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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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 되어 귀밑 단발머리를 했던 14살 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였다. 우리 중 한 아이가 극장 앞에 서성거리던 어느 대학생 커플에게 티켓팅을 부탁했고, 그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쉽게 그래주었다. 그 영화가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이다. 이 영화 안에서 유지태는 말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 장면을 떠올리면 마치 그에 대한 대답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사가 같이 떠오른다.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던 모 광고에서 김민희는 '내가 니꺼야? 난 어디든 갈 수 있어'라며 차태현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차태현이 돌아와 달라고 보낸 문자메시지를 무시하며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한다. 과연 이 말이 맞는걸까? 

  이 책에는 김훈, 양귀자, 신이현, 박범신, 서하진 등 모두 14명의 작가들의 사랑이야기가 실려있다. 14의 다른 시각에서 다른 문체로 다른 사랑을 이야기해서 지루할 틈도 없었다. 뭐 원래 남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워낙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비가 오는 날 수업시간에 총각선생님께 조르고 졸라 첫사랑 얘기를 들으며 두근거리던 것처럼)그리고 책 곳곳의 예쁜 일러스트는 나의 감수성을 더 충만하게 했다. 특히 한차현의 '내게도 그런'은 남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을 '나여서 하고 싶은 건지, 하고 싶어서 나랑 하려고 하는 건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아무리 직접 대답을 들어도 못미덥더니, 한차현이 솔직하게 써 내려간 경험담은 쉽게 믿음이 가니 나 스스로도 웃기다. 그리고 신이현의 '파리를 가져가 버린 아마존 악어'또한 기억에 남는다. 읽는 내내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떠나 싱가포르 남자를 사귀고, 내년에 같이 귀국하기로 했다는 친구가 생각나서이기도 하다. 그 소식을 듣고도 내 친구가 외국인과 사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할 뿐 설레거나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은 얼마나 설레던지 친구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한창 사랑에 푹 빠져있을 내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는 유지태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하는 김민희가 옳았다. 그 전부터 난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14의 사랑이야기를 읽고 보니,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화려하든 순수하든, 길었든 짧았든 모두가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은 건, 긴 권태기 끝에 3년 반 동안의 연애를 끝내고 사랑은 허무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게 사랑인가 싶은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그때와 다르게 변해버린 건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변하는 것이기에 결혼식 때 불변을 의미한다는 다이아반지를 손에 끼우고 변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었다. 나도 그도 부족했을 지는 몰라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또다시 '사랑은 영원불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언젠가 내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마치 사냥꾼을 만나면 한 겨울 눈 속에 머리를 넣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드는 꿩처럼 말이다. 말이 너무 심했나? 어쨌든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고 설레었다. 끝내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아쉬웠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나에게도 또다시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때가 올까?

 

 

  술 취한 학사주점 구석자리에서 깊숙이 안고 있어도, 이제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불편해진 바지 앞섶을 들킬까봐 걱정스럽지도, 헤어져 돌아오는 밤시간이면 아랫배가 땅기고 아파 우울하지도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구나.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슴이 조금 아팠습니다.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때처럼. 그녀가 변한 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가 변한 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러한가. 한때 특별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로 변해가는, 사랑이란 과연 그러한가.
  사랑을 믿습니까?
  영원한 사랑을 믿습니까?       -122쪽 


 

김민희, 차태현의 추억의 CF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면

............http://www.mgoon.com/view.htm?id=14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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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감동 날마다 행복 - 마음이 밝아지는 이야기 명언 66
고정욱 외 지음, 김율도.김형선 엮음 / 율도국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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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년 전인 2001년, 따뜻한 책과 함께 함으로써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 기억이 있다. 그 겨울을 함께 했던 건 '연탄길'과 톨스토이 단편선, 그리고 'TV동화 행복한 세상' 이었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이 새삼 신기해진다. 이야기엔 그만큼 큰 힘이 있어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감동 날마다 행복'도 얇지만 큰 힘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이해인, 도종환, 서정윤, 최윤희 등 유명인의 글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쉽게 공감이 가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은 이야기는 이해인 수녀님의 '생명을 나누는 기쁨'이다. 전쟁 중이던 어느 월남의 고아원에서 어린 소녀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수혈이 필요했다. 하지만 피가 없어서 고아원 아이들에게 피를 나눠주지 않겠느냐 물었다. 그 때 한 아이가 천천히 손을 들었고, 검사 후 피를 뽑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점점 울상이 되더니 결국은 울기 시작했다. 군의관은 당황해서 아프냐고 물었고, 아이는 '죽는 게 무서웠다'고 한다. 그 아이는 피를 뽑아주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자진했느냐 하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년이 하는 말. '그 애는 내 친구이니까요.' 사실 우리 가족들은 어째서인지 모두들 내가 가끔씩 헌혈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래도 가끔 헌혈을 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헌혈은 이 소년의 헌혈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목숨을 걸었다. 자기 목숨을 바쳐 친구를 살리려 한 것이다. 나도 과연 이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실망스러울 정도로 쉽게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리고 이 글 밑에는 테레사 수녀님의 명언이 실려있어 이 글의 감동을 더 심화시켜 준다. 이 글뿐만이 아니라 모든 글들의 밑에 이야기를 심화시켜주는 명언이 실려있어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한 이야기를 읽고나면 나를 되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아쉬운 점도 있었다. 몇몇 글에서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너무 인위적으로 지어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문에서 실화와 창작이 섞여 있어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 또한 즐기기 바란다고 적혀있지만, 창작이 거부감이 들 정도로 '창작'스러웠다. 감동은 물론 좋은 '창작'에서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감동을 주려고 지어진 듯한 이야기는 오히려 감동을 강요당하는 느낌에 거부감이 든다. 감동은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스스로 우러나와서 느껴져야 '감동'이다. 그리고 사실 약간 가벼운 느낌도 없잖아 들었다. 

  하지만 표지에서 말하듯 읽고나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짧은 이야기라 틈틈이 읽기에도 좋았다. 진득이 책읽기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책이라, 많은 이들이 읽고 마음이 조금이나마 밝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꿈을 가지고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그대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괴테)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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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초 - 순식간에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결정적 행동의 비밀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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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터넷에서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학에 이어, 자기계발분야의 서적을 가장 많이 본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또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독서달인의 인터뷰에선, 자신의 독서철칙은 절대 자기계발서는 읽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계발서'는 마치 독초인지 약초인지 구분이 안가는 풀 같다. 난 작년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보단 안 유명하더라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일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베스트셀러도 한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몇몇 자기계발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읽어보았다. 그런데 모두 실망스러웠다. 내가 기대를 많이 한 탓인지는 몰라도 '읽어보니 별 것 없네?'하는 속 빈 강정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꽤 전에 나온 책이지만,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은 예외였다. 책 내용이 뒤통수를 맞는 듯이 신선해서 '나도 이젠 이런 설득의 법칙을 알았으니 설득 당하는 편이 아닌 설득하는 편이 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생활에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참 좋은 책인데 실생활에서 활용하기가 어려우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리처드 와이즈먼의 '59초'는 달랐다. 재미있고 유익할 뿐만 아니라 59초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실생활에서도 쉽고 간단하게 활용할 수 있다.

  먼저 맺음말에 나오는 문구를 이용해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1분 안에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해주는 방법> 

1. 감사하는 태도를 길러라 - 행복감과 육체적 건강이 증진되고, 미래에 대해 더 낙관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2. 지갑에 아기 사진을 넣어 가지고 다녀라 - 잃어버린 지갑이 되돌아올 확률이 증가한다.
3. 부엌에 거울을 걸어놓아라. -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건강해질 확률이 높아진다.
4. 사무실에 식물을 놓아두어라 -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을 좋게 해주며, 창조성을 자극한다.
5. 호감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위팔을 가볍게 만져라 -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6. 관계에 대한 글을 써라 - 배우자나 애인과 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가 된다.
7. 상대가 거짓말할 것 같으면, 이메일로 용건을 말하라고 하라 - 취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짓말 할 확률이 낮아진다.
8. 아이를 칭찬할 때에는 능력보다는 노력을 칭찬해라 - 결과에 관계없이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생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9. 목표를 달성한 모습이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하라 - 그저 꿈이 실현된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에 비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10. 자신의 유산을 생각해라 - 장기적 목표를 재확인하고, 목표 실현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지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가? 다른 자기계발서와 달리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자기계발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듯 했다. 첫째는 버거운 류. 사실 책을 읽고 서평 쓰기도 귀찮아하는 내게, 중장기적 프로젝트 같은 느낌으로 계획을 세워주는 듯한 자기계발서는 너무 버거웠다. 오랜 기간에 걸쳐 완수(?)할 자신도 없었고, 그걸 믿고 따라하기엔 솔직히 귀찮았다. 그리고 이런 버거운 류가 아니면, 그저 동기부여만 해주는 가벼운 류였다.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은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고 '난 이렇게 알려주었으니 그 뒤는 네가 하기 나름이야'하고 책임을 전가해버리는 책. 그런데 '59초'는 고맙게도 이 두 가지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인 것 같다. 59초는 문제제기를 하고, 실험결과를 말해주고, 그에 따라 가장 실천하기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준다. 가장 중요한 부분만 쏙 담아 놓았다. 사실 그래서 처음에 독자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도입부분이 약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장의 도입부마다 약간 뜬금없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몰입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만족감이 커서 봐줄 만 한 정도다. 

  '설득의 심리학'의 뒤표지에 어느 독자가 '빨리 절판되어 나만 알고 싶은 책'이라고 평해놓은 게 꽤 인상깊었는데 지금 내 심정이 꼭 그렇다. '59초'가 빨리 절판되어 이 책이 알려주는 방법을 나만 알고 싶은 건 너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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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 특강 - 자기 발견을 위한
이남희 지음 / 연암서가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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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2주에 걸쳐 강의 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12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 장 한 장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자서전을 쓸 글감을 찾고, 글쓰기를 할 준비를 해나가게 도와준다. 난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을 글쓰기와 심리학을 혼합한 것이라 하고 싶다. 심리학적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그것을 글감으로 삼아 자서전이 풍부해지게 도와준다. 자서전 쓰기와 자기발견을 이렇게 연결해 놓은 점이 재미있었다. 책 한 권을 통해 자서전도 쓰고, 제대로 글 쓰는 방법도 익히고, 자기발견도 할 수 있으니 말 그대로 1석3조다. 그리고 단순히 글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다이어그램, 그림, 표 등을 이용해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시 글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실어서, 자칫 막연하게 생각될 수 있는 '자서전 쓰기'를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자서전반 학생들의 글에서부터 '찰리 채플린', '장 폴 사르트르'의 자서전에서 발췌한 글까지, 폭도 매우 넓다. 게다가 예시글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나중에 꼭 찾아 읽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놀랐던 점은, 직접 가르쳤던 학생들의 글을 예로 들어 고칠 부분을 지적할 때 이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부분도,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땐 고쳐야할 부분이었다. 내 글을 만약 전문가가 본다면 얼마나 고칠 곳 투성이일지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나는 지금보다 조금 어릴 적엔 자서전을 쓰는 것이 내 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거창하게 느껴지는 '자서전'보다는 좀더 담백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수필집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잠깐 고민했었다. 하지만 '자기 발견을 위한'이라는 말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자기 발견'. 내가 요새 가장 원하고 온 관심을 쏟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래저래 바쁠 땐 '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울해 지다보니, 계속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이런 감정이 일어나게 된 원인 같은 것을 말이다. 이 책이 그 원인을 찾는데 도움을 주어서 기쁘다. 그리고 더 편안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한 힌트도 주어서 더욱 기쁘다. 자기발견을 하고 싶거나, 혹은 자서전을 쓰고 싶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해당된다면 꼭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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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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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달 쯤 전부터, 간병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이 우울증에 걸렸다. 그리고 돌아가신 뒤 한 달여 동안 일본에 혼자 있으며 여러 가지 정리를 하는 동안 우울증은 깊어졌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 도무지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을 때야 한꺼번에 엄청난 양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나선 또 며칠을 굶는 것의 되풀이였다. 그것은 몸도 마음도 좀먹는 일이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때마침 부산에 와서 나를 찾아주었다.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하지만 몇 시간 전 나는 허겁지겁 친구들에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약속을 취소했다. 그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를 만나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기는 무가치한 사람이고 싫증나고 지루한 사람, 의존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 편하고 얘기 할 맛도 난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다.      -43쪽

  책 초반에 이 구절을 발견하고 나는 흠칫 놀랐다. 나는 이 구절을 보기 전까지 내가 그들을 피한 이유가 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 구절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사실 난 좀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내 스스로에 대해 내가 이렇게 무지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나고 부끄러운 것이다. 이러한 감정이 드는 이유 또한 내 자존감이 낮아서, 내가 완벽 하려고 애쓰기 때문인 것을 재차 깨달았다.  

  자존감과 열등감은 같은 문제이다. 열등감이 자존감을 낮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다. 반면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못나고 무능하다 여긴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공감능력이 높아서 상대방의 평가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어서 성공경험도 많다고 한다. 사실 난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공감능력이 낮아서 고민이었다. 이게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그것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돼서, 상대방에게 공감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모로 나 자신도 몰랐던 나에 대해 깨달은 게 많다.   

 열등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외모, 집안과 같은 선천적인 것이고 둘째는 학력, 능력과 같은 후천적인 것이다. 선천적인 열등감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 예쁘지 않은 외모는 부족한 조건이지만 그것들로 인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천적 조건에 의한 열등감은  부족한 부분 하나로 자신을 평가지 말고 자신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려 노력하고,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고 목표를 세워 이를 이루기 위해 몰두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열등감 극복의 좋은 방법이라 한다. 실직과 같은 아픈 경험의 경우 오히려 이런 난관을 능동적으로 극복하고 나면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껴지고 자존감을 더욱 높이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한편, 자존감이 엄마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나는 사실 지금껏 부모님을 존경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싫고 절대로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했다. 그게 문제였다.  

  아이는 자기 안에서 부모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자기가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리비도가 자기 속의 사랑스러운 부분에 쏟아진다. 리비도가 자기를 향하여 돌아오기 때문에 '자기 사랑'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자기애narcissism이고 자존감이다. (‥‥‥) 반대로 불행하게도 자랑스러운 부모의 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존감을 갖기 어렵다.    -238쪽 

  이 구절을 읽고 띵해졌다. 나는 엄마아빠가 아닌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할머니 스스로도 말씀하시기를 엄마와 반대가 되길 바라면서 키우셨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며 자란 터라 나에게 특히 엄마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고,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닮아서는 안 될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자존감을 갖기 어렵게 했다니‥‥‥. 사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지 아직 모르겠다. 사실 돌이켜보면 어머니에게도 분명 장점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런 어머니의 장점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내 안에서 그런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키워나가야 하는 건지‥‥‥. 자존감을 높이는 게 확실히 어렵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이 책을 통해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도 낮은 자존감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엄마를 용서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수치심과 죄책감을 불러와 자존감 회복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한다.  

  결코 읽기에 어렵지 않고, 오히려 여러 사람들의 실례를 통해 접근해 재미있고 접근이 쉬운데다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편집과 구성, 디자인 때문에 즐겁고도 빠르게 지나갔던 책읽기였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20년 동안 같이 하면서도 알지 못했던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제대로 나를 돌아보고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특히 나의 문제들의 원인을 명확히 알게 된 게 기쁘다. 게다가 그 해결방법까지 알게 되어 앞으로 나는 더욱 발전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없이 가볍고 날아갈 것 같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너무 좋은 책을 만난 것 같아 기쁘다. 덧붙여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로 인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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