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 - 재치 있는 시골귀족 돈키호테 데 라만차, 개정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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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인구에 비해 작은 편이고, 출판사-단행본-도 상위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영세합니다. 21세기의 요체는 창조력이고, 이를 위해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는 있지만 변죽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대안은 사실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책을 안 읽어도 학교 시험 보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대학교 가는 데도 별 문제 없고, 좋은 곳에 취업하는데도 걸림돌이 안 되니,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볼 필요가 있겠는지요?

 

일본만 해도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많고, 책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까지 아직 활발해서 작가도 얼마든지 글을 써 생활이 가능하고, 유명 작가의 경우 수입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주 극소수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는 본업인 글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 투잡, 쓰리 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느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문화적으로 예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설만 해도 일본 소설이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양과 우리나라 소설이 일본에 판매되는 양은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10배는 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디오 시대에, 손안의 휴대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인간은 점점 생각을 하기 싫어하고 모든 것은 단순화, 파편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걸 막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뿐입니다.

 

출판 시장이 작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언어로 한 번 번역된 것을 또 다시 번역해 펴내는 것입니다.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할 정도로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 작업이 두 번씩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처음의 모습과는 당연히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요즘 뜻있는 출판사들에서 완역본이 출간되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입니다.

 

또 하나 양이 많은 소설의 경우 독자들이 안보니, 완역본이 아닌 임의대로 양을 대폭 줄여 책을 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원래의 책과는 전혀 다른 줄어든 책이 원래 책의 전부인 줄 착각하게 됩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5권짜리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줄여서「장발장」으로, 「파리의 노트르담」을 줄여「노틀담의 꼽추」 1,600 페이지가 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확 줄여 얇은 책 하나로 펴내는 일 등입니다.

 

희곡에서 셰익스피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소설에서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의 비중은 근대 소설의 효시라고 불릴 정도로 막대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정신 나간 기사와 종자인 산초 판사가 나오는 우스개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세르반테스는 당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 소설에 대항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에 크게 감명 받았던 그는 반종교 개혁 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 왕조의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 왕국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가 없어, 기사 소설 형식을 빌어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해 당시 사회를 비판한 것입니다.

 

실상 기사도 얘기만 제외하면 돈키호테는 시집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익은 교양인이자 지성인으로 아주 분별력 있는 인물입니다. 산초 판사는 머리가 약간 아둔한 농부라고 나오지만, 지혜로운 말도 종종 하고, 사리 판단이 아주 빠른 인물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요, 산초 판사는 현실주의자인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가지 면들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만큼 더 감정이입해서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와 사랑을 대변하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둘은 멋진 콤비인 셈입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음에도 인간은 평등하고 사람들의 능력에는 차이가 없다는 얘기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얼마나 혁명적인 사고입니까?

 

그래서 세르반테스는 자기의 책이 문제가 되어 종교 재판에 회부될까 두려워 1권 2부부터 자기의 글이 아니고 아랍 역사학자의 글이라고 수차례 밝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만 700페이지가 넘습니다. 하지만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사건마다 메시지가 분명하고 흥미로워, 아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공통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 둘이 1616년 4월 23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사망했다는 겁니다. 우연치고는 참 대단한 우연입니다.

 

다른 하나는 두 사람 다 정규 교육을 조금밖에 받지 못하고 독학을 했는데, 너무 뛰어난 글을 쓰다 보니 후대 사람들이 “이런 뛰어난 글을 저런 형편없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절대 쓸 수 없다. 분명 숨은 실제 저자가 따로 있을 것이다.”라고해서 위작 논란이 벌어진 작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타고난 천재 이야기꾼 「돈키호테」속으로 힘차게 발을 들여놓아 보시겠습니까?

 

 

<책속 구절>

 

더구나 다른 책들을 보면, 암만 황당무계하고 조잡한 것이라도,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기타 온갖 철학자들로부터 인용을 해서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해박한 독서와 지식과 구변이 있다는 명성을 가져다주고 있으니 말이야. 더욱이 성경을 인용할 때는 정말 놀랍지!

 

그대가 돈이 많을 때에는 많은 친구를 헤아릴 수 있으나, 시절이 암담해지면 그대는 홀로 남으리라.

 

남의 인생에 대해 논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마라.

 

역사는 진실의 어머니이며 시간의 그림자이자 해위의 축적이다. 그리고 과거의 증인, 현재의 본보기이자 반영, 미래에 대한 예고인 것이다.

 

편력 기사도에 대해 말하자면 흔히 사랑을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즉 만물은 평등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깨지지 않으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명예와 정절은 영혼을 더욱 더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니, 이런 것이 없는 육체는 비록 아름답더라도 아름답게 보일 수 없는 법입니다.

 

저는 처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모욕이라도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우지 못할 기억이란 없는 법이며, 또한 죽음이 희석시키지 못할 고통도 없다.

 

행운이라는 것은 숱한 불행 속에서도 빠져나갈 여지를 주기 위해 한 쪽 문을 열어놓고 있는 법이란다.

 

두려움의 효력이 바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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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버락 오바마 자서전
버락 H.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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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장미 대선을 앞두고 이슈를 쫒는 게 업인 방송사나 신문사는, 5년에 한 번 있는 큰 대목을 맞아 연일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합니다. 좀 적당히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정녕 모르는 것인지 저의 그런 바람은 안타깝게도 그냥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네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눈을 떠 보니 세상은 온통 순백의 하얀색이었습니다.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백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몸을 보니 하얀 색이 아니고 검은색입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도 새까맣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이는 그게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대선을 앞두고 어수선한 시점에, 문득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어떤 인물일까 생각해보고 싶어져, 8년 전 읽었던 한 정치인의 자서전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입니다. 그는 재선까지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국정을 잘 수행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습니다.

 

2009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사 본 책인데, 사람들은 이름만 알뿐 실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이 책은 그가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으로 선출된 것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출판사의 제의로 쓰게 된 자서전입니다.

 

책은 1부 뿌리 : 어린 시절부터 컬럼비아 대학교까지, 2부 : 대학교를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2년 만에 그만두고, 시카고에서 흑인들을 위해 빈민 운동을 하던 시기, 3부 : 케냐 : 아버지의 나라인 케냐를 방문해 친척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느낀 얘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 되고서도 연설 담당 비서가 있지만, 본인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작성된 연설문은 꼭 읽어보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한다는 기사를 접해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연설은 메시지가 분명하고,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의 복잡한 가족사가 참 정신없긴 하지만, 사건 전개가 아주 디테일하고 표현력과 묘사가 아주 뛰어나 700 페이지가 넘는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는 독서를 통한 풍부한 교양과 글쓰기를 통해 다져진 그의 내공을 엿보게 합니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사람은 첫째는 어머니이고, 둘째는 아내입니다.

 

얼마 전 재미난 방송을 보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화이트 하우스와 우리나라 청와대를 비교한 내용입니다. 화이트 하우스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손쉽게 접근 가능한 유기적인 구조라 수시로 만나 얘기하고 국정 전반을 논의할 수 있는 구조인데, 청와대는 완전히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구조더군요.

 

세상은 민주주의가 된지 오래인데, 청와대만은 봉건 영주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든 대통령만 되면 세상과 멀어지고 불통이 되어, 청와대에 유폐가 되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새롭게 대통령이 되는 분은 국민과 참모, 국회와 소통하고 국가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꼭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청와대 공간 주조를 바꾸어 참모들과 소통하고, 국민들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청와대의 모습도 변화되길 기대해 봅니다.

 

<책속 구절>

 

너는 네 아버지에게 배워야 할 게 있어. 자신감이야. 이거야말로 남자가 성공할 수 있는 비밀이 열쇠지.

 

흑백 결혼. 이 말은 어쩐지 추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세상은 거칠었다. 예상할 수도 없고, 때로는 잔인하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육이었다. 그녀는 나를 잘 가르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다.

 

존경심은 자기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상대방을 물리치기 위해서 온갖 말들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거면 아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누구든 내가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감정, 예를 들면 마음의 상처나 두려움 따위를 나 몰래 훔쳐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 등이 그때 내가 배운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악마를 보든 구원의 천사를 보든 상관없이, 상대방은 언제나 원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다.

 

버락, 우리는 우리 일에 신경을 쓰고 우리 자신만 돌보면 돼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이거요. 흑인은 진짜 적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걱정하는 한심한 인간들이라니까요.

 

정치가 자기들의 생활을 더 낫게 해줄 거란 기대를 많은 사람들이 일찌감치 접었다. 그래서 정치에 큰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투표용지는 어떤 행사의 입장권일 뿐이었다.

 

어떤 집단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뒤에 떨어뜨려야 하는 위험성이 뒤따른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보통 가장 좋은 교정 작업이지. 때로 나는 식민주의가 저지를 가장 나쁜 짓이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한 게 아닐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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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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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5년 전에 처음 접한 그의 소설은 「마음」이란 작품이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제 가슴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중국에만 올인하다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의 문학 작품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지 깊이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나라 사이의 간극은 얼마만큼 벌어져 있는 것일까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1905년 소세키가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로 있다 펴낸 처녀작인데, 최초로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가 ‘조용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는 것 ’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가장 기발한 소재이면서 유머와 위트가 넘쳐 정말 재미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 못지않은 식견과 호기심을 지닌 페르시아산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주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삽니다. 얼마나 기발한 착상이고, 발칙한 고양이입니까?

 

중학교 영어 선생인 고양이 주인인 진노 구샤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는 수준이 아주 높고 개성이 넘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농담」이나「불멸」처럼, 당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소세키의 박학다식함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영특한 고양이가 호기심에 맥주 먹고 취해 항아리에 빠져 죽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참 걸작입니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평온함을 얻는다.

평온함을 죽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기쁘고 기쁜지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참된 평온은 죽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소세키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존재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스스로 자신을 대입해 돌아보고 생각하게끔 만드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도련님」 같은 작품은 성격이 많이 틀려 읽는 재미가 있어, 그의 작품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입문서가 되기에 좋은 책들입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발칙하고 멋진 고양이를 만나러 가보시겠습니까?

 

<책속 구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인간이란 것이 자신의 역랭을 자만하여 우쭐거리는 게 보통인데, 인간보다 좀 더 센 것이 나타나 버릇을 들여야지, 안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우쭐거릴지 알 수 없다.

 

인간이라는 거, 겉만 멀쩡하지 속은 도둑이야 도둑.

 

아직 이름은 없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으니까 평생 이 선생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 작정이다.

 

주인의 마음은 내 눈동자처럼 쉴 새 없이 변한다. 뭘 해도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고를 거치지 않은 안락은 없다.

 

요컨대 주인이나 메이테이 선생이나 간게쓰 군이나 세상을 등진 백수건달, 그들은 바람 부는 대로 수세미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초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세속적인 명예욕도 있고 욕심도 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얼룩이 같은 미인은 박명하고, 못생긴 도둑고양이는 펄펄하게 살아 장난질을 하고.

 

비밀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로군. 아무리 숨겨도 어디선가 들통이 나니 말일세.

 

나는 고양이로서 진화의 극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뇌 역시 중학교 3학년생 못지않게 발달했으나, 그래도 어디까지나 고양이인지라 목구멍의 구조가 인간과 달라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

 

평범이란 좋은 것이지만, 평범의 극치에 이르면 오히려 가엾기 짝이 없다.

 

예와 무례는 서로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도 어떤 사업가 집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돈을 벌려면 삼무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군. 도리를 모르는 무도. 인정을 모르는 무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 이렇게 삼무 말일세.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신하면 당사자의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남이 처한 곤경이 그 편한 마음 덕에 소멸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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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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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직접 투자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주식 투자 관련 기본 용어 중에 저평가, 고평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평가는 기업이 갖고 있는 가치에 비해 주식 가격이 낮음을 이르는 말이고, 고평가란 반대로 기업 가치에 비해 주식 가격이 비싼 경우를 말합니다.

 

문학에도 이런 개념을 대입해 보자면 개인적으로 대표적인 고평가 작가가 미국에는 스콧 피츠제럴드, 일본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냥 흔한 상업 작가일 뿐인데, 이상하게 언론도 우호적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입니다.

 

만약 피츠제럴드가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만큼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됩니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흔히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를 꼽는데, 세 작가 책을 모두 읽어본 독자로서 냉정히 평가해 보자면, 여러 가지 면에서 피츠제럴드는 무게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소문과 달리 별 감흥이 없어, 단편집도 사서 한 번 읽어 봤는데, 읽다가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았는데,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작품은 해설자인 데이지의 먼 사촌 오빠이자 증권맨인 닉의 회상에 의해 진행됩니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데이지는 가난한 장교였던 개츠비를 떠나 갑부이자 난봉꾼인 톰과 결혼합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여자를 잊고 그냥 포기하고 말텐데, 개츠비는 보통 인물이 아니어선지 부자가 되기 위해, 당시 금주로 황금알을 낳던 사업이었던 밀주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다음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곳에 저택을 구입하고,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옆집에 살아 친해진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애정 없는 결혼을 한 데이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리 없다는 건 뻔한 일이니까요.

 

한편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의 만남을 알아채고, 자신은 유부녀인 머틀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도 화를 내며 데이지에게 개츠비의 부의 출처와 학력 등을 폭로합니다.

 

데이지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며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 머틀을 치어 즉사하게 만듭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낸 사고를 자신이 했다고 뒤집어 쓰지만, 데이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톰의 품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톰은 머틀의 남편인 윌슨에게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하고 자살합니다.

 

전 소설 제목인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이란 의미가 반어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한창 무르익던 1920년대 미국 사회라지만 불법인 밀주 사업으로 부자가 된 개츠비의 행위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한 천박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츠비가 인생을 바친 데이지란 여자가 알고 보면 여인이 상류층에 예쁘기만 할뿐 실제로는 아무런 자기 주관이나 가치관, 지조가 없는 여자입니다. 허울뿐인 이런 여자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자기 목숨까지 버린 개츠비란 남자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래서 저는 제목 자체가 우매한 개츠비를 꾸짖기 위해 위대하다고 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페르미노 다사란 한 여자를 둔 두 남자의 사랑이지만 자기 주관도 뚜렷하고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는 너무 비교되는 인물 설정입니다.

 

 

<책속 구절>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 사이에서 지능이나 인종의 차이는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녀는 내가 가난했던 탓에 기다리다 지쳐서 당신과 결혼한 것뿐이요. 그건 아주 큰 실수였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거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개츠비는 부가 가둬 보호해 주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풍기는 신선함,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데이지가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은처럼 빛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데이지는 어려고, 그녀의 인위적인 세계는 난초 향과 쾌활하고 명랑한 속물근성 냄새로 가득했으며, 삶의 비애와 암시를 새로운 곡조에 담아 그해의 리듬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생각나게 했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출신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왠지 동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어떤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그래요, 아는 또 다른 서툰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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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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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을 읽고 나면 인상에 남은 구절을 노트북에 타이핑해 두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 책을 또 읽는 재미에 빠져 그것마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는 시간 낭비라고 무시했던 소설, 희곡, 시 등 문학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많이 읽으려고 노력 하고 있고, 모자라는 기억을 조금이나마 오래 가져가고자 책 앞장에 많은 메모를 해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서평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평이란 건 참 쓸데없는 짓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책이란 건 본인이 직접 읽어서, 이해하고 느끼고 깨달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니까요. 특히 시라는 장르는 더 그러해서 꼭 본인이 직접 느껴야 하고,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참 무모한 일이자 도전입니다.

 

마종기 시인은 시인이자 미국에서 의사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입니다. 한 가지 일도 하기 쉽지 않은데, 투 잡을 참 멋있게 소화해 온 셈이죠.

 

그의 부친은 일본 유학파로 아동 문학가이자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마해송 선생이고,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무용가인 박외선 선생입니다. 부모의 예술적인 유전자가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진 것입니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선집으로 이 책에는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총 5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직접 자기 시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시뿐만 아니라 시인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시인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가서 산 줄 알았는데, 군사 정권이던 1960년대 군의관 시절에 정치적인 활동으로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열흘간 정치범으로 구금되어 있었는데, 충격으로 아버지는 매일 폭음을 하셨고, 과음으로 인한 뇌줄중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2살 아래 남동생도 10년간 기자 생활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형이 있는 미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잡화점 하면서 잘 지냈는데, 10년 후 강도에게 총격을 당해 죽게 됩니다.

 

시집 제목인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콜레라 시대의 사랑」인데, 여주인공 페르미노 다사에 대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시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국과 먼저 간 아버지와 남동생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의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쓴 시도 그에게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겉모습만 볼 때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직업에 시인이라는 명예까지 갖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실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를 읽는 독자와 시인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시는 현란한 기교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고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담히 풀어 놓습니다. 좋은 시가 많지만 널리 알려진 시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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