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꾸리찌바 - 증보판
박용남 지음 / 이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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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도시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작은 손수레에다 상품을 싣고 다니며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노점상”이 되었다. 자연히 원래 그 도시에 있던 상인들은 경계심을 품었고 상인이 아닌 시민들은 거리가 더러워질까봐 그들을 경계했다.


그래서 이 도시의 공무원들이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그냥 나가라고 말하며 막 떠밀고, 철거반을 데려와 손수레를 때려부쉈을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청이 노점상들에게 “결사체”, 그러니까 이익 단체를 만들도록 요청하고 대표를 보내 노점상들과 토론했다. 결국 노점상들은 시청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버스 정류장이나 광장에서만 물건을 팔기로 합의했고, “매주 또는 2주마다 이들 지점을 돌아가며 가로시장이 열릴 수 있도록 일정을 확정했다.”


“그 이후에 시에서는 노점상들을 위해 단순하지만 운반할 수 있는 이동식 가게를 설치했고, 그들에게 허가를 내주었다.”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 노점상들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그들도 도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도시는 “대부분의 도시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노점상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믿기 어려운가? 서울 시청이 청계천 상가의 노점상들과 대립했던 일 때문에 ‘이런 일은 일어날 리가 없어.’라고 생각하시는가? 그러나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작은 혁명’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히오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남서쪽으로 약 800㎞(사웅파울로 - 상파울로는 영어 이름임 -에서 400㎞)떨어진,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빠라나’주(州)의 주도(州都 : 주의 중심지 - 옮긴이)”인 꾸리찌바Curitiba(영어 이름은 ‘쿠리티바’)에서는 늘 일어나는 일 가운데 하나란 말이다. 이 책은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 도시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버스를 타지 못하게 막는 장치가 없다. 이 도시의 버스 정류장은 지하철 정류장과 비슷하지만 훨씬 크기가 작은 원통형 정류장인데, 그 안에는 버스 승강대와 높이가 비슷한 플랫폼과 휠체어 엘리베이터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아침 9 시부터 밤 12시까지 운행하는 버스와,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따로 두어 시내버스를 20시간 내내 이용할 수 있다.


나아가 시청은 쓰레기를 거둬들이는 지방 주민들에게 쓰레기 5kg당 한 개의 식품 배낭을 나누어 준다. “여기에는 보통 쌀, 콩, 감자, 양파, 오렌지, 마늘, 계란, 바나나, 당근과 꿀 중 하나나 그 이상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돈을 주는 데서 탈피한 “이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빈민들에게 경제적 편익을 줄 뿐만 아니라 꾸리찌바와 주변 농촌지역에서 채소, 과일 등을 생산하는 소농의 잉여생산량을 흡수하는 데도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재활용 쓰레기(예컨대 폐휴지나 깡통, 플라스틱)를 모아다 시에 갖다주면 시청이 이를 교재, 인형, 장난감과 바꿔 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다. 이런 제도는 “어린이들을 포함해 꾸리찌바 시민 모두에게 재활용 쓰레기는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식품, 학용품 등과 교환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자 미래를 위한 값진 돈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새겨주었다.”


이런 정책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과 이어져, 큰 물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을 크고 비싼 콘크리트 컨테이너 속으로 상자화하는 대신에 작은 도랑을 건설했고, 그 강들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호수를 조성”하고, “홍수위험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도로 및 건물의 건설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도시가 물난리를 겪을 확률은 엄청나게 낮아졌고, 꾸리찌바는 “유일한 위험은 수위(물 높이 - 옮긴이) 875(미터 - 옮긴이)에서 수영하는 물오리가 수위 876에서 헤엄치고, 그 후 다시 강이 정상위로 돌아갈 때 수위 875에서 헤엄치는 것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안전한 도시가 되었다.


꾸리찌바 시가 문화시설을 ‘재활용’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쓰레기가 식품을 제공해주듯이, 문화도 쓰레기와 같은 방식으로 재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에 만들어져 서기 1971년까지 “화약고이자 탄약창”에 지나지 않던 낡은 건물은 고쳐야 할 곳만 고친 뒤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으로 바뀌었고, 예전에는 양초 및 아교를 만들던 공장은 서기 1974년에 “세공 작업, 세라믹, 책 덮개, 종이기술, 무늬 놓은 두꺼운 천 만들기”를 가르치는 ‘창조센터’로 바뀌었다. 시의 역사가 시작된 세 광장도 복원해 “꽃과 커피숍이 늘어선 삘로리 광장”으로 만들었다. 이는 멀쩡한 건물들을 부수어 ‘새 건물’을 만드는 서울시의 행태와 견주어봤을 때 정말 본받아야 할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도시를 다른 도시와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심각한 논의’를 거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장난삼아 한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아닐까. 꾸리찌바 시청의 공무원들은 패트병(플라스틱 광천수 병)을 재활용해 장난감을 만들고, 그 모양을 본떠 튜브 스테이션(통처럼 생긴 정류장)이라 불리는 원통형 정류장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계획이 적은 예산과, 철저한 재활용과, 잦은 토론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숙연케 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 책을 지은 사람의 말처럼 “이제 우리도 새롭게 시작하자.” 청계천에 있지도 않았던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려고 고가도로를 뜯어낸 뒤 상인들을 억지로 쫓아내거나, ‘단지 보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상하기 쉬운 잔디를 잔뜩 깔아놓은 ‘광장 아닌 광장’을 억지로 만들어놓고 입장료를 받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정책 대신, 시민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존중하고 적은 예산을 들여서 큰 효율을 끌어내며 인간과 환경, 복지를 중요시하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동경(東京)이나 싱가포르, 뉴욕이 아닌 꾸리찌바로 나 있다. 그들을 본받아 살기 좋은 중소도시를 만들자.


끝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이 책의 135 ~ 145 쪽과 251 쪽에 실린 벽화는 아주 아름다우며 서울을 비롯한 이 나라의 여러 도시가 참고할 정도로 좋은 미적 효과를 거두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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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익히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꼭 봐야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난 두렵지 않아요 -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
프란체스코 다다모 지음, 노희성 그림,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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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3년 동안 붙들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양탄자 공장에서 달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당하게 붙들려 오랜 세월동안 갇혀서 살았고 마침내 달아나 자유를 되찾은 사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했을 때, '새장'속에 갇혀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다고 느낄 때, 그(:이크발)는 내게 다가와 두려웠지만 사람들 앞에서 칼을 휘둘러 자신이 짜던 양탄자를 잘라 버림으로써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폭로했던 일, 욕을 듣거나 매를 맞거나 다른 형벌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달아났던 일, 비록 처음에는 탈출에 실패했지만 나중에 다시 시도해서 마침내 양탄자 공장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일,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되찾아준 일을 들려주었다.

그런 상황에 처했던 사람이 그뿐이었겠는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식구들과 억지로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얻어맞고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 침략전쟁에 가지 않겠다고 말해서 감옥에 갇힌 병사, 독재정치나 신정神政 정치가 싫어서 싸우는 사람은 모두 '또다른 이크발'이 아닌가? 따라서 그들이 갇힌 곳은 '또다른 양탄자 공장'이요 그들의 반항은 '또다른 이크발들의 탈출'인 셈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노예노동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억누르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 싸우는지, 그리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교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크발의 말투 가운데 일부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문어文語체라는 점(예컨대 '~단다.'라는 말로 끝나는 말)이 거슬리고, 다다모 씨가 파키스탄을 직접 가보지도 않고 글을 썼다는 사실도 문제이니 독자들은 이 사실을 참고해서 이 책을 '실록'이 아닌 '실화소설'로 받아들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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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사람들
라이너 침닉 글, 그림, 장혜경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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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이어짐..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면서 ‘타락한 혁명가는 수구세력의 반격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또는 남들을 타도하자고 외친 혁명가가 나중에는 타도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씁쓸한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상 그 자체가 아니라 이상을 퍼뜨린 ‘사람’이나 그 ‘조직’을 무작정 받드는 태도를 ‘조용히’ 내던져야 한다.

그럼 그걸로 모든 게 끝나는가? 자신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북을 맨 채 길을 가기만 하는(반대를 위한 반대만 외치고 자신들이 ‘왜’ 반대하기 시작했는지도 잊어버린) 몇 안되는 생존자들이 자신들이 떠나온 도시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길을 떠나는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그래, 그냥 이곳에 주저앉아서 조직이 시키는 대로 살지 뭐.’라고 생각하고 책을 덮으면 될까?

아니다. 이것이 끝은 아니다. 식물이 시들면 그 식물이 남긴 씨앗이 다시 싹을 틔우고, 물고기가 죽으면 그 물고기가 낳은 알이 다시 깨어나 물고기로 자라듯이 자신들의 과거를 잊어버린 북 치는 사람들 대신 ‘새로운 북 치는 사람’이 나타나 “새 인생을 시작합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신천지를 찾아 떠납시다!”라고 힘차게 외치면서 북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혁명은 타락하고, 녹슬어버리고, 타도대상이 되고, 나중에는 죽는다. 그러나 체념하진 마시라. 혁명이 죽은 자리에는 죽은 혁명을 거름 삼아 다시 새로운 혁명이 싹트고, 옛 혁명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그리고 그들의 심장 소리이기도 한 북 소리는 새 혁명이 싹트는 한 계속 울리면서 당신의 가슴을 뒤흔들 것이다.

그러니 만약 북 소리가 울리거든, 주저하지 말고 북을 맨 채 뒤를 따르라. 그러지 못하겠거든 북 치는 사람들에게 몰래 먹을 것과 입을 것, 약을 건내주고 “당신을 지지할게요.”라는 말이라도 건네 주라. 어쩌면 그 사람이 떠난 뒤에는 당신이 북을 치며 구호를 외칠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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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사람들
라이너 침닉 글, 그림, 장혜경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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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는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우고, 의욕을 불어넣는 묘한 매력을 지닌 음악이다. 그 소리는 -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 가슴을 뒤흔들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디론가로 떠나는) 행진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 동화에서 북을 두드리는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합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신천지를 찾아 떠납시다!”라고 외치는 ‘혁명가’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북소리는 단순한 타악기 소리가 아니라, 세상이 새롭게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도시에 나타난 북 치는 사람이 단 한명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허허벌판에 떨어진 볍씨 한 알처럼 외로운 신세였지만, 곧 그들을 억누르던 사람들을 동지로 만들고(북을 맨 노인을 감시하던 간수장과 병사들이 노인과 함께 북을 치며 구호를 외치고), 희망을 퍼뜨려서 기득권자들이 만든 사회구조에 갇혀 있던 ‘어중간한 사람들’이 혁명(또는 개혁)을 지지하도록 부추긴다(시민들이 북을 매고 거리로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고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 물결을 막으려고 하는데(기병대나 - 북 치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가 아닌 - 또 다른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이 북 치는 사람들과 싸운 일) 만약 혁명이라는 물결이 콸콸 흐를 때(북 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들이 새 인생과 신천지를 떠들면서 활기차게 북을 칠 때) 이런 일을 시도한다면 둑이 물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물이 둑을 무너뜨리고 사방에 넘쳐흐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북 치는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 도시의 수비대가 처참하게 무너진 사실이 좋은 예다).

혁명이 이루어지는 듯하면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신천지를 찾고, 그곳에 씨앗을 심고 땅을 일구고 집을 짓겠지. … 그러나 황금을 파는 일에 몰두하다 새 소리와 맑고 신선한 물, 울창한 나무들을 잃어버리고, 굶다가 황금으로 만든 무덤에 묻히고, 일은 안하고 모두가 황금 관을 쓴 채 임금이 되려고 하다가 곡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늘 얼어붙은 땅과 늘 더운 모래땅에 갇힌 채 오랫동안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도 하리라. 얼핏 보면 곡식이 차고 넘칠 정도로 자라서 낙원처럼 여겨지는 곳에서 살아도, 그 땅에서 새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배를 채우면 숨이 막혀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오리라.

이상은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무리에서 빠져나가거나 - 시련을 견디지 못해서 - 도중에서 신천지를 찾는 일을 포기한 뒤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질 것이다. 어떤 혁명가건 그 마음을 영원히, '원형 그대로' 전하지는 않는다.

이상을 잃은 혁명가들이 ‘대안 없는 두려움’을 퍼뜨리고 가는 곳마다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짓을 일삼으며 마치 기생충처럼 주위의 노고를 뜯어먹기만 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모든 혁명은 타락하고 영웅이 폭군으로 바뀔 수도 있다지만, ‘새 인생’이라는 ‘혁명’을 외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달아나는) 시민들의 재산을 빼앗아 배를 채우는 짓을 서슴지 않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폭군이 아닌 ‘쓰레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움직이지 않는 기계에 녹이 슬듯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안주하려는 혁명가는 그대로 타락해버린다(아니면 자신이 품던 이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돌아가는 현실을 접한 사람들은 실망하여 지쳐버린다고 말하면 되겠지!).

이제, 지쳐버린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적대자가 내려치는 칼을 막지 못한다. 힘이 넘치고 희망이 깃들었을 때와는 달리 실망을 겪을 만큼 겪었고 이상도 내버린 지 오래인 사람들이 ‘북 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공작의 군대를 막지 못하는 건 차라리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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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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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가 상대를 오해해서 상처를 입었는가? 사랑하다가 상대방의 미움을 사고 ‘접근금지’처분을 받아서 버림받은 기분이 드는가? 아니면 그보다도 더 나쁜 상황에 처했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라.

이 책은 당신에게 “내가 모르는 사이, 나를 지배하고, 나의 사랑의 운명마저 결정짓는 무의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랑을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법”은 “슬플 땐 슬퍼하고, 미울 땐 미워하고, 외로울 땐 외로워하면서” “슬픔과 미움과 외로움을 기꺼이 맞이하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대의 “사랑이 서로가 가진 공격성이나 분노를 이길 만큼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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