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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5년 전에 처음 접한 그의 소설은 「마음」이란 작품이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제 가슴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중국에만 올인하다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의 문학 작품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지 깊이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나라 사이의 간극은 얼마만큼 벌어져 있는 것일까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1905년 소세키가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로 있다 펴낸 처녀작인데, 최초로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가 ‘조용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는 것 ’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가장 기발한 소재이면서 유머와 위트가 넘쳐 정말 재미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 못지않은 식견과 호기심을 지닌 페르시아산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주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삽니다. 얼마나 기발한 착상이고, 발칙한 고양이입니까?
중학교 영어 선생인 고양이 주인인 진노 구샤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는 수준이 아주 높고 개성이 넘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농담」이나「불멸」처럼, 당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소세키의 박학다식함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영특한 고양이가 호기심에 맥주 먹고 취해 항아리에 빠져 죽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참 걸작입니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평온함을 얻는다.
평온함을 죽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기쁘고 기쁜지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참된 평온은 죽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소세키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존재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스스로 자신을 대입해 돌아보고 생각하게끔 만드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도련님」 같은 작품은 성격이 많이 틀려 읽는 재미가 있어, 그의 작품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입문서가 되기에 좋은 책들입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발칙하고 멋진 고양이를 만나러 가보시겠습니까?
<책속 구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인간이란 것이 자신의 역랭을 자만하여 우쭐거리는 게 보통인데, 인간보다 좀 더 센 것이 나타나 버릇을 들여야지, 안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우쭐거릴지 알 수 없다.
인간이라는 거, 겉만 멀쩡하지 속은 도둑이야 도둑.
아직 이름은 없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으니까 평생 이 선생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 작정이다.
주인의 마음은 내 눈동자처럼 쉴 새 없이 변한다. 뭘 해도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고를 거치지 않은 안락은 없다.
요컨대 주인이나 메이테이 선생이나 간게쓰 군이나 세상을 등진 백수건달, 그들은 바람 부는 대로 수세미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초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세속적인 명예욕도 있고 욕심도 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얼룩이 같은 미인은 박명하고, 못생긴 도둑고양이는 펄펄하게 살아 장난질을 하고.
비밀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로군. 아무리 숨겨도 어디선가 들통이 나니 말일세.
나는 고양이로서 진화의 극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뇌 역시 중학교 3학년생 못지않게 발달했으나, 그래도 어디까지나 고양이인지라 목구멍의 구조가 인간과 달라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
평범이란 좋은 것이지만, 평범의 극치에 이르면 오히려 가엾기 짝이 없다.
예와 무례는 서로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도 어떤 사업가 집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돈을 벌려면 삼무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군. 도리를 모르는 무도. 인정을 모르는 무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 이렇게 삼무 말일세.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신하면 당사자의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남이 처한 곤경이 그 편한 마음 덕에 소멸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