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조건

나에게 이 책은
○각 절마다 저자가 말하는 결론을 분명하게 밝힌 책.
○주제에 맞는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인용한 책.
○철학적 사변보다 제작인의 행위에 철학적 역사적 의미를 두는 책.
○다 읽기를 서두르지 않고 각 절을 여러번에 걸쳐 반복해 읽어 이해하려 애쓰니 저자가 하고자 하는 얘기에 공감해서 좋았던 책.
○노동하는 동물로서 인간이 위치하는 사회적 모습의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책.

1장.인간의 조건
활동적 삶이라는 인간의 근본활동을 나타내는 것은 노동 작업 행위이다. 이 활동은 인간실존의 조건과 연관되어 있으나 인간본성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중세에 활동적인 삶은 정치적 삶이고 이 말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인 삶이지 질서지어진 관계 속에서 형식지어진 삶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작업과 노동이 인간활동의 위계에서 부상하여 존엄성을 획득하고 관조만이 자유로운 삶이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활동적 삶이 인간에게 관조를
필요로 하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지나치게 관조에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은 활동적인 삶의 포괄적인 원리 없이는 질서도 확립될 수 없고 한편 인간의 핵심적인 지위 역시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멸성과 영원성의 차이를 회상해보면,
모든 자연에서 유일하게 죽을 운명인 개별적 인간은 - 개별적 삶이 다른 것과 구별 되는 것은 그것이 직선적 운동의 과정을 가진다는 점이다.즉 생물학적인 순환운동의 삶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산출하는 작업 행위 언어의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 있다. 이것을 통해 불멸적인 행위업적과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능력에 스스로를 신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확증한다. 사유적으로는 자신을 기록하지 않는 관조 또는 명상이 영원한 것의 경험을 서술한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인간이 만든것에 대한 가멸성을 증명했고 개인의 영원한 삶을 복음 설파하는 기독교에서도 증명되었다.
2장.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
4. 인간적 삶은 행위가 인간의 배타적 특권이고 고유한 능력이다. 이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회적이다. 이렇게 정치적 조직체를 갖춘 인간의 능력은 이성과 언어를 가진 동물이란 정의로 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5.고대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분은 분명하다. 가정의 자연적 공동체는 필연성의 산물이며 모든 활동은 그 지배를 받는다. 이 필연성은 전정치적 현상으로서 모든 인간은 예속되어 있고 타인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폴리스는 평등만을 고려하여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의미한다.
근대에 사회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구별은 덜 선명해지고 정치의 사회적 기능화로 가계 또는 경제 활동이 공론 영역으로 부상하게 되어 집단적 관심으로 되었다. 이러한 사적영역의 확장은 중세도시의 직업조직체의 길드에까지 올라가 결합가정으로서 공동선은 사적인 이해에 공적인 의미를 갖는 중간영역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좋은 삶이란 공적 영역으로 들어가 가정의 삶의 필연성을 지배하고 노동과 생산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생존에 대해 갖는 내적 충동을 극복하는 것이다.
6.사회의 출현은 가계가 공적 영역의 밝은 곳으로 이전된 것을 말한다. 근대 개인주의에서 사생활은 풍부해지고 사회적 영역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고대의 군주제적 일인지배는 사회적 평균화를 구가하는 경향에서 대중이 지배하는 익명의 지배로 변형되었다.
이런 사회적 순응주의는 경제학에도 기인하여 인간활동의 제한된 영역의 연구에서 인구증가의 타당성 증대와 편차 감소로 인한 사회적 요소가 기술적으론 통계의 일률성을 지향하며 사회과학이 주도적 학문으로 바뀌었다.
사회가 탄생하고 사회적 영역은 사적 발전이 중요해지고 공동체는 노동자와 직업인의 사회로 변형시켰다. 노동의 공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노동의 탁월성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할 수 있었다. 공론 영역은 인간의 탁월성을 발휘하는 장소가 되었다.
7.공적이란 용어는 첫째 우리가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듣는 타인의 현존으로 인하여 우리는 세계와 우리 자신의 실재성을 확인하는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이고 우리가 사적인 소유지와 구별되는 세계 자체를 의미한다.
세계의 영속성은 죽을 운명인 인간에게 공론 영역의 공공성만이 우리가 시간의 자연적인 파멸로부터 보존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수용하여 수세기에 걸쳐 빛을 발할 수 있다.
불멸을 추구하고 보증 받는다는 것은 공적 존재로서 공적 우월성을 획득하여 공적 찬사를 받는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시간의 파괴로부터 구해지는 공적 공간을 구성하지 못하고 가장 무용한 금전적 보상이 더욱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객관성 과는 달리 공론 영역의 실재성은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동일한 것을 볼 경우에만 나타날 수 있다. 만약 같은 대상에 관심을 갖는 대상의 동일성이 해체 된다면 공동세계는 파괴되고 사적으로 되어 모두 자신들의 고유한 경험의 주관성에 갇히게된다.
8. 본래 `박탈된`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 이라는 용어는 시대가 지나가면서 제한된 가정의 삶이라는 박탈감은 사라지고 사적 소유가 공론 영역과 대립하지 않으며 정치적 조직체에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사적으로 소유한 세상에서 시민의 추방은 재산의 몰수가 아니라 시민권의 박탈이라는 파괴를 의미했고 이것은 가정의 내부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고 공론 영역으로 이어지는 외관이었다. 가정 영역은 가정과 가정의 경계선을 통해서 공론 영역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 경계선은 법률로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공공 영역의 울타리였던 것이다.결국 정치적 삶은 사적인 소유를 기반으로 해야 가능했다. 여기서 부는 사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의 몫이었기에 소유의 의미를 대신할 수 없었지만 부의 축적이 있어야 공적 활동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사적인 부가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근대사회에서 커다란 규모의 부의 축적은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농민들의 소유권도 박탈하며 사적 소유를 희생시켰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사적인 소유도 모든 사회적 생산성 발전에 방해가 되기에 무효화 시켜야 한다는게 그 당시 사회적 본질이었다.
9.공동의 부가 공론 영역을 인수하게 되었을 때 사적 소유는 공동세계가 갖는 지속성을 잃게 되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없어지고 사회적 영역으로 흡수되며 근대의 친밀성은 개인의 내적 주관성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소유와 부의 의미는 돈이라는 교환 가능한 사회적 가치만을 획득한다. 따라서 사적 영역이 사회적 영역으로 해체되는 과정에서 근대의 소유는 세계적 성격을 상실하고 인간 속에 자리잡게 된다. 부가 공적 관심사가 된 후 사적 소유권이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니 개인의 구체적 장소의 의미인 사적 소유는 폐지된다.
사적인 것의 비박탈적 성격에서 사적 영역의 제거는 삶의 필연성 제거라는 인간 실존의 위험을 첫째 특징으로 하고 둘째 특징은 사적 영역의 활동이 직접적인 보호가 아닌 공적 영역과의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인식되었다. 특수하게는 사회에 의한 침해로 사적 소유의 점진적 소멸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혁명적 수단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태초부터 숨겨진 사생활은 노동계급과 여성의 해방으로 인해 신체의 기능과 물질적 관심을 숨길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10.인간의 모든 활동은 숨겨지기도 드러나기도 하면서 세계에서의 자신의 적절한 자리 매김을 암시하고 있다. 즉 정치적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들은 활동적 삶 각각의 본질과 일치한다.
3장. 노동
11.노동과 작업의 구별은 자신의 신체로 삶의 필연성에 봉사하는 노예와 고대 그리스의 장인을 상기시킨다. 고대에는 삶의 필연성에 지배를 받는 노동은 인간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근대에 노동의 지위를 상승한 근본 이유는 노동의 `생산성` 때문이었다. 노동이 조직화되고 분업화되어 뛰어난 생산성을 가지면서 작업으로 간주되고 그 구분이 없어지며 모든 사물은 세계적, 객관적 실재로 이해되기보다 노동력의 결과물이자 삶의 과정의 기능으로 이해되었다.결국 노동생산성이 설명해주는 것이 노동 자체가 아니라 인간 노동력의 `잉여`였다. 또한 모든 직업에서 노동 가치는 사회에 대한 `유용성` 으로 판단되었다.
12.삶의 과정에서 노동생산성은 노동력이 제공하는 재생산성이지 그 사물의 성질이나 성격에 있지 않다. 세계의 사물들은 노동생산물이 아닌 작업의 생산물이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해준다. 이 사물로서 인간의 실재성을 갖게 되고 또 다른 실재성을 갖는 행위와 언어의 `생산물들`은 그것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타인의 항상적 존재에 의존하고 무형의 것을 유형의 사물로 변형시키는 사물화에 있다. 이 조건이 인간관계와 인간사의 구조를 구성한다.
인간의 삶은 세계 속에서 그 사물들이 얼마나 영속되느냐에 세계성의 정도가 달려 있다.
13. 자연은 부단히 되풀이하는 순환운동이지만 삶은 시작과 끝이라는 두 개의 근본 사건에 의해서 제약받는 직선 운동을 따른다. 자연의 순환운동은 인위적 세계로 들어갈 때만 자연의 과정은 부패와 성장이라는 특징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인간활동이라는 면에서 노동은 자연의 재료를 욕구에 맞는 형식으로 변형하고 이런 생물학적 과정의 순환을 유지하기 위해 소비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 노동과 소비가 필요하고 자연관점에서는 파괴적인 것의 대응으로 지속적으로 인간의 인공세계를 침해하고 세계의 지속성과 인간의 목적을 위한 유용성을 위협한다.
14. 노동과정은 `자연과 인간의 신진대사`로 정의하며 노동은 `자연이 부여한 영원한 필연성` 이자 인간활동 중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이다. 노동이 내재하는 삶은 그 본질적인 의미가 생산성과 다산성에 있다.
15.노동은 직접적으로 삶에 속박된 활동이다.자기 신체의 활동은 사적 소유를 근거하며 증가하는 부는 소유의 자기화이다.
사회화된 인류에서 조차 개별적 삶은 제거될 수 없다.
16.인간의 노동력의 다산성으로부터 삶의 필수재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삶의 조건들의 본질에 속한다.인간의 본질에서는 삶이 필수재를 획득하기 위한 수고와 고통 그리고 그것을 흡수하는 기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스스로 짊어질 때만 유지될 수 있다.
노동과정에 있어서 도구와 기계에 의존하는 대량생산체제는 생산품의 사용 성격을 잃어버리고 점점 소비의 대상으로 넘어간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의 신진대사는 내재된 지속성은 기대하거나 보존할 수도 없다.
결국 영속성, 안정성, 지속성이라는 (인공의) 세계의 제작자인 제작인의 이상은 노동하는 동물의 이상인 풍요함을 위해서 희생되었다.
17.이 사회는 노동계급의 해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활동 자체의 해방을 통해서 도래했다. 생계를 위한 활동을 벗어나 인간을 좀더 생산적이게 할 것이라는 희망은 부수적으로 생긴 여가를 오로지 소비에만 소모하며 노동과 소비라는 삶의 균형은 지속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의 위험은 이 사회가 증가하는 다산성의 풍요에 현혹되고 끝없는 과정의 원만한 기능에 사로잡혀 더이상 자신의 무상함, 즉 `노동을 한 후에도 지속되는 어떤 영속적 주체에서도 삶은 자신을 고정시켜 주체화할 수 없다`는 무상함을 인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4장. 작업
18.작업으로 인한 생산물은 적절히 사용하면 세계에 지속성과 견고성을 부여한다.
19.작업은 사물화로 이어지고 자연을 파괴하며 인위적 세계를 건설한다. 이런 폭력의 경험으로 우리는 자기확신과 만족을 얻는다.호모 파베르의 제작인은 절박함이 갖는 노동 자체의 기쁨이 아니라 군주이자 모든 자연의 지배자이다.
20.기계화는 근대사회에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고 도구적 성격을 상실했다. 기술은 사실상 더이상 `물질적 힘을 확장시키려는 의식적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차라리 인간 유기체의 내적 구조가 점점 더 인간의 환경으로 이식되는 인류의 생물학적 발전인 것처럼` 나타난다.
21.제작인의 용구와 도구들이 모든 작업과
제작을 결정하기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공리주의에 내재하는 유의미는 `목적 그 자체`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완성된 생산품도 삶의 목적을 위해 다시 수단이 되며 도구가 된다.
인간중심주의에서 인간의 본질은 `인간이 사용을 위한 모든 사물의 척도가 된다`. 즉 내재적이고 독자적인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2.근대에 정치는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사회에 내재하는 자연적인 생산성은 제작인의 생산성이고 제작인이 자신의 공론영역을 가지는 것은 교환시장이다. 고립된 장인은 생산품의 교환을 통해서만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근대 초기에 노동의 사회에서 노동력은 높은 가치를 부여했으나 그 사용물이 공론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가치의 질적변화가 생겨 객관적 절대적가치인 내재적 가치는 상실하고 시장가치 교환가치만이 존재하게 되었다.교환시장은 일관되게 도구성으로부터 발전한다.그러나 유용성으로 위장한 도구성이 세계와 세계의 모든 사물을 존재하게 했던 활동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결된 세계도 지배하게 된다.
23.세계는 안정성이 없다면 의지할 거처도 안되는데 안정성을 위한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것이 예술 작품이다.인공세계는 예술 작품의 영속성에서 자신의 안정성을 드러낸다.예술작품의 직접적 원천은 사유 능력으로 예술가나 철학자는 자기 작품의 물질적 사물화를 위해 사유과정을 중단하고 변형해야만 한다. 인위적인 사물세계가 가멸적 인간의 거처가 되어 항상 변화하는 인간의 삶과 행위의 운동을 견뎌내고 오래 안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제작인의 세계와 예술가 철학자의 사유가 공존해야한다.
5장 행위
24.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것과 공유하는 `특수성` 과 살아있는 모든 것과 공유하는 `차이성` 은 인간에게서 유일성이 된다.
말과 행위로서 우리는 인간세계에 참여한다.행위하고 말하면서 자신을 보여주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인간세계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다.
25.말과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을 지향한다. 그 내용이 대상적이고 사람들 사이에 놓여 있는 물리적인 사물세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관련짓고 묶어 둘 수 있다. 대부분의 행위와 말은 다양한 중간영역과 연관되어 인간 관계를 구성한다. 이 실재를 우리는 인간관계의 `그물망`이라고 부른다.
26.행위한다는 것은 한사람에 의한 시작과 다수가 참여하여 일을 실행하고 완성하며 완전히 이루어낸 업적으로 나뉜다.
행위자는 다른 존재들 사이에 그들과의 관계속에서 움직이며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무제한적인 행위의 관계를 확립한다.그러나 문제는 행위의 과정은 그 결과를 끝이 났을 때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27.인간의 행위 자체의 본질은 삶이 끝나고 이야기 외에 아무것도 뒤에 남기지 않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그리스에서 행위의 연약성에 대한 치료법은 폴리스의 구축이었다. 폴리스의 형식에서 함께하는 인간의 삶은 행위와 이야기들을 사라지지 않도록 보증해준다.폴리스는 말과 행위가 공유하는 공간으로서 나와 타인을 현상하고 세계를 현상함으로서 세계의 실재성을 보증한다.즉 존재한다.
28.모든 사람이 현상하는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또한 사람들을 함께 묶어두고 머물게 함으로써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공론 영역과 현상의 공간을 보존한다. 물화할 수 없는 권력은 또 다른 힘과 폭력에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부패가 일반적인데 행위의 역동적 권력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지 않을 위엄을 정치에 부여하였다.폴리스가 사라지면 모든 것을 상실하기에 지속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의미를 실행 자체에 두고 그것의 동기나 결과에 주지 않는다. 목적은 활동 자체에 놓여 있다. 엔테레케이아가 된다.
29.인간이 현상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세계 내의 공간인 공론영역은 `인간의 작업` 이다.그렇지만 생산품이 인간보다 오래 지속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제작인과 노동하는 동물의 확신도 현상의 공간이 없이는 그 실재성을 확립할 수 없다.세계의 실재성을 가늠하는 공동의 것이 공론 영역으로서 교환시장을 유지하고 존재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닌 교환이다.
30.근대 이전의 노동하는 동물인 노동계급은 근대 사회에서 경제적 보장 사회적 특권 그리고 정치적 힘에 있어서 엄청난 발전을 하였지만 노동 신분은 여전히 사회적 조건이었다.이렇게 가지는 노동자의 시민권과 인격의 권리로 다소는 갑작스럽게 공론 영역에 진입하게 되었다.그렇다고 이 사회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 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제시하는 노동 운동이 사회 전체와 투쟁을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집단과 동일해지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나머지 국민과 다르지 않게되고 정치적 역할을 상실하며 공론 영역의 소멸이 완결단계에 이르게된다. 근대의 노동 운동의 특징이다.
31. 인간이 행위자들이 다수여서 초래하는 우연성과 도덕적 무책임을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행위를 생산으로 대체하고 인간의 다원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인간사의 영원한 질서를 구축하는데 있다.플라톤은 지식과 행위의 구별, 시작과 지배의 이해를 생산품을 형상하여 지각하는 부분과 실행하는 부분으로 나눠서 그 견고성을 부여했다.행위의 개념을 생산과 제작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정치사상은 폭력이 전통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근대를 특징짓는 일련의 혁명에서 뚜렷이 드러난다.즉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는 모든 오래된 사회의 산파이다.
32.인간의 행위는 자연을 조작하고 인위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이렇게 새로운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은 나타난 결과가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하다.그럼에도 행위하기 이전의 본래 상태로 되돌리거나 행위의 결과를 방지할 수가 없다. 근대가 인간능력을 확장하고 행위의 결과가 늘어날 수록 그 힘은 증가한다. 그 본질이 자유인 행위능력은 인격으로서의 주권과 동일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 지배의 이상인 주권은 다원성의 조건에 모순되기 때문이다.인간의 현실로 볼 때 행위능력은 비주권이라는 자신의 무능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33.우리는 제작인으로서 행한 것을 되돌릴 수 없는 무능력인 환원불가능성의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은 용서하는 능력이다.우리가 우리 자신 속에 갇혀서는 결코 자신의 실패나 잘못을 용서할 수 없다.
34.미래의 불가능성인 예측불가능성은 공동체 내부에서 행위의 결과를 예견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약속을 하고 지키는 능력이 이것을 극복하는 기능을 한다.
생성과 사멸의 영원한 순환 속에 우리가 행한 것을 원상회복하고 우리가 야기시킨 과정을 부분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이 없다면 죽을 운명의 인간은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고 파괴시킬 것이다. 이를 구원하는 기적은 궁극적으로 탄생성이다.즉 인간이 탄생함으로써 할 수 있는 행위이다.
6장 활동적 삶과 근대.
35.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지구의 거주적 환경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소외되는 희생을 치뤘다.실재 사회를 가장 동요시켰던 것은 종교개혁이었다. 소유는 인간의 세계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조건이었는데 봉건제를 붕괴시킨 재산 몰수가 세계를 소외시킨 단일 요소였다.탈소유화에 의해 시작되고 부의 지속적인 증대를 특징으로 하는 소외과정은 가계의 소유와 달리 사회적 인간이 집단적으로 소유를 가질 수 없기에 그런 사회의 등장은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을 동시에 몰락시켰다.
36.갈릴레이의 발견은 인간의 감각능력의 판단에 대한 회의와 지구중심적인 세계관이 보편체계의 중심이 될 수 없는 우주 속의 한 점이 되게 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험하지 않는 사변이 신과학의 정신적 도구인 근대 대수학의 발전으로 자연을 탐구하고 접근하는 새로운 양식의 길을 열어 두었다.자연을 단순히 관찰하기보다 자신의 정신 아래 두었다. 이러한 수학의 기능은 감각적으로 주어지는 자료에서 현상하는 이상적 척도를 정신에 제시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진정한 존재의 계시에 대기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이들 자료를 인간 정신의 척도에 환원시킨다.
37.이 세계의 객관적 진리와 실용적인 노하우는 준거점을 지구 밖에서 선택하는 우주의 법칙에서 획득되며 지구의 우주에 대한 관련성을 판정하면 상대적이 된다.
철학적으로 볼 때 보편적 관점을 가진 철학자의 열망은 그리고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자기 반성이 관념들의 발전에서 자라난 거란건 어리석은 생각이다.관념이나 생각은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38.데카르트의 회의는 인간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을 신뢰할 경우에만 현실과 진리는 인간의 감관과 이성에 드러난다고 믿음으로써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고부터다.
데카르트는 실재를 의심하고 감각과 이성의 신뢰를 확신하지 않았다.결국 진리의 확실성 상실은 선례에 없던 진실성에 대한 새로운 열정으로 귀결된다. 단지 진리는 이론이고 검증은 실천의 문제였다. 즉 진리로부터 진실성으로,실재로부터 신뢰성으로의 전환과 유사하다.
39.자기 반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의 인지적 관심이다. 근대 철학의 발전을 이룬 데카르트적 이성은 정신에서 주어지는 관념적 형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정신이 산출하는 형상들에 대한 인식이 최고의 인식인 것이다.데카르트에게 이성은 과정을 자신 안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공동감각의 추론이라 부른다. 인간 정신의 구조에서 아르키메데스적 점의 발견으로인한 보편적 세계관의 혼란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신 자체의 준거점을 인간 자신 안으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40.아르키메데스의 점조차도 보편적 회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설이 만든 인공 현실을 표상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자기 정신 안으로 인간의 도피도 불가능하다.
41.데카르트적 회의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는 관조적 삶과 활동적 삶의 위계의 전도이다.행위를 통해서만 진리와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실성은 스스로 행하고 그 활동을 통해서만 검증될 수 있다는 본질을 가진다.근대 철학에서 객관적 진리란 항상 움직이는 감각 지각들이며 부단히 움직이는 정신의 산물이다.
42.제작하는 활동은 하찮은 위치에서 부상하여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사물의 본질은 존재하게 된 `방법`이라는 제작 과정이 지식의 실질적 대상이 되어야하고 따라서 과학의 대상은 자연이나 우주가 존재하게 된 역사여야 한다는 점이다.역사는 인간활동의 산물만을 다루기에 인간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사물에만 관심을 갖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인간이 세계를 만들고 지배하는 기술의 확립은 자기 독해를 통한 자기 반성이 가장 인간적인 것을 만들고 판단하는 기준과 규칙을 가지게 된다.
진리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관조는 장인의 작업이 형상에 의해 이끌어지는 한에서 제작에 내재하는 요소로 여겨진다.따라서 관조와 관조적 삶의 개념과 실천을 형성한 것은 철학자와 무언의 철학적 경이가 아니라 변장을 한 제작인이었다.
43.제조업자와 제작인은 최고의 인간 가능성으로 고양되었다.삶 내의 위계의 전도는 과정의 개념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제작자이자 세계 건설자로서 인간은 고정되고 영속적인 기준과 척도들을 박탈당하였다.세계사물이 유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산출하는 생산 과정의 부산물로서 그 가치가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치의 상실은 유용성이란 원리를 대상의 사용이 아닌 생산 과정과 관련짓는다.이제 생산성을 자극하고 고통과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유용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궁극적 척도는 유용성이나 대상의 사용이 아니라 `행복`이다.
생산이나 사물의 소비에서 경험되는 고통과 쾌락의 총계를 의미하는 행복은 실제 성취하려고 생각했던 것이 개인의 삶의 증진이었으며 나아가 인류의 생존 보장이었다.
항상 삶 자체가 모든 것의 준거점 역할을 하는 최고 기준이 된다.
44.다양한 인간조건과 능력 내에서 삶이 다른 모든 요소들을 지배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개별적 인간 생명의 불멸성에 대한 기독교의 믿음이었다.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삶을 시작하는 인격체로서의 인간은 지상의 삶도 영원한 삶의 부분이고 시작이다. 자신이 삶에 구속되어 있다는 그 이유로 인간과 자연의 노동하는 신진대사인 삶 자체는 능동적으로 될 수 있고 자신의 완전한 다산성을 펼쳐보일 수 있다.
45.개인의 생명이 가멸적으로 되고 도래할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상실하자 근대인은 이 세계가 아니라 자신에게 내던져졌다. 근대 후기에 사회적 삶과 사회화된 인간을 강조하자 남겨진 것은 예속되어 있는 삶의 과정 자체의 힘이다.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모든 활동은 어떤 활동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나타난다.과정들을 야기한다는 의미에서 행위의 능력과 본래 가지는 계시적 성격은 인간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여 빛을 발하게 하는 원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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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나남신서 72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광기의 역사

굳이 광기를 미친듯하다고 표현한다면 우린 살다보면 때론 그런 기분이나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지 않나. 광기를 이렇게 가까이 두고 있구나 하고 이 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난해하다.정신병에 대해서 나열한 부분을 수월하게 읽게 되니 정작 깊은 성찰을 요하는 부분 마저 쉽게 가고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도 있어 맥락을 찾아 나가기 힘들다.
˝광기의 역사˝는 말 그대로 변천사다. 물론 광기를 인식하는 의미도 크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구조적으로 윤리적인 이유로 수용해서 격리하고 또는 의학적인 견지에서 치료하는 150년 동안 광인이 변화하는 과정이다.아니 광기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성적(?)이기에 광기는 깊게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였고 읽는 내내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아쉽게도 결론을 이끈 마지막장을 서둘러 읽어 꼭 다시 봐야겠다. 끝으로 가면 왜 이렇게 서두는지..

1-1. 광인의 추방, 유배 그리고 문학에 등장, 진실의 풍자
1-2. 17세기에 구빈원이라는 수용시설은 왕권과 연결된 시민통제의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다. 빈민은 도덕적인 가치를 잃고 노동의 의무를 저버리는 무위도식은 신에 대한 반항이었고 단죄를 내려야 했다. 거기에 광기는 자연스럽게 무위도식의 윤리적 단죄의 인식에 해당되었다.
1-3. 나병환자 수용시설이 성병환자로 채워지고 걸인 방탕자 시기꾼 광인이 수용된 공간은 사회적 합목적성으로 완결되었고 모든 광기는 혼란된 성에 뿌리를 둔다. 고전주의 시대 초기에 방탕 불경죄 신성모독죄에 위중한 형벌로 단죄했으나 점차 유죄선고가 줄어든 이유는 그 중간 단계에서 범죄행위가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 즉 비이성의 영역에 위치한다.
이렇게 수용함으로써 이성과 비이성의 통일성은 깨지고 단절되며, 비이성은 인간의 감정, 욕망, 속박된 본성으로 규명짓고 교정되어야 할 질병으로 규정된다.
1-4. 광기에 대한 의식은 중세에 개인으로서 독립적인 존재이고 친숙한 인물이었으나 고전주의 시대에 비이성의 일반적 이해 속으로 사라진다.
광기를 두가지로 고찰하면 법적 주체로서의 인격과 관련해서 법의 맥락에서 해석하느냐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관련해서 사회적 실천에 종속되어 있느냐 이다. 따라서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정상인을 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고 광인은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는다.
1-5.광기의 동물성은 도덕적 속박과 제어된 비이성의 체제 안에 광인을 억류하게한다.
2-1.17세기 광기는 이성에 의한 존재고 그 속에서 소외된 존재이나 18세기에 관점이 변화되어 실증적이며 부정적인 이성과의 관계이다. 즉 비이성이다. 그러므로 광기는 질병의 논리적이고 자연적인 영역으로재구성되었다
2-2.광기에 속하는 본질적 구조 정신착란의 도출은 해부학적인 원인과 정념에 빠진 무너진 이성이다.
2-3.
2-4.
3-1. 개인의 형성뿐만 아니라 인류의 다양한 변종 출연을 가능하게 하는 ˝침투력˝. 광기는 자신의 본질에서 벗어난 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이다.
3-2. 내적으로 광기는 광포함에서 이성을 상실한 이들로 인식을 바꾸고 광인의 수용이 경제 사회적인 이유로 점차 축소되며 빈민의 구제가 사회적인 문제에서 사회인의 의무로 바뀌고 있다.
3-3.광기에서 수용의 철폐는 광인을 다루는 비인간적 물리적 속박에서 병자로서 제한된 공간으로 바뀌고 광기는 인식의대상으로 지위를 받았지만 스스로는 통제되는 자주성을 잃었다.
3-4.은거처는 광인들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처음에는 정신이상을 소멸시키는 획일적 법제영역 도덕적 통합의 장소로 체계화된 작업의 수단을 사용하였지만 모두 폐기하고 의료인을 포함시켜 신적 지위를 부여하고 재판관의 역할을 주었다.
3-5. 광기는 내밀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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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 도덕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라일라
나도 이젠 제법 나이가 들었지!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면 젊었을 때야 무엇인지 모를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겠지만 지금이야 이런저런 생각에 정리도 하고 후회도 하면서 젊다는 것 빼곤 부족하지 않다고 혈기를 부려보겠지만 왠지 모르게 허무할거야.
도덕과 가치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려 떠난 여행은,
그저 나에겐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 만 그득하다.
내가 뱃전에 선듯한 설레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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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서설 파라디그마 Paradigma 8
미셸 푸코 지음, 김광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와우! 진짜 힘들다. 읽으며 밑줄치고 이해 안되서 또 긋고 간추리며 또 그으니 책 전체를 줄친게 되버렸다. 제대로 읽고 정리라도 한건가 싶다.이 책은 장이 넘어가도 이론이 계속되니 겉으로나마 이해하지 못하면 그 때부턴 건성이 되버린다.그래도 나름 열심히 읽었다.
사실 이전에 인간학을 가볍게 읽었고 의미를 많이 갖진 않았는데 푸코는 이 서설로 내가 책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지 의심케 했다.
노철학자가 인간학을 25년동안 강의한 이유를 비판 철학 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의미를 일깨우는 책이다.칸트의 `비판` 을 알면 이 서설을 흥미롭게 볼 수 있겠다.
단순히 세계에 대한 대중적인 인간의 인식을 고찰할 뿐아니고 비판 철학과의 관계를 깊이있게 성찰했다.
아래에 간추린 부분을 붙인다.
◇요약.
삶을 준비하는 세계에 관한 인식의 구성은 획득된 모든 지식과 숙달,실용적인 요소들을 제공한다. 또 자연과 인간이 속하는 전체와의 관련성 속에서 고찰 되어야 하며, 양자는 전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고 배치된다.
칸트는 인간학을 다른 문헌과 동시대적으로 저술하고 있는데 드러나는 부분은 비판철학적 사유와 인간학적 반성였다. 연구는 대상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것이고 이것은 초월적 반성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인간학은 이용의 상호성 안에서 자유와 사용이 이미 묶여 있는 영역(집합체에 대한 탐구는 자연과 자유가 뒤얽힌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이 그것들을 서로 비교 평가하는 유희의 통일성 안에서 상호 종속되는 영역, 문화의 규정 안에서 세계가 학교가 되는 영역을 탐구한다(인간에게 고유한 문화 안에서 세계라는 학교를 인식하도록 가르친다).
인간학의 연구 대상으로 세계 안에 거주하는 인간인 세계 시민을 제시하므로 인간에 대한 인식이고 그 분석은 마음이라는 내면적 차원을 주로한다. 칸트가 건축술 ˝일반적인 인식들을 하나의 이념 아래서 체계적으로 통일하여 학문을 형성하는 방법˝로 확립하는 이성적 경험적 심리학은 인간학을 대체 할 수 없다.검토해야 하는 것은 마음 자체이다. 마음은 정신인데 그 존재는 인간 안에 생기를 주는 원리이다. 생기는 마음에 이념이 가득한 운동을 일으킨다. 여기서 도출된 결과는 마음 안에 존재하는 정신이 마음을 초월하는 자유와 총체성을 부여하고 진정한 인간학은 오직 실용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성립시킨다.
정신은 이성의 순수 사용인 초월 철학을 벗어나 칸트 사상의 핵심이 될 진리가 될 수 있다.
인간학과 비판의 반대되는 모습. a.주체성을 예로 든다면 비판은 잡다의 종합을 순수한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라면 인간학은 지각과 주의력의 종합으로 구체적 실존에 대한 성찰이다. b. 능력들의 분할을 말할 때는 비판이 능력을 확실성의 영역에 지속적으로 준거하여 의미를 부여한다면 인간학은 자신의 중심과 정당성으로부터 멀어지고 부당하게 자신을 상실하게 되는 영역을 나타낸다. 즉 조건 지어진 것이 가질 수 있는 근거를 갖지 않음과 근거 짓는 활동의 조건 지음의 비교이다. c. 인간학의 요소론과 방법론은 비판과 일맥상통해서 마음의 총체성을 형성하는 구조인 다양한 능력을 다루고(요소론), 뒤이어 인류 안의 민족 혹은 인종에 속한 가족의 일원인 개인에게서 능력의 실행 규칙을 다룬다(방법론).두 부분은 비판에서 조건들의 차원(능력)에서의 가능한 것과 구성된 차원(현상)에서의 실제적인 것으로 서로 구별되는 것들은, 인간학에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연속된 것으로 주어진다.요소와 방법 이론이 서로 반복되며(내면과 외면은 의존하며 인식된다) 인식과 실존이 규정하는 선험적인 영역은 가깝기도 멀기도 한다.
비판과 인간학의 관계 파악은 경험적 심리학의 제한된 체계를 수용해야 하는 인간학이다. 순수 철학은 인간학을 다루지 않지만 광범위하게 두가지 영역은 균형을 이룬다.
1.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3.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4.인간이란 무엇인가?
위 세가지 질문이 비판 철학적 사유 구성이면 네번째 질문은 인간학적 주제로의 전환이며 이것은 사유의 단절이 아니고 인간을 세계에 속하는 인간으로 규정하며 세계의 일부로서 나의 존재는 세계 존재이다.세계는 모든 실제적 존재를 포함하는 현실적 체계안에 주어지기에 세계는 실존의 근거이며, 실존을 포함하면서 실존을 제한하는 동시에 자유롭게 하는 원천이다. 단지 인간학적 질문은 세 물음을 반복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질문을 제기할 뿐이다.이러한 상호 관계의 체계를 통해 진리와 자유의 상호적 초월성이 정초된다.
인간학은 자신이 체계적인 동시에 대중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학에서 지성에 의한 판단은 시간상에서 주어지고 진리는 시간의 영역 자체에 따라 형성된다. 시간은 비판에서 직관과 내감의 형식에서 주어진 것의 잡다라면 인간학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종합적 활동의 분산이다. 주어진 것으로서의 방식이 아닌 철저한 규정에 대한 가설과 보증을 제공하는 본질적 가능성이라는 방식으로 종합에 작용한다.
종합의 작용으로의 활동은 자유의 형태지만 진리의 작업을 오류의 가능성에 연결하는 위험한 자유로서 그 판단을 인위라 불리는 수동적이고 불확실한 행위로 대체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비판에서 시간과 주체의 관계는 인간학의 시간과 인위의 관계에 대응한다.
인식의 시작인 무엇과의 관계는 위의 세가지 질문의 반복이 진리와 자유의 연결로 인위의 작업이 진실된 시간안에서 반복된다.
체계성에도 불구하고 인간학은 대중성이어야 한다. 대중적이기 위해서 인식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인식,인간들의 개념과 취향과 성향에 대한 인식에 기초해야만 한다. 인간학은 대중적으로 존재하고 인식하기 위해 언어에 의한 말함인 언어의 토대가 있어야한다. 이런 관용적 언어의 관계망 안에서 세계 안의 인간의 보편적인 거처를 형성한다.
인간학에 의해 시작되고 그 시작 자체에 의해 벗어난 초월 철학은 마지막 저작 ˝유고˝에서 그 체계를 신,세계,인간 이 세가지 용어를 칸트 사유가 지속되는 힘인 원천,범위, 한계라는 개념과 근본적인 관계를 통해 철학에 위치시키기도, 인간학의 내용으로 밝히기도 한다.
여기서 모든 철학의 기획은 철학적 성찰과 인간학적 성찰과의 분할을 극복하려고 한다.
확실히 철학적 영역의 해체는 이뤄지는듯 하지만 결국 근원적인 것에 대한 성찰이 ? 근원으로 되돌려졌다.
인간학이 가질 수 있는 의미는.. `인간학`은 단지 인간에 대한 학문 혹은 인간에 대한 전체 학문들에 관한 학문이나 지평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그것의 인식을 정초하고 제한하는 것에 대한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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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칸트 지음 / 울산대학교출판부(UUP)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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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인간학. 새로운 관점을 이뤘다는데 잘모르겠다.
3대 비판서에 쓰여진 반복되는 내용 중에 좀 더 세분화되고 심도있는 부분도 있지만 익숙해선지 전체적으로 집중해서 읽혀지지 않는 책이다. 설렁설렁보면 자꾸 잊게되어서 주의를 기울이자니 흔히 보는 성격론에 대한 책과 비슷해 읽는 재미가 없다. 아니, 너무나 다양하게 구분해 놓아서 집중하지 못했기에 그런건지 모른다.
이젠 푸코가 박사논문으로 썼다는 이 책의 서설에 관심을 가져본다.
추린 내용을 아래에 붙인다.
◇인식능력에 관하여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은 지각으로부터 감각대상을 인식, 즉 경험에까지 확장을 말한다. 자기를 의식하며 에고이즘은 시작된다. 논리적,심미적,실천적으로 나뉜다.
자신을 표상하는 것은 대상의 규정으로부터 추상하는 것이다.
자기의 표상을 의식하는 것은 사변적 관점에서는 아프리오리한 학문적 원리가 필요하지만 경험적 실천적 관점에서는 판단만이 있다.
표상에 관해 주관이 폭발되는 경우, 감성적 인식능력이다. 이런 직관이 반성을 통해서,그리고 그 반성으로부터 생겨나는 오성 개념을 통해서 내적 경험이 되며 결국 진리가 된다. 진실되지 않은 덕이 있는 모습이 점차 그런 종류의 현실적인 마음으로 깨달아지므로 유용하지만 선이나 자애는 그 가상이 기만하는 것이라 없어져야한다.
상상력은 경험에
선행하는 생산적(창조적)이든지 경험적 직관을 떠올리는 재생적(회상적)이다.
감상적 창작 능력은 공간에서의 직관의 형성적 능력, 시간에서의 직관의 연상적 능력, 표상들 상호 간의 공동 기원으로부터 나오는 친화력이 있다.
예견된 것의 표상을 과거의 것에 대한 표상과 결합하는 수단으로서, 현재 있는 것을 인식하는 능력은 표시 능력이다.
사물의 형태(직관)는 그것이 개념에 의한 표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그 역할을 하는 한에서는 상징이다. 개념을 위한 상징 그리고 표현의 기호화는 오성에 이르는 수단이다.
올바른 오성은 대상의 인식에 대한 개념의 적합성이고 오성에 제공된 규칙을 판단하는 판단력은 기술적 심미적 실천적 판단력을 위한 능력이며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필연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이성이 있다.
지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 스스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항상 자기 자신과 일치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부에서의 가장 중대한 혁명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책임인 미성숙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이다.
◇쾌와 불쾌의 감정
인생은 결국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이 행했던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당신은 그만큼 길게 살았다˝.
취미는 나 자신에서의 감관의 감각에 따르는 것만은 아니고,그것과 함께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규칙에 따라서 선택하는 감성적 판정 능력이라 간주된다.
◇욕구 능력에 관하여
욕망은 그것의 결과로서의 어떤 미래의 것에 대한 표상에 의해서 주관의 힘이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다.
욕구는 올바른 도덕적 가치를 가지면 삶을 흥미롭게 누릴 수 있지만 어긋난 욕정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할뿐이다.
◇인간학적 성격론
개인의 성격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인간에 대해서 구할 수 있는 최소한임과 동시에 내적 가치의 최대한이다. 그러므로 원칙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보통의 인간 이성에서도 가능한 것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최대의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도 존엄에 관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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