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약 작가의 목적이 독자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그 '소명'을 다했다. 나는 지난 해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느덧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소년이 되어 허리에 폭탄을 두르고 시온주의자들에게 돌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내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분노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채로 울었고, 우울해져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밀려들어와 총칼을 들이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빼앗긴 사람들, ('프란츠 파농'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 침략자들에게 고문당하고, 감시당하고, 착취당하는 일을 하나하나 다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이야기는 - 나는 그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릴 자격이 없으므로 - 자기 자식이 아랍인과 시온주의자들의 싸움을 구경하다가 시온주의자들의 총알을 맞고 기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시온주의자들이 내린 '통행금지령' 때문에 병원에도 못 가고 자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와, 시온주의자들이 달려와서 자기 집에 돌팔매를 마구 던지는 걸 반격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총알"을 맞아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에서 그치고자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 사코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만난 '레리'라는 미국인은 - 시온주의자들은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으면서 -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만 "폭력은 안 되고,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떠들더라...그래, 래리 넌 쳐들어와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들은 놔 두고, 맞는 사람들에게 구호품 상자만 던져주면 된다고 생각하냐?)

그들이 광신도이거나 국수주의자인 것도 아니다. 관광지에서 '외국인'이자 '비(非) 무슬림'인 조 사코를 안내한 아랍 무슬림 노인은 "당신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조 사코가 찾아간 아랍인 집안의 여주인은 그가 천주교도임에도 불구하고 "환영"한다고 말한다. 또 사회복지센터에서 장애우를 위해 일하는 무슬림은 시온주의자들의 "점령정책에 반대"하지만 "신체부자유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유럽에서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를 결혼식에 초대한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키겠네."라고 노래하면서도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그의 곁에 몰려들어 "영어 실력"을 뽐내기까지 하는 것이다(그리고 그가 예닌에서 만난 "전직 교사"인 아랍인 노인은 구미인인 그의 앞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좋고, 아랍인 소설가들의 작품은 '전부 바보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자기 국민을 위해 일하니까" "평화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저항은 '종교'나 '애국심'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누구나 지니고 있는 존엄성을 무시당했고, 그러면서도 비(非) 이슬람 세계에게 - 심지어는 같은 아랍 국가 안에서도 - '악마'로 낙인찍힌 것이 억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침략자에 가해자인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싸울까? 정말이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그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 길'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있거나 - 유태인처럼 - 로비를 하지 않고,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기자들을 모셔다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열심히, 부지런히' 이야기한다. 또한 점령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극단적인 일교차"에 "벌레들"이 들끓고, 물은 모자라며, 의료 시설이 거의 없는 수용소에서도 쪽지를 몰래 돌리거나 "생태학, 철학, 아인슈타인"을 배운다(자백을 강요하며 고문할 때, 끝까지 자백하기를 거부하는 것도 엄연한 '투쟁'이자 '저항'이다!). 그곳에서도 아랍인 여성 지식인들은 여성단체를 만들어 아랍인 남성들의 폭력과 아랍인 여성들의 무지에 맞서 싸우고 있다. 

물이 모자라는 곳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자본으로 아랍인에게 돌아갈 물과 흙을 빼앗아가는 시온주의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온실에서 "토마토"를 기르는 아랍인 농민들은 어떤가? 그들은 '유태인들만이 '황무지'를 개간할 자격이 있고, 아랍인은 그러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에 훌륭히 도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살아있는 이상(그리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이상) - 분노할지언정 - 결코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며, 이들을 본받아 '옛날에 우리가 지배했으니, 지금도 지배해야 한다."는 그릇된 소유욕과 정복욕을 지닌 자들과 맞서 싸워 '역사적 숙명'이라는 족쇄를 깨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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