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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평점 :
2016년 하루 주연의 일본드라마 <ON 이상범죄수사관 토도 히나코>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사건 정보를 일러스트로 그리면 절대 잊지 않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인 여형사 토도 히나코가 잔혹범죄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의 추리드라마이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이 출간된다. 읽는 내내 혼다 테츠야의 <스트로베리나이트>, 데이비드 발다치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떠오른다. 인간의 악의와 광기를 괴기스럽게 표현해내는 살인사건현장, 그리고 그 현장 한 가운데 서있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이자 초보형사인 토도 히나코. 과연, 그녀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모습으로 자살한 범죄자들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무섭지 않으세요?... 유령이라든가.”
사신여사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야, 가끔씩 나왔구나 싶은 경우가 있지.”
“정말 있나요?”
“있지. 하지만 무섭지는 않아. 난 더욱 무서운 것을 보고 있는 몸이라
초자연 현상 따윈 귀여운 수준이야. 그 사람들을 그런 모습으로 만든 건
유령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 악의는 치가 떨릴 정도로 시신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을 감염시킬 만큼 강력해.”
-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같은 방식으로 자살하는 범죄자들
과연 그들의 죽음은 속죄로 인한 자살인가, 복수에 의한 살인인가?
도도 히나코는 범죄사를 검거하는 형사를 꿈꿨지만, 배속된 후 실상 참여하는 업무는 서류작업이다. 매일하는 내근업무가 사건일지를 정리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사건을 접하게되는데, 특이한 건 그녀에게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각종 미제사건을 그림화해 기억하는데 이런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게된다.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 본 고참형사 간씨는 자신이 담당하는 자살사건에 히나코를 참여시키고, 히나코는 첫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사건의 피해자는 택배업에 종사하던 청년 미야하라, 그는 스토커와 성폭행 혐의로 세 번 검거된 이력을 가졌다. 이런 그가 자신의 방에서 입에는 속옷을 물고, 항문에는 콜라병을 꽂은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또한 사건 현장에 남은 스마트폰에는 사건 당시의 상황이 영상으로 녹화되어 있다. 하지만 범인의 모습이나 흔적은 발견할 수 없고, 부검결과는 자살로 판명난다. 자살처럼보이기도 타살처럼보이기도 한 사건. 이 미스터리한 사건이 채 풀리기도 전에 연이어 괴상한 ‘잔혹자살사건’들이 발생하고, 이 사건들은 자살자들이 생전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같은 형태로 사망했다는 점과 현장에는 생생한 녹화영상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과연 도도 히나코는 이 괴상한 잔혹사건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호러 미스터리 대상 독자상을 수상한 작가 나이토 료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다. 또한 인기 여배우 하루가 주연을 맞은 동명의 일본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보통 ‘독자상’을 수상받거나, 원작소설이 영상으로 제작 방영되는 작품들은 일정 이상의 재미를 보증하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잔혹 미스터리지만 ‘대중적인 재미’를 지닌 작품이다. 보통 잔혹범죄물은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혐오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째서 나이토의 <온-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는 혐오감보단 재미로 다가오는 걸까?
잔혹범죄물을 언급하면, 혼다 테쓰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범죄형태, 최악의 공포감을 선사하는 범죄자들의 악의를 너무도 실감나게 묘사한다. 세상에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나이토 료의 <온> 역시 그러하다. <온>에 등장하는 미해결범죄사건들은 하나같이 오컬트 현상처럼 특색있는 잔혹함을 선보인다. 자신에 방에서 음부에 콜라병을 쑤셔 넣은 자살하거나, 교도소 독방에서 머리를 벽에 찧어 자살하거나, 자신의 목에 개 목걸이를 걸고 옷에 불을 붙여 자살하거나 하는 범죄자들. 독자들의 상상넘어의 기괴한 살해방식은 상상한다면 혐오감이 들겠지만, 그것들을 상쇄하는 것이 있다. 주인공 도도 히나코의 공감과 성장이다.
과거의 범죄자들(현재의 자살자들)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그들이 저지른 사건들을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도도 히나코는 사람들의 악의에 공포감을 보이기도하고,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공감해 슬퍼하기도 한다.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캐릭터라면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묘사되는 게 보통이고, 여형사하면 남자들의 세계인 형사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강인함으로 묘사되는게 일반적이지만, 도도 히나코는 인간적이고 어수룩하게 비춰진다.(모든 음식에 고향 특산 고춧 양념을 넣는 괴짜적인 면모도 있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필히’읽어보자! <스트로베리나이트>처럼 형사계에서 분투하는 카리스마 여형사와 <모든것을기억하는남자>처럼 트라우마를 가진 외로운 남형사는 아니지만, 충격적인 살인사건의 잔혹함과 혐오감을 덜어줄, 천재적이고 괴짜적이지만 감성적인 매력캐릭터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