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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진보 - 카렌 암스트롱 자서전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06년 2월
평점 :
회사에 입사할 당시 뻣뻣함을 등수로 매겼다면 나는 단연코 1등이었을 것이다. 첫 종합건강검진에서, 다리를 모아 뻗은 상태로 앉았을 때 손끝이 발끝 부근에 얼마나 닿는지 재는 유연성 테스트가 있었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신입이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예 등이 10 센티미터도 숙여지지 않았다. 나의 유연성은 0도 아닌 마이너스였다.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런 몸의 뻣뻣함과 별개로 우울증이 찾아올 때면 정신적 뻣뻣함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단순함에서 비롯된 실수들, 상황을 다각도로 살피는 시야가 부족한 탓에 저지른 온갖 잘못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증거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기에 도저히 자아를 왜곡할 수가 없다. 결국 자괴감의 정점에 도달하기 전에 생각의 방향을 외부로 돌린다.
그런 노력 와중 만난 책이 "마음의 진보"이다. 이 책은 카렌 암스트롱이라는 비교 신학자가 60대에 쓴 자서전으로, 고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녀의 상황이 책 제목처럼 나아질 테니 나도 감정이입 좀 하면서 희망을 찾자. 그런데 기대와 달리 책 중반이 넘도록 카렌이 처한 상황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더라.
수녀에서 교사, 그리고 다큐멘터리 진행자 종국에는 비교신학자가 되기까지 그녀는 다양한 직함을 가졌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직함들을 원대한 커리어계획 하에 가졌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부당하고 떨어지고 쫓겨난 와중에 여러 직업들을 전전한 것이다. 카렌의 마음상태도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주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안 풀리는 상황에 처하면 극심한 절망감에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인생여정을 풀어놓으면서 카렌은 책 말미에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맺는다. "나의 삶은 늘 변했지만 한편으로는 늘 똑같은 주제, 똑같은 문제를 맴돌지 않았나. 심지어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나는 그런 계단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더 넓고 근사한 계단에 올라타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초라한 나의 계단 끝으로 돌아갔을 때 그 전에는 미처 몰랐던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나는 혼자서 계단을 올라야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내 몸도 덩달아 돌고 내가 발 디딘 곳은 좁지만 그래도 빛을 향해서 올라가기를 나는 바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지만 이제 웃음을 지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방황했지만 결국 위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풀리기를 간절히 바랐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과거는 결코 헛된 발길질이 아니었노라고. 이제는 자신의 삶 전체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이다.
자신의 삶이 뿌듯한 그녀와 달리 나는 여전히 나에게 실망한다. 반짝반짝 소망만으로 빛나던 청춘의 시절을 지나, 나이 값 어른의 몫을 제대로 해야 할 나이인데 왜 나는 이리 의연하게 상황을 웃어넘기지 못하는지, 어려운 상황에 누군가처럼 유연하고 포용력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얼굴에 다 드러나는지,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보면 나는 왜 태어났는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 나는 그럴듯한 깜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지에 관한 문제로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의 선조, 결국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도 거슬러 갈 수도 있을 긴 숨통을 죄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덮을 무렵 나는 다른 희망을 품어본다. 환갑을 맞이할 무렵 혹은 죽음을 맞이할 때 나도 그녀처럼 실망이 겹겹히 쌓여진 내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비교신학 작업에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직업들이 큰 도움이 되었듯 내가 느낀 좌절 내지 슬픔을 느꼈던 모든 실패와 실수들이 종국에는 그 무엇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몸의 뻣뻣함 문제로 돌아와서, 그대 혹시 나처럼 뻣뻣한가? (그다지 많진 않겠지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우리 좌절하지 말자. 그토록 뻣뻣하던 나 매일의 스트레칭으로 발끝에 손이 닿기 시작한다. 손끝에 발끝 닿았듯 더 많은 세월이 흐른다면 나도 사람들 마음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지나치면 무리일테니 천천히. 동료에게 어색하게 던진 안부 인사 한마디, 어설픈 미소 같은 것으로. 이 생각의 흐름을 늘이고 늘려본다. 뻣뻣한 여자에서 조금 덜 뻣뻣한 여성 종국에는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아! 이제 숨통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