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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강압적인 어머니의 품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기자가 되었는데, 그가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교 때 교지 만든 경험과 뛰어난 글 솜씨 덕분이었다.
그 후 파리 특파원이 되어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작가 수업을 했고, 드디어 27살이던 1926년에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로 ‘길 잃은 세대’의 대표 작가로 떠오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발표이후 10년 넘게 그가 별다른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의 작가 생명은 이미 끝났다고 수근거렸다.
이 소설을 쓸 당시 그는 52살이었는데 젊었을 때 투우, 사냥, 낚시 등 각종 야외 활동으로 그의 몸은 이미 쇠약해져 있었고 성인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여기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새 작품을 써야한다는 압박감은 그를 점점 더 괴롭혀 우울증과 알콜 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그는 젊었을 때처럼 “나 용감함의 대명사, 헤밍웨이야.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며 세상에 멋지게 한방을 날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이 듦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멋진 인물이 탄생했는데, 그가 바로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이다.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하는 노인은 부인과 사별한 뒤 판자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무려 84일 동안이나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 어부로서의 자존심이 상한 건 물론이고 당장 생존이 곤란한 위기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다 망망대해에서 85일 만에 큰 물고기가 걸려 사흘 동안 생사를 건 기나긴 투쟁을 벌여, 그는 드디어 물고기를 잡아 기쁜 마음으로 항구를 향해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은 불청객 상어가 나타나 조금씩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힘들게 겨우 한 마리 물리치면 다른 상어가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총 다섯 마리의 상어가 모두 사라질 즈음 그에겐 머리와 꼬리만 달린 앙상한 뼈만 남은 물고기를 매달고 항구에 돌아오게 되고, 집에 와서는 죽음과 같은 긴 잠에 빠진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며 이전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더 성숙되고, 자연과 교감하며 공존을 이루는 멋진 인물을 그는 창조해 낸 것이다.
그렇게 그는 시합이 다 끝나가던 9회 말 투아웃 상태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날려,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더 세상에 떨치며 조용히 스러져 갔다. 그가 바로 헤밍웨이다.
그의 무덤 옆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그는 무엇보다도 가을을 사랑하였다. 미루나무 숲의 노란 잎사귀들, 송어가 뛰노는 냇물에 흘러가는 잎사귀들, 그리고 저 언덕 너머의 높푸르고 바람 없는 하늘을. 이제 그는 영원히 이런 풍경과 하나가 되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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