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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블루스 - 설탕,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독, 개정판 마이너스 건강 3
윌리엄 더프티 지음, 이지연.최광민 옮김 / 북라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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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4년 전에 쓴 글이다. 그 글을 조금 다듬어서 여기에 올린다. 부디 이 글이 이 책을 고르시는 분들에게(그리고 이 책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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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상당히 단순하다. 설탕은 단 것을 좋아하는 서유럽 사람들이 만든 기호품인데, 유럽인은 그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를 기를 땅을 찾으려고 아메리카를 침략했으며, 그것을 기를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설탕 때문에 미국사회에 노예제도와 인종주의, 인종문제가 생겨났다는 것도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그건 설탕이 역사에 미친 영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서유럽인은 처음부터 설탕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설탕을 처음 먹기 시작한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설탕은 아랍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뒤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즐겨 먹은 아랍인들은 “보리 한 자루와 대추(야자) 한 자루,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만 가지고 행군하면서도 문명세계를 정복하던 씩씩한 조상들과는 달리 온갖 질병에 시달렸고, 그보다 나중에 들어온 튀르크(투르크)인도 설탕을 아무 곳에서나 먹는 버릇을 들임으로써 “더 이상 선대의 용사들처럼 용맹스럽게 적군을 무찌를 수 없었(서기 1573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여행한 독일인 식물학자인 ‘레온하르트 라우볼프’의 기록)”던 것(단, 라우볼프 박사의 기록에는 편견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군대는 서기 18세기에야 허약해졌고, 그 전에는 서유럽을 위협할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튀르크 병사와 장교들의 건강은 나빠졌을 것이나, 그들은 이슬람교로 정신을 무장하고 있었고, 화승총과 대포를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잘 짜인 군대조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기 16세기에 그들의 힘 자체가 허약해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또 설탕은 십자군이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하기 전에는 서유럽에 소개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설탕을 ‘낯선 것’으로 여겼으며 흔히 ‘마법사’나 ‘마녀’라고 불렸던 서유럽의 민간 치료자들은 이것을 온전하지 못한 식품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그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는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우리가 단순히 마녀재판의 희생자라고 알고 있었던 마법사나 마녀들이 알고 봤더니 시골의 '의사'이기도 했다는 걸 안 것이 이 책을 읽은 나의 커다란 수확이다!). 일반인들도 설탕에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한 예로 맥주를 빚을 때 설탕을 넣는 일은 ‘위험한 불순물’을 섞는 일로 여겨졌고 만약 “맥주에 설탕을 넣었다 발각되면 양조 업자 목에 칼을 씌워 구경거리로 삼거나 마을에서 쫓아냈다.”


그러던 것이 서(西)아시아(: '중동')에서 사탕수수 재배법과 술을 증류하는 방법을 배워온 사람들이 서유럽으로 돌아오면서부터는 달라져 설탕 무역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주요 사업이 되었고(물론 그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민간 치료자들을 화형에 처하거나 내쫓아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부터 이가 썩거나, 오줌에 설탕이 섞여져 나오거나, 머리칼이 빠지거나, 신경질적이 되고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증상이 광범위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설탕을 많이 먹기 시작한 뒤부터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병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오랫동안 항해하느라 신선한 채소를 못 먹어서 걸리는 병’으로 알고 있는 괴혈병도 사실은 설탕 때문에 생긴 병인데, 이 책의 지은이는 그 증거로 먼 거리를 항해했던 바이킹이나 페니키아인에게는 괴혈병이 생기지 않았지만, 설탕무역이 성행하던 시기에 배를 띄운 영국 해군에서는 많은 수병(水兵)이 괴혈병에 시달렸고, 그들의 식사에 항상 설탕이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든다(뱃사람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똑같은 병에 걸릴 줄 알았는데, 이건 좀 뜻밖이었다!).


이 병은 수병들이 설탕 대신 오렌지나 레몬주스를 섭취한 뒤에야 가라앉았고, 이후 영국 해군은 수병들에게서 설탕을 거둬 가는 대신 럼주와 오렌지/레몬주스를 마시게 해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설탕 제조업은 재정(財政)의 근본을 이루는 사업 가운데 하나였고 교회와 국가, 무역업체가 여기서 나오는 수입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설탕이 몸에 안 좋으며 여러 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설탕 제조와 판매를 쉽사리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50년대 중반에 '담배가 사람 몸에 해롭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사실을 숨긴 채 돈벌이에만 몰두했던 미국의 담배회사들이 떠올라 입맛이 쓰다. 아무튼 윗사람들은 다 이런 식이다)


결국 구미(歐美. 유럽과 미국) 사회의 각종 병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 병을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통증만을 완화시켜 주는 약을 만드는 약사나, 그 약을 처방하는 의사, 그리고 값이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온갖 가공식품에 설탕을 넣어서 파는 사업가들이 슈거 블루스(우리말로는 ‘설탕 중독증’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에 시달리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돈을 챙겨 제 주머니를 불렸다. 그리고 이 현상은 세계 여러 나라가 구미식 산업화를 받아들이면서 온 세계로 퍼졌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를 뒤덮고 있는 설탕 중독증의 실체다.


그럼 어떡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몸을 망치고 뇌를 망가뜨려 정신까지 망치며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을 요구해 우리의 등골을 휘게 하는 슈거 블루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책의 지은이(저자)는 “설탕을 먹지 말라”고 말한다. 비싼 약을 사먹거나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설탕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몸이 비타민이나 철분, 탄수화물을 낭비하지 않게 하면, 우리는 슈거 블루스에서 해방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설탕에 탐닉했고, 그 때문에 피부병, 눈병, 편두통, 간염, 출혈에 시달리다가 설탕을 끊은 지 “5개월 후 92킬로그램에서 61킬로그램으로 날씬하게 살을 뺐고, 그 결과 새 몸과 새 정신,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지은이의 경력 때문에 책의 내용이 한결 설득력 있게 들리며 그 호소가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나, 역사상 설탕이 인류에게 미친 부정적인 영향을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꼭 구해서 읽어보시라.


사족을 달자면, 나는 정부와 시민단체와 민간 기업이 이 문제에 함께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설탕을 듬뿍 쳐서 내놓는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을거리'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건 한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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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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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작가의 목적이 독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그 '소명'을 다했다. 나는 지난 해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느덧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소년이 되어 허리에 폭탄을 두르고 시온주의자들에게 돌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내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분노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로 울었고, 우울해져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밀려들어와 총칼을 들이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빼앗긴 사람들, ('프란츠 파농'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 침략자들에게 고문당하고, 감시당하고, 착취당하는 일을 하나하나 다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이야기는 - 나는 그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릴 자격이 없으므로 - 자기 자식이 아랍인과 시온주의자들의 싸움을 구경하다가 시온주의자들의 총알을 맞고 기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시온주의자들이 내린 '통행금지령' 때문에 병원에도 못 가고 자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와, 시온주의자들이 달려와서 자기 집에 돌팔매를 마구 던지는 걸 반격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총알"을 맞아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에서 그치고자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만난 '레리'라는 미국인은 - 시온주의자들은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만 "폭력은 안 되고,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떠들더라...그래, 래리 넌 쳐들어와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은 놔 두고, 맞는 사람들에게 구호품 상자만 던져주면 된다고 생각하냐?)

그들이 광신도이거나 국수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관광지에서 '외국인'이자 '비(非) 무슬림'인 조 사코를 안내한 아랍 무슬림 노인은 "당신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조 사코가 찾아간 아랍인 집안의 여주인은 그가 천주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환영"한다고 말한다. 또 사회복지센터에서 장애우를 위해 일하는 무슬림은 시온주의자들의 "점령정책에 반대"하지만 "신체부자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유럽에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를 결혼식에 초대한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겠네."라고 노래하면서도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그의 곁에 몰려들어 "영어 실력"을 뽐내기까지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가 예닌에서 만난 "전직 교사"인 아랍인 노인은 구미인인 그의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좋고, 아랍인 소설가들의 작품은 '전부 바보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기 국민을 위해 일하니까" "평화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저항은 '종교'나 '애국심'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누구나 지니고 있는 존엄성을 무시당했고, 그러면서도 비(非) 이슬람 세계에게 - 심지어는 같은 아랍 국가 안에서도 - '악마'로 낙인찍힌 것이 억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침략자에 가해자인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싸울까?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그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 길'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있거나 - 유태인처럼 - 로비를 하지 않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기자들을 모셔다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이야기한다. 또한 점령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극단적인 일교차"에 "벌레들"이 들끓고, 물은 모자라며, 의료 시설이 거의 없는 수용소에서도 쪽지를 몰래 돌리거나 "생태학, 철학, 아인슈타인"을 배운다(자백을 강요하며 고문할 때, 끝까지 자백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엄연한 '투쟁'이자 '저항'이다!). 그곳에서도 아랍인 여성 지식인들은 여성단체를 만들어 아랍인 남성들의 폭력과 아랍인 여성들의 무지에 맞서 싸우고 있다. 

물이 모자라는 곳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자본으로 아랍인에게 돌아갈 물과 흙을 빼앗아가는 시온주의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온실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아랍인 농민들은 어떤가? 그들은 '유태인들만이 '황무지'를 개간할 자격이 있고, 아랍인은 그러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에 훌륭히 도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살아있는 이상(그리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이상) - 분노할지언정 -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며, 이들을 본받아 '옛날에 우리가 지배했으니, 지금도 지배해야 한다."는 그릇된 소유욕과 정복욕을 지닌 자들과 맞서 싸워 '역사적 숙명'이라는 족쇄를 깨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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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3 - 우리 역사를 바꿀 19가지 오해와 진실
이덕일. 김병기 지음 / 김영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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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때는 - 이제까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설들을 대담하게(!) 담아서 내놓았기 때문에 - 과연 이것이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의 책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백제가 해외에 식민지를 만들었다던가, 왕건의 조상이 신라 밖에서 활동하던 교포라는 주장은 이전부터 제기된 것이지만, 역사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새로운 학설'을 처음 내놓아서가 아니라, 이미 나와 있던 학설을 보다 간결하게 정리하고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정리했기 떄문에 의미 있다는 책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 이 책은 '우리가 애써 무시했던 고대사'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잊고 싶은 근현대사'에도 똑같이(!)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도 좋다. 흔히 고대사를 중요시하는 역사책은 중세사나 근세사, 근현대사를 소흘하게 다루고 근세사를 다루는 책은 근세사에만 빠져서 고대사나 근현대사를 무시하기 일쑤며 근현대사를 중시하는 책은 고대사를 말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기 일쑨데, 이 책은 그러지 않고 모든 시대의 모든 역사를 똑같은 분량으로 다루면서 똑같은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다(자신감을 잃어버린 모방은 사대주의로 이어졌고, '공존'과 '보편 법칙'을 잊어버린 자존심은 자만심 내지는 국수주의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이른바 '치우천황'이 하북성이나 산동성에 살았던 '동이東夷'족의 수호신일 수는 있어도 그가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는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점이 불만스럽고('동이'는 주나라가 붙인 명칭이지 자신들이 스스로 지은 이름이 아니므로,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논증하지 않으면 그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말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정작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고조선이나 부여는 다루지 않은 채 치우천황에서 고구려/백제로 곧바로 이어지는 서술을 한 것도 (조금은) 못마땅하다.

또 백제의 해외 식민지 건설을 다루면서 남조 사서의 기록이 진짜인지 아닌지만 다뤘을 뿐 중국 광서장족자치구에 남아있는 '백제향'이나, "백제가 진(晉)나라 때부터...송,제,양나라 때까지 장강 왼쪽(강소성)에 웅거했다."는 북조 사서의 기록은 살피지 않은 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 비록 신라의 근친혼이 그 시대의 질서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 '우리가 근친혼을 금지한 것이 오래되지 않으니 이를 전통으로 여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주장은 자칫 잘못하면 근친혼을 되살리자는 말처럼 들리는 점도 신경쓰인다.

마음같아서는 지은이들에게 이런 점을 고쳐달라는 편지라도 보내고 싶으나 이미 책은 나왔고, 독자인 내게 남은 것은 그저 이 책이 지닌 장점과 약점을 널리 설명하는 길뿐이니, 부디 이 책을 발판삼아 보다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져 언젠가는 이 책을 뛰어넘을 저작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임 :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만한 책이 없으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 분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그러면 많은 사실과 지식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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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자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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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대학교 도서관에서 '동녘'이 아닌 다른 출판사가 우리말로 옮겨서 내놓은 [광란자]의 표지를 본 적이 있다. 제제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이 놀던 소년으로만 기억하던 내게, '청년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식구들과 갈등하는 제제'는 너무나 낯선 존재였고 나는 환상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 그 책을 외면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다시 만난 [광란자]는 내게 동심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꿈'을 키워주던 라임오렌지 나무도, 함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던 '아담'이라는 두꺼비도 없는, 말 그대로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같은 또래인 동무(:친구)와 함께 '권위'를 상징하는 교장을 욕하고, 사춘기 소녀와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답답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해 식구들과 갈등하는 제제...나는 그에게서 졸업과 취직, 독립을 걱정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읽었고 그 때문에 그의 사랑이 - 양아버지의 병과 씰비아 (제제의 연인) 네 식구들의 감시 때문에 벽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고 슬퍼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는 걸 말하면 너무 감상적이라는 말을 듣게 될까?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 가슴아팠고 그래서 나는 어느새 그가 되어 "지리 과목은 안 알려진 곳으로 방랑하라고 유혹하는 상상의 날개!"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2~30대나,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으면서 괴로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볼 것. 물론 그 전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햇빛사냥]은 꼭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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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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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은 햄버거가 '자유'와 '합리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가? 피자가 '모든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진수성찬'이라고 여기는가? 다른 음식은 귀찮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맥도날드 햄버거사를 만든 레이 크록이 즉석 식품(패스트푸드) 산업을 “단순히 동족(: 다른 업체)을 죽여야 하는 게임일 뿐”이라고 말하고, 대부분 10대나 20대인 종업원들이 “매장이 붐빌 때까지 공식적인 근무 시작을 미루도록 강요받고 또 자신의 근무 시간이 끝난 다음에도 별도 수당 없이 일할 것을 강요”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지 못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즉석 식품 업체의 창업자가 노동자들이 최저 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제안을 듣고 “나는 이 제안에 찬성합니다, 정말로요.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말입니다.”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반대한다는 사실을 읽기만 해도 당신이 이들 업체에 대해 품고 있던 선입견이 산산이 깨질 것이다.


이 산업에 필요한 고기를 대 주는 사람들은 손가락을 잃어버려도 “한 손이 정상이 아니라면 다른 손을 사용하면 되겠네.”라는 냉담한 대답을 들으며, “심지어 수족(손발 - 옮긴이) 절단 수술을 받은 다음 날에도 출근을 강요”받는다. 척추 수술을 받은 직원이 일터로 돌아오면서 ‘척추 수술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왜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를 입증하는 사례’로 소개되는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하나?


양고기와 곡물을 갈아서 소에게 먹이는 사육방식 때문에 광우병이나 O - 157이라는 질병이 더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기 1997년 KCBS - TV가 "레스토랑 종업원들이 음식을 만들면서 손으로 코를 풀거나, 손가락에 묻은 샐러드 드레싱을 빨아먹거나, 코를 후비거나, 음식이 담긴 접시 위에서 담뱃재를 터는 모습“을 찍은 사실은 차라리 ‘애교’라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는 이런 사실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이런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벗어나려면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삼는 맥도날드의 광고를 줄이고, 더 엄격한 위생 규정을 만들어서 적용해야 하며, 업체 안에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돌아서서 매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라고 촉구한다.


‘더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는 세상, 인간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 사람이 <상품>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구해서 읽어보시라. 비록 지은이가 미국을 겨냥해 책을 쓰긴 했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맥도날드와 피자헛에 중독되어 미국 시민들과 비슷한 병을 앓고 있으므로 이 책이 가르쳐주는 실상과 해법은 이 나라 시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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