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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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이 되어 귀밑 단발머리를 했던 14살 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가였다. 우리 중 한 아이가 극장 앞에 서성거리던 어느 대학생 커플에게 티켓팅을 부탁했고, 그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쉽게 그래주었다. 그 영화가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이다. 이 영화 안에서 유지태는 말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 장면을 떠올리면 마치 그에 대한 대답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사가 같이 떠오른다.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던 모 광고에서 김민희는 '내가 니꺼야? 난 어디든 갈 수 있어'라며 차태현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차태현이 돌아와 달라고 보낸 문자메시지를 무시하며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한다. 과연 이 말이 맞는걸까? 

  이 책에는 김훈, 양귀자, 신이현, 박범신, 서하진 등 모두 14명의 작가들의 사랑이야기가 실려있다. 14의 다른 시각에서 다른 문체로 다른 사랑을 이야기해서 지루할 틈도 없었다. 뭐 원래 남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워낙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비가 오는 날 수업시간에 총각선생님께 조르고 졸라 첫사랑 얘기를 들으며 두근거리던 것처럼)그리고 책 곳곳의 예쁜 일러스트는 나의 감수성을 더 충만하게 했다. 특히 한차현의 '내게도 그런'은 남자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을 '나여서 하고 싶은 건지, 하고 싶어서 나랑 하려고 하는 건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아무리 직접 대답을 들어도 못미덥더니, 한차현이 솔직하게 써 내려간 경험담은 쉽게 믿음이 가니 나 스스로도 웃기다. 그리고 신이현의 '파리를 가져가 버린 아마존 악어'또한 기억에 남는다. 읽는 내내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떠나 싱가포르 남자를 사귀고, 내년에 같이 귀국하기로 했다는 친구가 생각나서이기도 하다. 그 소식을 듣고도 내 친구가 외국인과 사귄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할 뿐 설레거나 로맨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은 얼마나 설레던지 친구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한창 사랑에 푹 빠져있을 내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하겠지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하는 유지태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하는 김민희가 옳았다. 그 전부터 난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14의 사랑이야기를 읽고 보니,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아름답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화려하든 순수하든, 길었든 짧았든 모두가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은 건, 긴 권태기 끝에 3년 반 동안의 연애를 끝내고 사랑은 허무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게 사랑인가 싶은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그때와 다르게 변해버린 건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변하는 것이기에 결혼식 때 불변을 의미한다는 다이아반지를 손에 끼우고 변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었다. 나도 그도 부족했을 지는 몰라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또다시 '사랑은 영원불변'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언젠가 내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그렇게 믿으려고 애쓰는 게 아닐까? 마치 사냥꾼을 만나면 한 겨울 눈 속에 머리를 넣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드는 꿩처럼 말이다. 말이 너무 심했나? 어쨌든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고 설레었다. 끝내 마지막 책장을 덮기가 아쉬웠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나에게도 또다시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때가 올까?

 

 

  술 취한 학사주점 구석자리에서 깊숙이 안고 있어도, 이제 하고 싶어 미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불편해진 바지 앞섶을 들킬까봐 걱정스럽지도, 헤어져 돌아오는 밤시간이면 아랫배가 땅기고 아파 우울하지도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구나.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슴이 조금 아팠습니다.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때처럼. 그녀가 변한 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내가 변한 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사랑이란 이러한가. 한때 특별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그렇지 않은 것들로 변해가는, 사랑이란 과연 그러한가.
  사랑을 믿습니까?
  영원한 사랑을 믿습니까?       -122쪽 


 

김민희, 차태현의 추억의 CF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면

............http://www.mgoon.com/view.htm?id=14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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