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의 태양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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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출간하는 책을 보면, 장르소설이 단순 재미만이 아닌 수준이상의 작품성을 요구할 때가 많다. 대표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만 봐도 그렇다. 쉽게보면 SF추리소설 형태를 띄지만, 그의 작품은 과학, 철학, 신학, 역사 등 다방면의 소재와 배경이 혼재되어 있어 재미는 있지만 편하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그런 작가의 소설을 출간하는 열린책들에서 이번에는 스페인 추리소설을 출간한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범죄 스릴러에 강한 영미나, 서늘한 서스펜스 스릴러에 강한 북유럽 풍과는 다르다. 스페인 특유의 풍경과 지방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스페인 북동부의 포도나무와 치자꽃이 있는 목가적인 풍경, 그곳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가족사와 가톨릭 교리의 비리는 무엇일까?


소설가 마누엘과 동성 배우자 알바로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자신들만의 사랑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별 문제없이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각자의 일에 충실한 이 부부에게 뜻밖의 사고가 일어난다. 출장을 간 줄로만 생각한 알바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어느날, 경찰이 마누엘을 찾아왔고 그의 배우자인 알바로가 갈라시아 지방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처음에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마케팅회사로 출장간 남편의 말을 믿어 잘못 소식이 전해진거라 생각했지만, 곧 경찰의 말이 사실임을 알게되고, 마누엘은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다.

마누엘은 배우자의 장례와 상속문제 때문에 갈라시아 지방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태껏 자신이 알아온 연인의 모습이 가짜 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의 배우자는 외톨이가 아닌 피를 나눈 가족이 있었고, 그 지방의 손꼽히는 후작가문의 상속자였고, 그의 형제와 와인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마누엘은 동성 배우자인 자신을 숨겼으며 자신의 과거를 거짓으로 감춘 배우자에게 배신감과 슬픔을 느낀다. 결국 모든 사실을 안 마누엘은 그의 배우자가 남긴 유산을 포기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러나 알바로의 죽음과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이 가문의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조사하던 경찰 노게이라가 이 사건은 교통사건이 아닌 살인사건이라는 말을 전하는데...

이야기는 마누엘이 자신의 동성배우자인 알바로의 죽음의 진실을 추적하는 추리스릴러 소설이다. 상당히 두꺼운 페이지와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니만큼 장르적 재미가 반감될까 우려한 부분이 있었지만, 읽다보면 알바로의 죽음과 동시에 그 가문에 일어난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되짚어 보면서 진실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이야기 형태는 단조롭지 않아, 끝까지 긴장감을 잘 유지한다. 이야기는 상류사회의 비정함과 종교사회의 추악함이 얽힌 모호한 인간심리와 어두운 가족사와 그 내막을 파헤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그 속에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은 전통적 사회적 인식, 막대한 유산과 거대한 빚, 가문의 명예와 교리의 특권, 의문스러운 자살과 사고사가 뒤엉켜 진실에 가까워진다. 이국적이고 자연을 머금은 풍경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한 가문의 충격과 치명적인 진실. 기품있고 강렬한 스페인 추리소설을 맛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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