감 넘치는 진행, 놀라울 만한 반전, 누구(범인)에 집중하기보단 왜(동기)에 집중하는 점, 인물하나하나의 성격과 속사정이 독자가 충분히 납득하고 이입될 만 한 감정적 요소를 가진다는 점까지 두루갖춰져 있다. 물론 여기에 하나 더해 우리사회에 여전히 문제시 되고 있는 ‘입시과열에 따른 비리’까지 넣어 사회파 추리소설로서의 면모 또한 갖추었다.
이 작품은 현 입시제도의 문제, 스와핑 부부 문제, 현대 가족의 붕괴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부모자식간의 끈끈한 정과 깨져버릴 것 같던 관계들이 가족이라는 둘레 안에서 치유와 재생을 맞이하도록 유도한다. 다른 말은 않겠다. 읽어보라 ‘적극’ 추천한다! 입시비리와 바람난 부부, 살인마저도 공조해야하는 비정상적인 관계 등 자식의 성공을 향한 부모의 비틀린 사랑과 부부지만 치정관계가 엮인 비정상적인 욕정들이 판치지만, 그런 막장에도 안타까움과 나름 공감되는 휴머니즘이 있는 본격과 사회파가 섞인 추리소설이니, 지금 읽어도 전혀 후회없을 작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