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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사람들
라이너 침닉 글, 그림, 장혜경 옮김 / 작가정신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북소리는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우고, 의욕을 불어넣는 묘한 매력을 지닌 음악이다. 그 소리는 -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 가슴을 뒤흔들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디론가로 떠나는) 행진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 동화에서 북을 두드리는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합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신천지를 찾아 떠납시다!”라고 외치는 ‘혁명가’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북소리는 단순한 타악기 소리가 아니라, 세상이 새롭게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맨 처음 도시에 나타난 북 치는 사람이 단 한명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허허벌판에 떨어진 볍씨 한 알처럼 외로운 신세였지만, 곧 그들을 억누르던 사람들을 동지로 만들고(북을 맨 노인을 감시하던 간수장과 병사들이 노인과 함께 북을 치며 구호를 외치고), 희망을 퍼뜨려서 기득권자들이 만든 사회구조에 갇혀 있던 ‘어중간한 사람들’이 혁명(또는 개혁)을 지지하도록 부추긴다(시민들이 북을 매고 거리로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에 반감을 품은 사람들이 들고일어나고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새 물결을 막으려고 하는데(기병대나 - 북 치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가 아닌 - 또 다른 도시를 지키는 병사들이 북 치는 사람들과 싸운 일) 만약 혁명이라는 물결이 콸콸 흐를 때(북 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들이 새 인생과 신천지를 떠들면서 활기차게 북을 칠 때) 이런 일을 시도한다면 둑이 물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물이 둑을 무너뜨리고 사방에 넘쳐흐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북 치는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 도시의 수비대가 처참하게 무너진 사실이 좋은 예다).
혁명이 이루어지는 듯하면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신천지를 찾고, 그곳에 씨앗을 심고 땅을 일구고 집을 짓겠지. … 그러나 황금을 파는 일에 몰두하다 새 소리와 맑고 신선한 물, 울창한 나무들을 잃어버리고, 굶다가 황금으로 만든 무덤에 묻히고, 일은 안하고 모두가 황금 관을 쓴 채 임금이 되려고 하다가 곡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리라.
늘 얼어붙은 땅과 늘 더운 모래땅에 갇힌 채 오랫동안 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도 하리라. 얼핏 보면 곡식이 차고 넘칠 정도로 자라서 낙원처럼 여겨지는 곳에서 살아도, 그 땅에서 새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배를 채우면 숨이 막혀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오리라.
이상은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무리에서 빠져나가거나 - 시련을 견디지 못해서 - 도중에서 신천지를 찾는 일을 포기한 뒤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질 것이다. 어떤 혁명가건 그 마음을 영원히, '원형 그대로' 전하지는 않는다.
이상을 잃은 혁명가들이 ‘대안 없는 두려움’을 퍼뜨리고 가는 곳마다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짓을 일삼으며 마치 기생충처럼 주위의 노고를 뜯어먹기만 하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모든 혁명은 타락하고 영웅이 폭군으로 바뀔 수도 있다지만, ‘새 인생’이라는 ‘혁명’을 외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 달아나는) 시민들의 재산을 빼앗아 배를 채우는 짓을 서슴지 않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폭군이 아닌 ‘쓰레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움직이지 않는 기계에 녹이 슬듯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고 안주하려는 혁명가는 그대로 타락해버린다(아니면 자신이 품던 이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돌아가는 현실을 접한 사람들은 실망하여 지쳐버린다고 말하면 되겠지!).
이제, 지쳐버린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적대자가 내려치는 칼을 막지 못한다. 힘이 넘치고 희망이 깃들었을 때와는 달리 실망을 겪을 만큼 겪었고 이상도 내버린 지 오래인 사람들이 ‘북 치는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공작의 군대를 막지 못하는 건 차라리 당연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