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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상실사
청얼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영화 <색계>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시대상의 이유로 암살을 계획해야만 했던 학생 항일운동가인 여인과 그 여인의 암살목표인 친일파 핵심인물이자 정보부 대장인 한 사내의 사랑이야기이다. 배경은 1930년대와 40년대 홍콩과 상하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중국 특유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화면풍경과는 다르게, 인간의 음모, 배신, 사랑, 욕정들이 뒤엉킨 색(色:욕정,본능)과 계(戒경계,이성)의 이야기이다. 여기, 색계와 같이 풍랑의 시대에 인간사를 욕망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있다. 영화 <라만대극소망사>의 원작소설이자, 중국 천재 영화감독 칭얼의 데뷔작인 <로맨틱 상실사>이다. 폭풍 전야와 같은 30년대 상하이, 사랑이 있지만 비정했고, 뜨거웠지만 냉정했던 로맨스가 상실된 시대를 만나보자.
‘가끔 손님이 돌아가고 난 뒤 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올 때
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그가 측은해 못 본 척하려고 했지만 흘러내린 눈물에 상처가 젖을까 봐
손수건으로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닦아주다가 그녀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그만큼이나 괴로웠다.
그녀는 날마다 십자가를 향해 어서 빨리 그의 몸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며칠에 한 번씩은 그의 몸이 다 나은 뒤 자신을 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 중국의 천재 영화감독 청얼, 낭만과 상실을 이야기하다!
장쯔이, 거요우 주연 영화 <라만대극소망사> 원작 소설은?
이 책은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인어][여배우][닭][영계][몸의시편][로맨틱상실사][세번째x군], 이 이야기들은 두 파트로 나눠볼 수 있는데, [여배우][영계][로맨틱상실사]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진행되며 [인어][닭][몸의시편][세번째x군]은 각박하고 음울한 현대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이 단편들은 단편이면서도 연작형태를 띄는데, 그것은 각 편에 등장하는 인물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표작인 [로맨틱 상실사]는 1930년대 일본침략과 정치 이념간에 대립으로 어지러웠던 시대에 조직의 이인자로 추앙받던 두선생과 사교계의 꽃으로 사랑받아온 샤오류가 사랑도 몸도 잃어버리고 깡패와 창녀로만 여겨지는 이야기이다. [여배우]는 30년대 상하이, 아름다운 외모로 여배우로 성공한 여인이 재벌가의 첩이 되지만, 본처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후에 새 사랑을 찾아 연하의 남편을 만나지만, 폭력을 일삼은 한량같은 남편 때문에 권력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를 따라 떠나지만 여전히 외로움과 향수를 떨치지 못한 이야기 이다.
<로맨틱 상실사>는 격랑의 시대를 살아내는 인간 군상이 담긴 뜨겁고도 쓸쓸한 7편의 연작 소설이다. 단조롭고 건조한 문체로 이어지며, 몇몇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스토리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분위기나 감정에 치우치는 소설이다. 기승전결 서사구조가 없이, 열린 결말이 내려지거나 저자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주제가 명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읽고 독자 스스로 탐색해야하는 소설들인데, 이 소설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영화 <색계>처럼 욕정과 사랑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아름답다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닌, 음울하고 비정하고 차갑고 쓸쓸하다는 점이다. 낭만과 화려함의 도시 상하이, 하지만 섬세한 만큼 서슬 퍼런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는 이야기. 만약 행운보다 비운을, 환희보단 염세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읽어보자. 읽다보면 30년대의 풍랑의 시대에 이성이 무너지고 본성이 떠오르지만 그 본성이 이성보다 차갑게 식어버린 ‘로맨틱’을 상실한 시대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