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버락 오바마 자서전
버락 H.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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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다음 달 장미 대선을 앞두고 이슈를 쫒는 게 업인 방송사나 신문사는, 5년에 한 번 있는 큰 대목을 맞아 연일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합니다. 좀 적당히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정녕 모르는 것인지 저의 그런 바람은 안타깝게도 그냥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네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눈을 떠 보니 세상은 온통 순백의 하얀색이었습니다.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백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몸을 보니 하얀 색이 아니고 검은색입니다. 거울을 보니 얼굴도 새까맣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이는 그게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대선을 앞두고 어수선한 시점에, 문득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어떤 인물일까 생각해보고 싶어져, 8년 전 읽었던 한 정치인의 자서전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입니다. 그는 재선까지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국정을 잘 수행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습니다.

 

2009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사 본 책인데, 사람들은 이름만 알뿐 실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이 책은 그가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으로 선출된 것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출판사의 제의로 쓰게 된 자서전입니다.

 

책은 1부 뿌리 : 어린 시절부터 컬럼비아 대학교까지, 2: 대학교를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2년 만에 그만두고, 시카고에서 흑인들을 위해 빈민 운동을 하던 시기, 3: 케냐 : 아버지의 나라인 케냐를 방문해 친척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느낀 얘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 되고서도 연설 담당 비서가 있지만, 본인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작성된 연설문은 꼭 읽어보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수정한다는 기사를 접해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그의 연설은 메시지가 분명하고,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의 복잡한 가족사가 참 정신없긴 하지만, 사건 전개가 아주 디테일하고 표현력과 묘사가 아주 뛰어나 700 페이지가 넘는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는 독서를 통한 풍부한 교양과 글쓰기를 통해 다져진 그의 내공을 엿보게 합니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사람은 첫째는 어머니이고, 둘째는 아내입니다.

 

얼마 전 재미난 방송을 보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화이트 하우스와 우리나라 청와대를 비교한 내용입니다. 화이트 하우스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손쉽게 접근 가능한 유기적인 구조라 수시로 만나 얘기하고 국정 전반을 논의할 수 있는 구조인데, 청와대는 완전히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구조더군요.

 

세상은 민주주의가 된지 오래인데, 청와대만은 봉건 영주를 연상시켰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구든 대통령만 되면 세상과 멀어지고 불통이 되어, 청와대에 유폐가 되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새롭게 대통령이 되는 분은 국민과 참모, 국회와 소통하고 국가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꼭 선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청와대 공간 주조를 바꾸어 참모들과 소통하고, 국민들도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청와대의 모습도 변화되길 기대해 봅니다.

 

<책속 구절>

 

너는 네 아버지에게 배워야 할 게 있어. 자신감이야. 이거야말로 남자가 성공할 수 있는 비밀이 열쇠지.

 

흑백 결혼. 이 말은 어쩐지 추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세상은 거칠었다. 예상할 수도 없고, 때로는 잔인하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육이었다. 그녀는 나를 잘 가르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였다.

 

존경심은 자기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상대방을 물리치기 위해서 온갖 말들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거면 아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누구든 내가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감정, 예를 들면 마음의 상처나 두려움 따위를 나 몰래 훔쳐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사실 등이 그때 내가 배운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악마를 보든 구원의 천사를 보든 상관없이, 상대방은 언제나 원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뿐이다.

 

버락, 우리는 우리 일에 신경을 쓰고 우리 자신만 돌보면 돼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이거요. 흑인은 진짜 적에 대해서만 신경을 쓰고 걱정하는 한심한 인간들이라니까요.

 

정치가 자기들의 생활을 더 낫게 해줄 거란 기대를 많은 사람들이 일찌감치 접었다. 그래서 정치에 큰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투표용지는 어떤 행사의 입장권일 뿐이었다.

 

어떤 집단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뒤에 떨어뜨려야 하는 위험성이 뒤따른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보통 가장 좋은 교정 작업이지. 때로 나는 식민주의가 저지를 가장 나쁜 짓이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한 게 아닐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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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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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입니다. 5년 전에 처음 접한 그의 소설은 마음이란 작품이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제 가슴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습니다.

 

중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중국에만 올인하다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어,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본의 문학 작품에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지 깊이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나라 사이의 간극은 얼마만큼 벌어져 있는 것일까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년 소세키가 동경대학 영문과 교수로 있다 펴낸 처녀작인데, 최초로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가 조용히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는 것 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가장 기발한 소재이면서 유머와 위트가 넘쳐 정말 재미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 못지않은 식견과 호기심을 지닌 페르시아산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주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삽니다. 얼마나 기발한 착상이고, 발칙한 고양이입니까?

 

중학교 영어 선생인 고양이 주인인 진노 구샤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는 수준이 아주 높고 개성이 넘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농담이나불멸처럼, 당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소세키의 박학다식함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영특한 고양이가 호기심에 맥주 먹고 취해 항아리에 빠져 죽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참 걸작입니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평온함을 얻는다.

평온함을 죽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기쁘고 기쁜지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참된 평온은 죽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소세키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인간의 존재나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스스로 자신을 대입해 돌아보고 생각하게끔 만드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련님같은 작품은 성격이 많이 틀려 읽는 재미가 있어, 그의 작품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입문서가 되기에 좋은 책들입니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발칙하고 멋진 고양이를 만나러 가보시겠습니까?

 

<책속 구절>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바,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인간이란 것이 자신의 역랭을 자만하여 우쭐거리는 게 보통인데, 인간보다 좀 더 센 것이 나타나 버릇을 들여야지, 안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우쭐거릴지 알 수 없다.

 

인간이라는 거, 겉만 멀쩡하지 속은 도둑이야 도둑.

 

아직 이름은 없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으니까 평생 이 선생 집에서 이름 없는 고양이로 살 작정이다.

 

주인의 마음은 내 눈동자처럼 쉴 새 없이 변한다. 뭘 해도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이다.

 

인고를 거치지 않은 안락은 없다.

 

요컨대 주인이나 메이테이 선생이나 간게쓰 군이나 세상을 등진 백수건달, 그들은 바람 부는 대로 수세미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초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세속적인 명예욕도 있고 욕심도 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얼룩이 같은 미인은 박명하고, 못생긴 도둑고양이는 펄펄하게 살아 장난질을 하고.

 

비밀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로군. 아무리 숨겨도 어디선가 들통이 나니 말일세.

 

나는 고양이로서 진화의 극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뇌 역시 중학교 3학년생 못지않게 발달했으나, 그래도 어디까지나 고양이인지라 목구멍의 구조가 인간과 달라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

 

평범이란 좋은 것이지만, 평범의 극치에 이르면 오히려 가엾기 짝이 없다.

 

예와 무례는 서로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도 어떤 사업가 집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돈을 벌려면 삼무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는군. 도리를 모르는 무도. 인정을 모르는 무정.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 이렇게 삼무 말일세.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는 죄가 없다고 자신하면 당사자의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남이 처한 곤경이 그 편한 마음 덕에 소멸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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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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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직접 투자는 해 본 적이 없지만, 주식 투자 관련 기본 용어 중에 저평가, 고평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평가는 기업이 갖고 있는 가치에 비해 주식 가격이 낮음을 이르는 말이고, 고평가란 반대로 기업 가치에 비해 주식 가격이 비싼 경우를 말합니다.

 

문학에도 이런 개념을 대입해 보자면 개인적으로 대표적인 고평가 작가가 미국에는 스콧 피츠제럴드, 일본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그냥 흔한 상업 작가일 뿐인데, 이상하게 언론도 우호적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입니다.

 

만약 피츠제럴드가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만큼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됩니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흔히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를 꼽는데, 세 작가 책을 모두 읽어본 독자로서 냉정히 평가해 보자면, 여러 가지 면에서 피츠제럴드는 무게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소문과 달리 별 감흥이 없어, 단편집도 사서 한 번 읽어 봤는데, 읽다가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았는데,

 

소설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작품은 해설자인 데이지의 먼 사촌 오빠이자 증권맨인 닉의 회상에 의해 진행됩니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데이지는 가난한 장교였던 개츠비를 떠나 갑부이자 난봉꾼인 톰과 결혼합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여자를 잊고 그냥 포기하고 말텐데, 개츠비는 보통 인물이 아니어선지 부자가 되기 위해, 당시 금주로 황금알을 낳던 사업이었던 밀주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다음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데이지의 집이 보이는 곳에 저택을 구입하고,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옆집에 살아 친해진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의 만남을 주선하고, 개츠비와 데이지는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애정 없는 결혼을 한 데이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리 없다는 건 뻔한 일이니까요.

 

한편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데이지와 개츠비의 만남을 알아채고, 자신은 유부녀인 머틀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도 화를 내며 데이지에게 개츠비의 부의 출처와 학력 등을 폭로합니다.

 

데이지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하며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다 머틀을 치어 즉사하게 만듭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낸 사고를 자신이 했다고 뒤집어 쓰지만, 데이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톰의 품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톰은 머틀의 남편인 윌슨에게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려,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하고 자살합니다.

 

전 소설 제목인 위대한 개츠비위대한이란 의미가 반어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한창 무르익던 1920년대 미국 사회라지만 불법인 밀주 사업으로 부자가 된 개츠비의 행위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잘못 이해한 천박한 자본주의이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츠비가 인생을 바친 데이지란 여자가 알고 보면 여인이 상류층에 예쁘기만 할뿐 실제로는 아무런 자기 주관이나 가치관, 지조가 없는 여자입니다. 허울뿐인 이런 여자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자기 목숨까지 버린 개츠비란 남자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래서 저는 제목 자체가 우매한 개츠비를 꾸짖기 위해 위대하다고 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페르미노 다사란 한 여자를 둔 두 남자의 사랑이지만 자기 주관도 뚜렷하고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는 너무 비교되는 인물 설정입니다.

 

 

<책속 구절>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남자 사이에서 지능이나 인종의 차이는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차이처럼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녀는 내가 가난했던 탓에 기다리다 지쳐서 당신과 결혼한 것뿐이요. 그건 아주 큰 실수였지만 그녀는 마음속으로 나 말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거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개츠비는 부가 가둬 보호해 주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풍기는 신선함,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데이지가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은처럼 빛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데이지는 어려고, 그녀의 인위적인 세계는 난초 향과 쾌활하고 명랑한 속물근성 냄새로 가득했으며, 삶의 비애와 암시를 새로운 곡조에 담아 그해의 리듬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생각나게 했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출신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왠지 동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어떤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그래요, 아는 또 다른 서툰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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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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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을 읽고 나면 인상에 남은 구절을 노트북에 타이핑해 두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 책을 또 읽는 재미에 빠져 그것마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는 시간 낭비라고 무시했던 소설, 희곡, 시 등 문학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많이 읽으려고 노력 하고 있고, 모자라는 기억을 조금이나마 오래 가져가고자 책 앞장에 많은 메모를 해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서평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평이란 건 참 쓸데없는 짓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책이란 건 본인이 직접 읽어서, 이해하고 느끼고 깨달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니까요. 특히 시라는 장르는 더 그러해서 꼭 본인이 직접 느껴야 하고,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참 무모한 일이자 도전입니다.

 

마종기 시인은 시인이자 미국에서 의사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입니다. 한 가지 일도 하기 쉽지 않은데, 투 잡을 참 멋있게 소화해 온 셈이죠.

 

그의 부친은 일본 유학파로 아동 문학가이자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마해송 선생이고,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무용가인 박외선 선생입니다. 부모의 예술적인 유전자가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진 것입니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선집으로 이 책에는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총 5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직접 자기 시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시뿐만 아니라 시인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시인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가서 산 줄 알았는데, 군사 정권이던 1960년대 군의관 시절에 정치적인 활동으로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열흘간 정치범으로 구금되어 있었는데, 충격으로 아버지는 매일 폭음을 하셨고, 과음으로 인한 뇌줄중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2살 아래 남동생도 10년간 기자 생활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형이 있는 미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잡화점 하면서 잘 지냈는데, 10년 후 강도에게 총격을 당해 죽게 됩니다.

 

시집 제목인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콜레라 시대의 사랑인데, 여주인공 페르미노 다사에 대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시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국과 먼저 간 아버지와 남동생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의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쓴 시도 그에게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겉모습만 볼 때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직업에 시인이라는 명예까지 갖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실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를 읽는 독자와 시인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시는 현란한 기교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고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담히 풀어 놓습니다. 좋은 시가 많지만 널리 알려진 시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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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열린책들 세계문학 143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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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EBS에서 총 5회에 걸쳐세계문학기행-문학의 길을 걷다라는 아주 좋은 프로를 방송했는데, 그때 등장한 작가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세익스피어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성은 아주 높지만-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작품성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가 들어간 것은 이해가 안 되지만, 나름대로 방송사에서 기준을 갖고 선정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다른 위대한 작가에 비해 중량감이 좀 떨어져 보이는 제인 오스틴이 들어있는 것을 주목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200년도 지난 그녀의 작품이 여전히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시종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뛰어난 가독성으로 시차를 전혀 느끼지 않는 데 있습니다.

 

소설은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란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19세기 초의 시대 상황을 감안해보면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에게는 아내가 그냥 보조적인 충분조건이지만, 사회 활동이 없는 여자에게는 남편은 꼭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19세기 초 런던 교외 시골 마을에 상류층인 부자 빙리씨가 이사를 오자 그는 본의 아니게 화제의 중심이 되고,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다섯을 둔 중산층 베넷 부인도 내심 자기 딸의 사윗감으로 그를 욕심내게 됩니다.

 

소설 속엔,

 

가장 예쁘고 착한 첫째 딸 제인과 빙리

예쁘고 활달하며 자기 소신이 뚜렷한 둘째 엘리자베스와 다시

 

철부지 막내딸 리디아와 속물 위컴

엘리자베스 친구인 루카스와 콜린스 목사

 

이렇게 네 커플의 사랑과 결혼이 나오는데 시대는 변했지만 요즘과 비교해도 사랑과 결혼의 조건이 그리 다르지 않은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막 시작된 19세기 영국에서 결혼에 있어 소수인 상류층에게는 가문과 교양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 이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입니다. 외모, 신분, 교양, 집안, 직업 등은 단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다 못해 터질 지경인 21세기 우리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이 결혼인데,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훨씬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동시성을 갖는 것이겠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목인 오만(pride)은 남자 주인공인 다시를 상징하는데, 자부심이 지나치면 오만이 됩니다. 편견(prejudice)은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를 상징하는 단어인데, 적을 땐 별문제 없지만 지나치면 허상을 보게 됩니다. 다시와 엘리자베스는 각자의 색안경을 벗어던지자 상대가 온전히 보이게 되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젊었을 때 예쁘고 성격 좋아 보이는 데 그만 혹해서 분별력 없고 속 좁은 여성과 결혼해, 가정의 행복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시골에서 책에만 몰두하며 살아왔습니다.

 

젊을 때는 누구나 이런 오판을 하기 쉽고, 한번 잘못된 선택은 물리기도 어려워 평생 후회하고 마는 경우가 되기 싶습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시 잘생기고 언변 좋은 군인 위컴에게 속아, 땅을 치고 후회할 뻔 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의 겉모습에 취해 다시의 본모습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잠시 학교에 다녔지만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20대 초반에 가문은 훌륭하지만 재산은 없던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집안의 반대로 둘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그 후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습니다.

 

이런 아픈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연애와 결혼을 주제로 줄곧 소설을 쓰게 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에는 똑똑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 항상 등장하는데 아마도 작가 자신이 투영된 인물일 것입니다. 또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소설이란 매체를 통해 이룬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남자 주인공 다시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해 집안의 수치가 되는 철부지 막내를 위해, 함께 도망간 위컴의 막대한 빚을 몰래 갚아 주고, 직장까지 알아봐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현실적으로는 좀 무리가 설정입니다.

 

아무리 백마 탄 기사라도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서 여자 쪽 집안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준다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만과 편견은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가득한데다 쉽게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 영화나 드라마로 변신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줄곧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인기는 줄곧 계속 되리라 생각합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연애나 데이트 관련 잡지나 가벼운 에세이 읽을 시간에 이런 좋은 책 한 권 익는 것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훨씬 더 큰 안목과 생각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책속 구절>

 

우리 나이가 되면 정말이지 매일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란다. 하지만 너희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도 없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길로 확실히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다.

 

메리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못생긴 까닭에 지식과 교양을 쌓고자 무척 노력했으며 늘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숙녀들의 상상력은 너무 속도가 빨라요. 칭찬이 곧 사랑으로, 사랑은 곧 결혼으로 건너뛰고.

 

정말 교양을 갖추었다는 말을 들으려면 그 여성은 음악, 노래, 그림, 춤 그리고 외국어에 완벽한 지식을 갖추어야 해요. 여기에 폭넓은 독서를 통해 정신을 계발해서 실질적인 내면도 갖추어야지요.

 

여성들이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술책은 모두 야비한 데가 있지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신속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자랑스러워하지. 그 행동에 결함이 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독서의 기쁨만 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책 말고 다른 건 금방 싫증이 나버리죠! 내 집을 갖게 됐을 때 훌륭한 서재가 없다면 비참할 거예요.

 

허영은 정말 약점이지요. 하지만 자부심은 진정 우월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잘 통제할 겁니다.

 

결국 자부심에서 모든 행동이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자부심이 종종 그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건 훌륭한 일이예요.

 

엘리자베스가 보기에 가족들은 그날 밤 가능하면 자기네 망신스러운 면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모든 청혼을 거절할 작정이라면, 결혼은 절대로 못하게 될 거다. 그러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누가 너를 먹여 살린단 말이냐?

 

나는 사랑이 아니라 허영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졌어. 처음 그 사람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이 보이는 호감에 우쭐해지고 다른 사람이 보이는 무시에는 화가 난 나머지 편견과 무지를 추종하고 이성을 쫓아버렸던 거야.

 

제가 늘 관찰해 온 바가 있는데 그건 어릴 때 착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착하다는 겁니다.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그리고 남편을 우월한 존재로 우러러 보지 않으면, 너는 행복할 수도 없고 남에게 떳떳할 수도 없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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