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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 상·청춘편 -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한 가부키의 세계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평점 :
国宝
요시다 슈이치 『국보』 — 청춘이 가진 가장 뜨거운 무게에 대하여
조용히 책장을 펼치는 순간, 마치 무대의 막이 올라가듯 숨이 고요히 멈춘다. 『국보』는 단순히 ‘예술가의 성장기’를 넘어, 시대가 한 사람의 몸을 통과해 지나갈 때 어떤 상처와 빛을 남기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번 작품에서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한 가부키의 세계”라는 문장 그대로, 예술이라는 세계가 인간을 어떻게 벼르고 부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를 담담하지만 깊게 그려낸다.
소설은 어린 시절 기구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고, 단 하나 남은 희미한 명문가의 자취에 의지해 성장해야 했던 소년 키쿠오. 그리고 키쿠오와 동행하며, 같은 무대 위에서 서로를 비추고 견제하고 끌어올리는 또 다른 존재 순스케. 이 두 사람은 가부키라는 잔혹한 예술 세계 속에서 각자가 가진 상처를 숨긴 채 성장한다. 재능은 넘치지만 그것이 곧 축복임을 의미하지 않고, 명예는 손에 넣었을 때보다 잃었을 때 더 무겁다. 요시다 슈이치는 이 대비를 너무나 섬세하게 잡아낸다.
가부키라는 세계는 화려하지만 실은 가장 인간적인 세계다. 치열하고 잔혹하고 집요하다. 누군가의 박수는 늘 또 다른 누군가의 좌절을 자극하고, 한 번의 실수는 가문의 명예조차 흔드는 칼날이 된다. 키쿠오는 자신의 재능이 자신의 구원이자 족쇄임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고, 순스케는 그 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때로는 질투로,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경쟁으로 키쿠오 곁에 선다.
이 소설이 재밌는 이유는 명확하다.
두 사람의 인생이 흔들리는 장면들이 너무 ‘현실적’이라서이다.
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감정의 균열들이 그대로 존재한다. 열등감, 존경, 사랑, 시기, 자존심, 패배감.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의 언어들이 가부키라는 예술을 통해 빛으로 승화되면서, 독자는 그 치열함을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한 밀도로 경험하게 된다.
책 속에서 마음을 오래 머물게 했던 구절이 있다.
> “진정으로 하는 소리야?
……그 소리는 두 말 안 해. 그리고 키쿠오는, 웃고 말았어.”
짧은 문장인데도 이 한 줄이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한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오랜 감정, 함께 흘린 시간, 서로가 서로를 여전히 떨리게 하는 거리감.
그 미묘한 감정을 요시다 슈이치는 절제된 문장으로 전달한다.
이 절제가 바로 이 작가의 힘이다.
결국 『국보』는 ‘예술을 뛰어넘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가문을 짊어지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깨부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품은 채 무대 위에 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두근거림을 본다.
이 이야기는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의 재능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당신은 누구와 함께 서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어떤 화려한 장식보다, 인간의 마음이 가진 그림자를 더 정교하게 펼쳐낸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기어이 빛을 끌어올린다.
『국보』, 이름 그대로 ‘사람이라는 국보’의 빛과 상처를 꿰뚫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