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 사이언스 클래식 15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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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탄생

사랑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어머니의 본질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생존에 따르고 생식에 따른 선택을 설명하려 한다.
여기에 페미니즘에 대해 간결하게 부각하는 부분은 남성 우월의 부계사회에 편향성을 가진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서 인식과 판단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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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나남신서 411
미셸 푸코 지음, 문경자.신은영 옮김 / 나남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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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2


남자의 ‘성‘이다. 도덕도, 실천도, 주체도 모두 남성의 영역이다.
네가지 개념 ‘아프로디지아, 크레시스, 엔크라테이아, 소프로쉬네‘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성적 행위에 대한 지침일 것이다.

서론

1. 변형
‘존재의 기술‘이란 인간들이 그것을 통해 스스로 행동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들의 특이한 존재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며, 그들의 삶을 어떤 미학적 가치를 지닌, 그리고 어떤 양식의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자발적인 실천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인간 존재가 어떤 식의 ‘문제설정‘을 통해 스스로를 사유될 수 있고 사유되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내주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 같은 문제설정의 출발점이 되는 ‘실천들‘을 분석한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고대의 성적 활동과 쾌락이 ‘존재의 미학‘의 기준을 작동시키면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문제화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내가 파악한 ‘문제설정‘의 형태들을 설명하고 ‘자기실천‘이란 말이 의미할 수 있는 바를 지적하고서, 어떤 역설과 어려움 때문에 내가 금기에 입각하여 씌어진 도덕체계들의 역사를, 자기실천에 입각하여 씌어진 윤리적 문제설정의 역사로 대치시키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2. 문제설정의 형태들
초기 기독교의 교의와 고대의 도덕철학 사이에서 직접적인 차용, 대단히 긴밀한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성적 행동과 악이 어떤식으론가 결부되어 있으며, 이것들은 분명 기독교 윤리와 현대 유럽사회의 도덕에 흔적을 남기고 있지만 이미 그리스나 그리스-로마사상의 핵심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이다. 공포의 표현, 행동의 모델, 가치폄하된 자태의 영상, 금욕의 예 같은 다음 몇 가지 것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

3. 도덕과 자기의 실천
‘도덕‘이란 단어의 모호성은 다들 알고 있다. 이것은 가족, 교육기관, 교회 등과 같은 다양한 규제체제를 통해 개인이나 그룹들에 제시되는 행동규칙과 가치들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도덕‘이란 또한 개인들에게 제시된 규칙과 가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개인들의 실제적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주어진 규칙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자기 행동의 주체로 변화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완성, 윤리적 작업‘을 행하는데, 이 작업의 형태에서도 또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차이들은 도덕적 주체의 ‘목적론‘이라 지칭될 수 있을 것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행위란 그 자체로서, 그리고 그 행위의 특이성만으로 도덕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동의 총체들 속에 삽입됨으로써, 또한 그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서도 도덕적인 것이다. 도덕적 행동을 할 때는 언제고 자기 자신을 도덕적 주체로 세우려 하는 법이다. 도덕적 행동은 가치, 규칙, 금기들의 체계 못지않게 도덕마다 서로 다른 이 자기에 대한 활동의 형태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구분에는 분명 이론적 결과만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분석에도 중요하다. ‘도덕‘의 역사를 쓰고자 하는 자는 이 단어에 내포된 다음과 같은 여러 다른 현실을 고려해야만 한다. ‘도덕성‘의 역사, ‘규약‘들의 역사, 개인들이 스스로를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 세우게 되는 방식들의 역사, 그리고 자기를 확고히 하기 위한 자기실천의 역사라 불릴 수 있을 그런 역사인 것이다.

제 1 장
쾌락의 도덕적 문제설정

그리스인들은 성적 행동( 육체에 대한 양생술, 결혼에 대한 가정관리술, 소년들에 대한 연애술, 그리고 진리에 대한 철학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틀은 이런 유의 쾌락을 거론하는 방식에서 도덕적 문제를 인식했던 것이다.
나는 성도덕에 관한 고찰에서 종종 부딪히게 되는 다음 네 가지 개념들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아프로디지아의 개념. 그것을 통해 우리의 성적 행동에서 무엇이 ‘윤리적 실체‘로 인식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 크레시스, ‘활용‘의 개념. 이 개념을 통해 우리는 쾌락의 실천이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기 위해 따라야 했던 복종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제어‘, 엔크라테이아의 개념. 이 개념은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세우기 위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져야만 하는 태도를 정의해준다. 마지막으로 ‘절제‘, ‘예지‘, 소프로쉬네의 개념. 이 개념은 수행 중에 있는 도덕적 주체를 특징짓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성적 쾌락의 도덕적 경험을 구성하는 것, 즉 그것의 존재론, 의무론, 금욕주의, 그리고 목적론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 아프로디지아
성적 행동의 차원에서 그리스인들의 도덕적 성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행위, 욕망, 쾌락, 이 셋을 순환적으로 결합시키는 역동성이다(행위로 이끌어가는 욕망, 쾌락과 결부된 행위, 그리고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욕망). 그것은 행위규범을 정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행위, 쾌락, 욕망을 연결시키는 힘의 존재론이다.
인간들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행동의 강도이다. 무절제함은 이 분야에서의 과도함이며 ˝이것은 비난할 만한 것이다˝. 성적 행동의 영역에서 도덕적 평가에 의한 첫 번째 분할선은 행위 및 그 가능한 변이형들의 본성이 아니라 행위와 그것의 양적 추이에 입각하여 그어질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는 이런 힘을 본래 잠재적으로 과도한 것으로 보는데 여기서는 이 힘에 어떻게 맞서느냐, 어떻게 그것을 제어하며 그것에 알맞는 관리술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도덕적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가 동일한 문제를 제기한다. 즉, 쾌락과 욕망과 행위들의 이 같은 역동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으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하는 올바른 활용법의 문제 말이다.

2. 크레시스
아프로디지아에 대한 도덕적 성찰이 지향하는 것은 ‘활용‘의 조건 및 양태를 구상하는 것이다. 쾌락의 활용에 대한 성찰에서는 욕구와 시간과 위상이라는 3중의 전략에 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욕구의 전략. 쾌락의 도덕적 제어는 이 두 가지 형태의 무절제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우선, ‘과잉‘ᆞ‘충만‘이라 할 수 있을 무절제가 있다.
*적절한 순간, 카이로스를 결정하는 것이다.
*쾌락을 활용하는 기술은 또한 그 활용 주체를 고려하고, 그 주체의 위상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3. 엔크라테이아
욕망과 쾌락의 영역에서 저항하거나 싸울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그것들을 확실히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기 지배의 능동적 형태로 주어진다.

4. 자유와 진리
소프로쉬네는 자유와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자유롭기 위해, 그리고 계속 자유로운 상태로 있을 수 있기 위해 그런 것이다.
가장 충만하고 능동적인 형태의 자유란 사람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권력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권력이다.
절제의 본질적 조건들 중의 하나인 어떤 형태의 인식 없이는 절제를 실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인식의 주체로 세우지 않고서는 쾌락의 활용에서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세울 수가 없다.

제 2 장
양생술

1. 일반적 관리법에 관하여
양호한 건강이라는 영역과 영혼의 바른 태도라는 영역에서 정의된다.
삶의 기술로서의 관리법의 실천은 질병을 피하거나 그것의 치료를 끝내기 위한 예방법들의 총체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자신의 육체에 대해 적절한, 필요 충분한 배려를 하는 주체로 세우는 방식이다.

2. 쾌락의 관리법

3. 위험과 해독

4. 행위, 소모, 죽음
성행위는 그것이 악과 관계되기 때문에 불안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그의 도덕적 주체로서의 형성을 방해하고 위협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준다. 즉, 성행위는 만약 절제하지 않고 적절히 배분하지 않는다면, 의지를 넘어선 힘의 폭발, 에너지의 쇠진, 고귀한 자손을 남기지 못한 죽음, 이러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제 3 장
가정관리술

남편에게 요구된 절제와 아내에게 강요된 절제는 동일한 원리와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후자의 절제는 법적 상황과, 아내를 남편의 권한하에 두는 법률상의 종속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남편의 절제는 그의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고 싶다는 의지와 선택에 근거에 있다.
이러한 소프로쉬네가 필요한 것이 결코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아니고, 개인으로서 그들을 함께 결부시키는 관계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로 인해 그가 자신의 명성이나 재산, 타인들과의 관계, 도시에서의 그의 위신, 아름답고 선한 삶을 영위하려는 의지 등과 관련된 의무 또는 요구의 특별한 작용 속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남편은 자신에게 절제라는 의무를 지운다.

제 4 장
연애술

제 5 장
진정한 사랑

결론

우리는 성행위가 그리스 사상에서 ‘아프로디지아‘, 즉 통제하기 힘든 힘들의 투쟁의 장에 속하는 쾌락행위들의 형태로 도덕적 실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살펴보았다. 성적 엄격함은 개인을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서 성립하게 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양식의 완성으로서 이해된 ‘윤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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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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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자


책을 읽는다. 그리고 잠시 책에서 눈을 뗀다
상념에 빠진다. 다시 시선을 책으로 향한다.
이 책이 그렇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생각들. 그리고 눈에 잠시 다른 무엇인가가 스치듯 지나가면 그동안 잠겼던 생각은 결론도 못내리고 다른 생각으로 바뀌게된다. 어느 순간 깨어나듯 멈출 때까지는 책을 무릎 가까이 내려놓고 상념에 빠져 있다‘.
나는 이렇게 작가의 글을 산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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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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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의 역사 1


‘모든 것은 성이다‘.
놀라운 건, 성은 우리가 1차 성징ᆞ 2차 성징을 통해 느꼈던 몸과 마음의 변화가 오로지 본능에 따른 것이고 더불어 성장하며 갖게 되는 성의 가치관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지식-권력에 의해 길들여 졌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성의 역사에서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근 로고스 문화 속에서 그나마 남성은 수혜자이면서 가해자였을 것이다. 더구나 ‘역할‘이라는 말로 이중의 피해를 여성에게 강요했을 것이다.
이젠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좀 알아야겠다.

제 1 장 우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풍의 사람들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성적 표현을 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이르러 성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게 되는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성의 역사를 우선 억압 증대의 역사로 해석해야 할 그 오랜 두 세기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성이 억압된다면, 다시 말해서 금지와 부재와 침묵에 귀착할 수밖에 없다면, 성에 관해 말하고 성의 억압에 관해 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위반의 몸짓이 될 수 있다.
성의 억압을 집요하게 이야기 할 때,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 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그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 이다.
성의 억압이 정말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권력의 메커니즘일까? 또는 그 비판적 담론이 역사적 망의 일부를 이루고, 억압의 시대와 억압의 비판적 분석 사이에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이 요점이다. 요컨대 ˝권력의 다형적 기술˝을 아는 것이 중요한 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끝으로 이러한 담론의 생산에서 매체와 동시에 수단의 구실을 하는 ˝지식의 의지˝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점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기서 나는 통상적으로 희소성의 경제와 희박화의 원리에 부여되는 특권을 분석하려고 들지 않고, 반대로 (물론 침묵도 마련하는) 담론의 생산, (때때로 금지하는 것을 기능으로 갖는) 권력의 생산, (흔히 오류와 체계적 몰이해를 유동시키는)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심급들을 찾아보고자 하며, 이 심급들과 이 심급들의 변화에 관한 역사를 쓰고자 한다.

제 2 장 억압의 가설

1.담론의 선동

17세기 성을 배척하는 과정에서 성의 담론이 폭발되고, 암시와 은유의 수사법이 체계화 되고, 규정되며, 언어 정책이 합의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 자체가 행사되는 장에서 성에 관한 담론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18세기에 무렵에 이르면 성에 관해 말하라는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선동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선동은 성에 관한 일반 이론의 형태가 아니라 분석, 회계, 분류, 명시의 형태나 계량적 또는 인과론적 탐구의 형태를 띤다.
성은 판단될 뿐만 아니라 관리된다. 성은 공권력의 소관이고, 관리의 절차를 요하며, 분석적 담론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성은 쟁점, 공적인 쟁점이 되었고 담론, 지식, 분석, 명령의 온건한 조직망으로 에워싸였다.
18세기부터 합리적 담론 속에서 성이 대상화되는 현상과 각자 자기 자신의 성을 이야기하게 되는 움직임 사이에서 일련의 긴장, 갈등, 조정의 노력, 재등록의 시도가 일어난 것이다. 성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다양하고 특수하고 강제적인 담론화의 조직 전체, 이것은 언어의 절제를 강요하는 고전주의 시대 이래의 대대적 검열일까? 중요한 것은 한결같고 다형적인 담론의 선동이다.
근대 사회에 고유한 것은 근대 사회가 성을 어둠 속에 머물도록 운명지었다는 점이 아니라, 근대 사회가 성을 ‘그‘ 비밀로 내세움으로써 언제나 성에 관해 말할 운명이었다는 점이다.

2. 성적 도착의 확립

성의 담론화는 엄밀한 생식의 질서에 귀속되지 않는 여러 성생활의 형태를 현실로부터 몰아내야 할 책무를 가져야 하는가?
18세기 말까지는 성적 관습이 합법적인 것과 비합법적인 것의 분할을 결정했다.
19세기와 우리 시대는 오히려 증가의 시대, 즉 성생활이 확산되고 잡다한 성생활의 형태가 강화되고 다양한 ˝성적 도착˝이 확립되는 시대였다.
18~19세기에 일어난 담론의 폭발은 이 합법적 혼인관계 중심의 체제에 두가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이성애적 일부일처제라는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동향이 생겨난다.
이로 인해 성생활의 영역에서 ˝반자연˝의 특수한 차원이 추출된다.
주변적 성생활의 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
식생과도 같은 잡다한 성생활을 마치 제거하기 위해서인 듯 일일이 명명하는 것은 그것들을 현실로부터 축출하는 것일까? 거기에서 행사되는 권력의 기능은 단순한 금지와는 전혀 다른 네가지 작업이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1) 간통이나 어린이의 성생활에 대한 통제는 권력의 표적이 권력과 보조를 맞춰 현실 속으로 접어들면서 확대되고 더 세분화되고 가지를 치는 사이에, 권력이 이 디딤돌을 따라 나아가는 과정에서 권력의 거점과 효과가 늘어난다.
2) 주변적 성생활에 대한 이와 같은 새로운 추궁으로 인해 ‘성적 도착의 등재‘ 와 ‘개인의 새로운 명시‘ 가 이루어진다.
성도착자에 대한 이단적 명칭을 붙이고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그것을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비정상적 성생활의 축출일까, 아니다. 그것들 하나하나의 명시, 국부적 확정이다. 그것들을 퍼뜨림으로써 그것들을 현실에 산재하게 하고 개인에게 통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3) 이러한 형태의 권력은 낡은 금기보다는 오히려 굳은 의지와 관심 그리고 호기심이 있어야 행사될 수 있고, 여러 가지 근접을 전제로 하고, 집요한 검토와 관찰을 통해 나아가고, 고백을 강요하는 질문과 심문을 벗어나는 속내 이야기를 가로질러 담론의 교환을 필요로 하고, 물리적 접근과 강렬한 감각의 작용을 끌어들인다. 권력이 한편으로는 추적의 대상인 쾌락에 침입 당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쾌락 속에서 명확해지면서 모습을 나타내거나 분개하거나 저항한다. 이와 같은 소환, 회피, 순환적 선동으로 인해 성과 육체의 주위에는 뛰어넘지 못할 경계가 아니라 권력과 쾌락의 ‘끝없는 나선‘ 이 설치되었다.
4) 19세기의 가족은 또한 변화 가능한 관계로 인해 다양한 요소에 따라 맞물리는 권력 - 쾌락의 망이기도 하다. 어른과 어린이의 분리, 부모의 침실과 아이들의 침실 사이에 확립된 양극 구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의 상대적 격리, 세심한 육아의 엄격한 수칙, 어린이의 성생활에 대한 부단한 관심, 추정된 수음의 위험, 사춘기에 부여되는 중요성, 보모에게 암시되는 감시 방법, 훈계, 비밀과 두려움, 필요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꺼려지는 하인의 존재, 이 모든 것으로 인해 가족은 가장 작은 규모로 축소된 형태까지도 단편적이고 유동적인 다수의 성생활로 포화된 복잡한 조직망이 된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사회가 육체와 성에 작용하게 한 권력의 유형이다. 이 권력은 당연하게도 법의 형태나 금기의 효력을 갖기는 커녕 반대로 여러 가지 특이한 성생활의 확대를 통해 작용한다. 이 권력은 성생활에 경계를 정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침투선을 따라 성생활의 다양한 형태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영속화하고, 성생활을 배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성행활을 개인의 명시 방법으로 육체에 끌어넣고, 성생활을 회피하려고 애쓰지 않고, 쾌락과 권력이 서로 강화되는 나선을 통해 성생활의 변종들을 불러들이고, 장벽을 세우지 않고, 최대 포화의 장소를 정비한다. 이 권력은 잡다한 성생활을 새로 만들어내고 정착시킨다. 근대 사회는 결코 ‘청교도 윤리에도 불구하고‘ 또는 ‘위선의 여파에 의해서인 듯‘ 이 성도착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도착적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성도착적이기도 하다.
이 다형의 행동들은 실제로 인간의 육체와 쾌락에서 도출되었고, 더 정확히 말해서 인간의 육체와 쾌락으로 구체화되었으며, 다양한 권력장치에 의해 소환되고 분명히 밝혀지고 하나하나 분리되고 강화되고 통합되었다.
쾌락과 권력은 서로 상쇄되지도 서로에게 등을 돌리지도 않는다. 쾌락과 권력은 서로 뒤쫓고 서로 겹치고 서로 활성화한다. 쾌락과 권력은 복잡하고 확실한 자극과 선동의 메커니즘에 따라 서로 얽힌다.
그러므로 근대의 산업사회가 성에 대해 한층 더 억압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가설은 아마 폐기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권력의 중심, 더 많은 명백하고 수다스러운 관심, 더 많은 접촉과 순환적 관계, 강렬한 쾌락과 집요한 권력이 더 멀리 퍼져 나가기 위해 서로에게 불을 붙이는 더 많은 아궁이가 존재한 적은 결코 없었다.

제 3 장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

19세기 전체에 걸쳐 성은 서로 분명히 구분된 두 가지 범위의 지식, 즉 과학적 규범성에 따라 연속적으로 발전한 생식의 생물학, 그리고 완전히 다른 형성의 규칙을 따르는 성의 의학에 포함되는 듯하다. 생식의 생리학과 성생활의 의학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이는 일정하지 않은 과학의 진보나 합리성의 형태들 사이에서 엿보이는 불균형 이상의 다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인데, 하나는 서양에서 과학 담론의 확립을 뒷받침한 그 막대한 지식의 의지에 속하는 반면, 다른 하나는 끈질긴 비-지식의 의지와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
핵심적인 사항은 성이 감각과 쾌락, 법이나 금지뿐만 아니라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다는 것, 성의 진실이 유용하건 위험하건, 아주 자세하건 끔찍하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변했다는 것, 요컨대 성이 진실의 관건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 우리의 문명은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 를 실천하는, 더 정확히 말해서 성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요컨대 입문의 기술 및 스승에 의해 전수되는 비밀과 전적으로 대립적인 권력-지식의 형태에 의거하는 방식을 수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아마 유일한 문명일 것이다. 그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고백이다.
서양사회에서 고백은 적어도 중세부터는 진실의 생산이 기대되는 주요한 관례에 포함되었다.
진실이 우리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곳에서 드러나기만을 ‘요구하는‘ 듯이 보이고, 진실이 드러나기에 이르지 않는 것은 진실이 속박되어 있고 난폭한 권력이 진실을 짓누르며 일종의 해방에 의해서만 마침내 진실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 19세기 성에 관한 진실의 담론을 가득 채운 오류, 순진함, 도덕지상주의를 설명하는 대신에, 근대의 서양을 특징짓는 방법, 즉 성과 관련된 지식의 의지가 고백의 관례를 과학적 규칙성의도식 속에서 작동하게 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더 유익할 듯하다.
고백의 기술과 과학의 논증적 성격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 양자 사이의 어떤 광범위한 조절 메커니즘(청취기술, 인과관계의 전제, 잠복성의 원칙, 해석의 규칙, 의학화의 절대적 요청) 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던 곳에서, 성생활은 ˝본래˝ 존재하는 것으로, 즉 병리학의 과정이 스며들 수 있고 따라서 치료법이나 규범화의 개입을 불러들이는 영역으로, 해독해야 할 의미의 장으로, 특수한 메커니즘에 의해 감춰진 과정의 현장으로, 한없는 인과관계의 중심으로, 엄폐물로부터 끄집어내고 동시에 경청해야 하는 모호한 발언으로 규정되었다.
주체 안에서의 인과관계, 주체의 무의식, 지식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주체의 진실, 주체 자신이 무엇을 알지 못하는가에 관해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지식, 이 모든 것이 성에 관한 담론 안에서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결코 성자체의 어떤 고유한 자연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이 담론에 내재하는 권력의 책략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 무려 세 세기 전부터 성에 관한 지식이 형성된 방식, 성을 대상으로 하는 담론이 증가한 방식, 그리고 성에 관한 담론이 생산하리라고 생각되는 진실에 우리가 거의 믿기 어려운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 이유에 관한 탐사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가능한한 오래 유지하고 싶은 애초에 전제는 권력과 지식, 진실과 쾌락의 장치, 억압과는 너무나 다른 이 장치가 반드시 이차적이고 부차적이지는 않다는 점, 그리고 억압이 어쨌든 기본적이지도 승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디시 말해 성생활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대상으로 지식 의지의 ˝정치경제학˝ 을 구성하는 것이다.

제 4 장 성생활의 장치

성의 진실, 성에서의 진실에 대한 이 광범위한 추구는 무엇 때문일까 하고 묻는 것이 합당하다.
지식이 각자를 예속시키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각자에게 자신의 해방을 발견할 것임을 보장해야 할 정도로 정치, 경제, 윤리의 측면에서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일까?
1. 쟁점
성의 담론이 절제되고 은폐되어 가는걸까? 거기에는 억압적인 권력의 작용이 있었던 것일까?
성은 ‘억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실제로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성과 권력의 관계에서 공통된 권력의 표상을 내세우는데, 여기서 특징짓는 표상은 다음과 같다. ‘부정적 관계‘, ‘규범의 심급‘ ‘ 금기의 순환‘ ‘검열의 논리‘ ‘장치의 단일성‘ 이다.
서양사회에서 권력의 행사는 중세부터 언제나 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권력 메커니즘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18세기부터 인간의 생명,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떠맡은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징수와 죽음에 집중된 권력을 아마도 철저하지는 않을 방식으로 표상하는 데 법적인 것이 정말로 소용될 수 있었다 해도, 법적인 것은 이 새로운 권력과정과는 완전히 이질적인데, 왜냐하면 이 새로운 권력과정은 법이 아니라 기술에 따라, 법률이 아니라 규범화에 따라, 징벌이 아니라 통제에 따라 작동하며, 국가 및 국가기관의 한계를 벗어나는 차원과 형태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과 권력의 관계에 관한 현 시대의 분석에서 아직도 작용하는 것은 이러한 법의 표상이다.
권력의 법적이고 부정적인 표상을 벗어던지려고 시도하자. 법, 금기, 자유, 주권의 관점에서 권력에 관해 사유하기를 단념하자. 그러면 명백히 우리의 삶과 육체에서 가장 금지된 것의 하나인 것, 즉 성과 관련하여 최근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금지와 차단의 방식으로가 아니라면, 어떻게 권력은 성에 접근할까? 어떤 몌커니즘이나 전술 또는 장치에 의해서일까? 법없는 성과 동시에 왕 없는 권력을 생각해보자.
2. 방법
억압이나 법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관점에서 성에 관한 어떤 유형의 지식이 형성된 과정을 분석해야 한다.
권력은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불평등하고 유동적인 관계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행사된다.
성에 대해 행사되는 이주 미세한 온갖 폭력, 성을 수상쩍은 듯이 바라보는 모든 시선, 성의 가능한 인식이 말소되는 모든 은닉 장소를 광범위한 권력의 독특한 형태와 연관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풍부한 생산을 다양하고 유동적인 권력관계의 장 속에 잠그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의 국지적 중심에 성에 대한 폭넓은 담론이 존재한다. 세력관계들의 상호작용이 함축하는 변화의 도식을 찾아야 한다. 권력-지식 관계는 어느 일정한 배치의 형태가 아니라 ˝변화의 모태˝이다. 이러한 관계 또는 국지적 중심이나 변화의 도식과 전략 사이에는 가능한 전술의 특수성에 의한 전략의 조정과 가능한 전술을 작동하게 하는 전략적 포위에 의한 전술의 조정이라는 이중의 조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에 관해 말해지는 것을 이러한 권력 메커니즘의 단순한 투영면처럼 분석해서는 안된다. 권력의 지식이 서로 맞물리게 되는 것은 바로 담론에서이다. 담론은 권력을 전하고 생산하고 강화하고 서서히 잠식하고 노출시키고 약화시키고 가로막게 해준다.
3. 영역
권력관계에서 성생활은 가장 은밀한 요소가 아니라 가장 많은 활동에 이용될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전략에 대해 거점 또는 연결 지점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큰 도구성을 갖추고 있는 요소의 하나이다.
여기에 네 가지 전략의 집합에 의해 지식과 권력의 특수한 장치가 성에 적용된다.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 어린이의 성의 교육학화, 출산의 사회화, 도착적 쾌락의 정신의학화.
이 전략들의 관건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오히려 성생할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의 교류는 혼인관계의 장치 즉 결혼, 친족의 결정과 확대, 성히와 재산의 계승에 관한 제도를 낳았지만 경제 정치 구조가 혼인관계의 장치에서 적절한 도구나 충분한 매체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게 되면서 이 혼인관계의 장치는 중요성을 상실했다. 근대의 서양사회는 혼인관계의 장치와 겹치고 혼인관계의 장치와 단절되지 않으면서 이 장치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새로운 장치를 18세기부터 고안하여 배치했다. 그것이 바로 ‘성생활의 장치‘ 이다. 혼인관계의 장치는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 규정된 것과 비합법적인 것을 확정하는 규범 체계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성생활의 장치는 경기처럼 유동적이고 다형적인 권력의 기술에 따라 작동한다. 혼인관계의 장치는 관계들의 상호작용을 재현하고 관계들을 규제하는 법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한 목적에 포함되는 반면, 성생활의 장치는 통제의 영역과 형태를 끊임없이 확대하고 늘린다.
현대적 형태의 가족은 혼인관계의 제도에서 그때까지 무시되어 온 새로운 권력의 전술이 온통 혼인관계의 제도에 스며드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혼인관계의 특권과 동질적이지 않은 성생활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보장한다. 가족은 성생활과 혼인관계의 입체교차로이다.
혼인관계의 장치가 압도적인 사회에서 근친상간의 금지는 기능적으로 불가결한 규칙일 수 있다.
성생활의 영역을 혼인관계의 제도에서 떼어내서는 신경학적 모델에 의해 전문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의학적 방법으로 직접 취급하려고 했다.
정신분석에 힘입어, 혼인관계의 규범을 욕망으로 가득 채움으로써 혼인관계의 규범에 육체와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성생활이다.
그렇지만 성에 관한 정책이 대체로 금기의 법을 이용하지 않고 기술적 도구를 사용한다면, 성에 관한 정책이 성의 억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성생활˝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시기 구분은 폐기해야 하고, ˝노동력˝의 문제는 다르게 분석해야 하며, 성생활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억압된다는 주제를 뒷받침하는 막연한 에너지론도 아마 단념해야 할 것이다.
4. 시대 구분
성생활의 장치가 처음으로 쾌락, 담론, 진실, 권력의 새로운 배치로서 확립된 것은 바로 지배 계급에서였다. 부르주아지는 스스로 창안한 권력과 지식의 기술에 의해 자기 계급의 성을 이처럼 에워쌈으로써, 자기 계급의 육체, 감각, 쾌락, 건강, 존속의 높은 정치적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다른 계급의 성생활에 맞서 자기 성생활의 특수성을 재규정하고, 자기 자신의 성생활을 차이의 견지에서 재검토하고, 자기 육체를 특수화하고 보호하는 분할선을 그으려고 애쓰게 된다. 성생활의 장치 전체를 점차 포괄하고 일반화된 금기의 의미를 이 장치에 부여하게 되는 억압의 이론은 여기에 그 출발점이 있다. 억압의 이론은 역사적으로 성생활의 장치가 확산되는 과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한편으로 억압의 이론은 모든 성생활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더 분명하게는 성생활도 법의 효력에 의해서만 성생활일 뿐이라는 원칙, 즉 여러분의 성생활을 법에 종속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법에 예속시키는 성생활만을 영위하라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이 장치의 권위적이고 강제적인 확대를 정당화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억압의 이론은 사회 계급에 따른 금기의 차별적 작용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성생활 장치의 이 전반적 확산에 대해 균형을 맞추게 된다.

제 5 장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오랫동안 군주의 권력을 특징짓는 특권의 하나는 생사여탈권이었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징수의 심급, 절취 메커니즘, 일부의 부를 자기 것으로 할 권리, 신민의 생산물, 재산, 봉사, 노동, 피에 대한 착취의 형태로 행사되었다. 거기에서 권력은 무엇보다도 물건, 시간, 육체, 마지막으로 생명에 대한 탈취권이었고, 생명을 탈취하여 없애는 특권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생명에 대한 권력은 17세기부터 두 가지 주요한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그것의 조직화는 육체의 규율과 인구의 조절이라는 두 가지 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최고 권력을 상징하던 죽음의 오랜 지배력은 이제 육체의 경영과 생명의 타산적 관리로 은밀하게 옮겨간다. 이 현상들을 통해 ˝생체-권력˝의 시대가 열린다.
이 생체-권력은 틀림없이 자본주의 발전에 불가결한 요소였을 것이고, 자본주의 발전은 육체가 통제되어 생산기구로 편입되는 것을 대가로 치름으로써만, 인구현상이 경제 과정에 맞추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만 보장될 수 있었다. 자본의 축적에 의거한 인력 축적의 조절, 생산력의 확대와 이윤의 차등적 배분에 대한 인간 집단의 긴밀한 관련은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행사되는 생체-권력에 의해 일정 부분 가능해졌다. 살아 있는 육체의 투자, 살아 있는 육체의 중시, 살아 있는 육체의 힘에 대한 배분적 관리는 그 시기에 불가결한 것이었다.
권력과 지식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공간을 조직하고 확대하면서, 생명의 과정을 고려하고 생명의 과정에 대한 통제와 변화를 시도한다.
생명을 떠맡는 것이 임무인 권력은 지속적으로 조절하고 교정하는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이 권력은 주권의 영역에서 죽음의 효력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가치와 유용성의 영역에 배치하는 것이다.
* 성이 정치적 쟁점으로서 띠게 된 중요성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은 ㅅ겅명의 정치 기술이 전개된 두 가지 축의 연결점인 것이다. 한편으로 성은 육체의 규율, 즉 훈련, 체력의 강화와 배분, 에너지의 조절 및 경제적 사용과 관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성은 인구조절의 영역과 관련하여 모든 총괄적 결과를 유도한다.
* 갖가지 전략을 통해 이러한 ˝성의˝ 관념을 확립하는 것은 바로 성생활의 장치이고, 이 관념은 히스테리, 수음, 페티시즘, 질외 사정의 네 가지 주요한 형태를 띠고서 성생활의 장치를 전체와 부분, 원칙과 결함, 부재와 현존, 과잉과 결핍, 기능과 본능, 궁극목적과 의미, 현실과 쾌락의 상호작용 아래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성에 관한 일반 이론의 틀이 점차 형성되었다.
성생활의 장치는 ˝성˝이라는 이 상상적 요소를 새로 만들어냄으로써, 가장 중요한 내적 작동 원리들 가운데 하나, 즉 성에 대한 욕망, 성을 소유하려는 욕망, 성에 이르고 성을 발견하고 해방하고 담론으로 조목조목 진술하고 진실로서 확립하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다양한 성생활의 메커니즘을 전술적으로 반전시킴으로써 권력의 발판에 대해 육체, 쾌락, 지식의 다양성과 저항 가능성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바로 이 성의 심급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 지금 우리의 문제는 성생활을 이해하는 것이다. 오늘날 본능을 완전히 의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성행위보다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제거된 검열의 역사를 보는 곳에서, 미래의 사람들은 오히려 성에 관해 말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관심과 근심을 온통 성에만 쏟기 위해, 우리가 사실상 성생활에 대한 권력의 메커니즘에 순종하는데도 우리로 하여금 성도덕의 주권을 믿게 하기 위해 복잡한 장치를 여러 세기를 가로질러 서서히 대두된 과정을 간파할 것이다.
성생활의 장치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해방˝이 문제라고 믿게 하는데, 바로 이 장치의 아이러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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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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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원작을 원어로 이해하고 싶다. 나에겐 글의 어휘가 낯설다. 잘 집중이 안된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 아름다운 문장에 푹 빠지기도 한다.
역자의 작품 해설을 단지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느끼고 싶다. 없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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