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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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한 때 미친 사랑을 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나보다 아홉 살 많았는데, 그녀를 위해선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고,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지금 죽는데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미친 광적인 사랑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 존재하는가보다.

 

1917년 일본에 시골 부농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전기 기사로 일하고 있는 모범생 타입의 스물여덟 살 조지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한 술집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는 열다섯 살 먹은 서구적 외모를 지닌 나오미라는 여자를 만나 좋아하게 된다.

 

그는 결혼에 대해서만은 격식을 싫어하고 간단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오미에게 돌봐줄테니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그녀가 동의하고, 그녀 집에도 허락을 얻어 함께 살게 된다. 당시 조지의 생각은 그녀가 그가 바라는 대로 자라준다면 결혼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16살에 양가 부모 동의를 얻어 법적으로 둘을 부부가 되지만, 나오미가 아직 어려 생활에 불편할까봐 주변 사람들에게 부부임을 굳이 알리지는 않고 지내게 된다.

 

그런데 나오미가 자라면서 육체적으로는 조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고도 남지만, 정신적으로는 영 그렇질 못하자 조지는 많이 실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조지는 점점 더 나오미의 육체에 탐닉하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예속되게 된다.

 

나오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치가 심해지고 조지 몰래 여러 남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일삼게 되고, 나중에 이를 알게 되어 실망한 조지는 호기롭게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면서 매춘업소를 운영하는 집의 딸이란 천한 출신은 어쩔 수 없다는 뒤늦을 한탄을 한다.

 

하지만 나오미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지내는데, 조지는 금방 후회하고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폐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조지는 백기를 들고 나오미와 다시 함께 살게 되지만, 모든 주도권은 나오미가 쥔다는 조건하에서다. 조지는 나오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가는 생활을 하지만. 그것도 조지는 고마워한다. 왜냐하면 나오미와 결별했을 때의 그 무서운 경험이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계속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보는 내내 인간의 육체적 탐닉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본성이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걸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반(1917~1925) 일본 젊은이가 향유하는 문화-영화, 음악, 사교댄스 등-가 유럽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세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인의 서양(서양인)에 대한 동경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20세기 초에 이런 주제의 소설이 나올 수 있는 일본 문화의 저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생각합니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한테 정복당한 것도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차츰 저항력을 빼앗기고 구슬림에 넘어가고 말았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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