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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밀레니엄 북스 39
루쉰 지음, 우인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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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의 이름은 '납함'이다.

광인일기, 아Q정전, 약, 공을기, 내일 등 자서와 서시를 제외한 13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저자인 루쉰은 청조 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 구교육을 받아오다 18세에 신학문에 눈을 떠 일본에 유학을 가게 된다. 유학중 수업시간에 교슈님이 보여주는 시사영상에서 충국인들의 어리석고 약한 모습을 보고 모든 학업을 접고, 인민의 정신개조를 위해 할 일을 찾게 된다. 인민의 정신을 뜯어 고치는데 문학과 예술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문예 운동을 제창하기로 마음먹고 <<신생>>이라는 문예지를 창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중국으로 돌아온 루쉰은 교원으로 이론가로 활동하다 1917년 <광인일기>를 발표한다.

 

<광인일기>는 루쉰의 첫 작품이면서 중국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된다.

광인의 수기라는 일찌기 없었던 형식도 새로웠지만, 유교의 허위의식을 식인에 비유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인민 중 선지자는 미치광이일 수 밖에 없다는 설정으로 강도 높게 비판하는 이 소설은 당시 중국을 뒤흔들만큼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4000년 넘게 온 중국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된 유교 사상을 식인으로 깔아뭉개었으니, 그 사회적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아마 생명의 위협도 받았을 것이다. 루쉰이 <광인일기>를 쓴 때로 부터 9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우리 나라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쓴 교수도 한 동안 매장당해 잠수를 탈 정도로 사회적 역반응이 컸다고 하니, 당시에야 목숨부지한 게 용하다 하겠다. 첫 작품이 이런 소설이었으니, 이후로 루쉰이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며 논란거리가 되었음은 불보듯 뻔해 보인다. 혹시 루쉰이 이것도 노린 것이었을까?

 

<아Q정전>엔 '아Q'라는 정말 상식으로서는 이해 안되고, 감당하기 힘든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변변찮은 이 인물에게는 일명 '정신승리법'이라 불리는 아주 독특한 사고 방식이 있다. 지나친 자기 합리화. 정말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는 모습에 어이없기까지한 캐릭터인데, 이 모습이 당시 중국인민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무슨 일에서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좋을대로 말도 안대는 이유를 붙여서 자기 생각 속에서는 언제나 승리하고, 마음편하게 잠들 수 있는 긍정적이라고 하기엔 뭔가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정신승리법'.

당시 많은 중국인민들 이 소설 속 아Q를 보면서 자신의 이야기라며, 작가가 자신의 지인이 아닐가 놀라워 했다고 한다.

 

루쉰은 문학을 통해 당시 인민의 모자란 모습, 부끄러운 현실을 처참할 정도로 리얼하게 그려 보여주면서 '우리 이렇게 살지 말자. 생각을 바꾸고 제대로 살자.'고 외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좀더 강하고 충격적인 비유와 문체로 표현하고, 또 좀 더 많은 인민이 읽기를 원해 장편은 쓰지 않고 주로 단편을 썼을 거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 문예 운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민의 정신개조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으로 자신이 선각자적 입지에서 목숨을 걸고 밀고 나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루쉰에게 있어 문학은 결코 유희나 낭만일수는 없었겠다.

 

이 소설집 제목 '납함'은 '고함, 외침'이라는 뜻이다.

루쉰이 소설을 쓴 목적과 의도가 처절하고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제목이다.

'제발 이런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자!!!'고 온 인민을 향해 외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루쉰의 소설집을 읽고 함께 읽은 이들과 토론을 하면서 '내가 만약 작가라면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한참 생각을 해 보니, 시작은 그저 내가 흥미있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주제를 가지고 재미를 나눌 수 있는 결국 재미을 위한 글쓰기를 하고자 하겠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 가서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상을 담고, 더 발전된 사회를 위해 영향력을 담은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길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나 개인보다 사회나 세상을 헤아리는 대승적 가치를 더 크게 보는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이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그 당시 루쉰 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란 생각에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예술성에 있어서 그다치 큰 점수를 주기 힘든 루쉰의 작품들이지만, 문학이 사회에 이토록 강렬하게 어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이의 손에서 내려질 줄 모르는 것이겠다.

목숨을 건 루쉰의 필행,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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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밀레니엄 북스 99
한비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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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읽게 된 고전 철학의 첫번째 책이 <한비자>였다.

책이 내 손에 잡힐 때까지 나는 불안에 떨었다.

과연 다 읽어낼 수 있을까? 하고.

다행히 신원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은 나의 부담을 한 방에 날려 주었다.

실제 <한비자>는 당연히 한문으로만 쓰여 있을 것이고, 양 또한 방대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을 쉽게 번역하고 중복되거나 연결이 고르지 않은 것은 편집해서 소제목 별로 한 장 남짓되게 정리해 주어 읽어나가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 점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욕심 같아서는 한 몇 달 잡고 옥편 들고 앉아서 각 장 말미에 실린 원본을 하나하나 해석해 읽어보고도 싶지만, 노력에 비해 이해가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덮어 버릴 것이 뻔해 보이기에, 그런 우려를 덜어준 이 책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제자백가 마지막 사상가 <한비>의 생각을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여, 많이 권하게 될 것 같다.

 

한비는 기원전 3세기 초, 한나라 왕 안(安)의 서공자였다. 출신도 불안정했지만, 말더음이 이기까지 했던 순자의 제자로 수학하기도 했으며, 왕이 자신을 등용해 주길 원해 목숨을 걸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결국 한비는 조국 한나라에서는 뜻을 펴지 못하고, 진나라 시황의 마음을 사지만,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동기 이사의 계략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진시황은 한비는 잃었으나, 그의 사상은 오롯이 받아들여 치정에 적극 활용한다. 그래서 한비의 역사적인 역할은 춘추전국 시대라고 하는 난세에 태어난 제가의 사상을 시대의 요청에 응해 하나의 정치 기술로 정리하여 진나라의 시황제에게 넘긴 데 있다.(p.347) 고도 한다.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병편 : 명군의 덕목을 이야기한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을 법(法)이라 하고, 임금이 신하를 통솔하는 방법을 술(術)이라고 하는데, 이 법술을 바탕으로 한 형명참동(形名參同)이 한비자 사상의 기본 개념이다.특이한 점은 신하가 임금 앞에서 약속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도 벌한다는 점이다. 지나친 충성은 결국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십과편 : 임금이 몸을 망치고 나라를 잃게 되는 잘못 10가지를 이야기 한다.

 

고분편 : 자신의 이론이 고국 한나라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울분을 담아 법술을 행하지 않을 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중신이 임금의 최 측근에서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일을 크게 한탄하고, 임금이 지혜롭게 중신을 가려 해를 피해야 함을 강조한다.

 

세난편 : 신하로서 약자의 입장에서 쓴 문장들이다.

신하로서 임금에게 진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며, 상대에 따라 달리 말할 것과 역린을 건드리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화씨편 : <고분편>과 같은 내용이나 다른 필치로 이야기한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보여주어, 임금이 사람들의 진언을 들으려 하지 않아 난세가 평정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망징편 : 말 그대로 '망할 징조'를 열거한다.

법술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 구체적인 에를 들어 전개하는 한비의 강점을 통해 한비의 사고법을 확인할 수 있다.

 

비내편 : 임금이 주의해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처첩까지 다루고 있다.

임금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임금의 목숨은 위태롭다.

임금의 아내 역시 자기 이익에 따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모든 인간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생각은 순자의 '성악설'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비의 목적은 군주에 의한 백성의 통치였을 뿐, 순자처럼 백성의 교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유가의 덕치주의에 반대되는 견해라 하여 유가에게서 이단시 된다.

 

설림상편 / 설림하편 : 설화집으로서 한비의 박학다식함을 엿볼 수 있다.

 

내림설상편 : 칠술(임금이 행할 술의 7가지)를 다룬다.

다시 한 번 형명참동(形名參同)을 강조하고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하는 속임수를 통해 신하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라고 이야기한다.

 

내림설하편 : 육미를 다룬다.

 

외저설편 : 자기주장을 위한 설화집으로, 해학과 문명비판이 적당히 안배되면서 잘 조화를 이룬다.

 

난편 : 성인과 현인의 사상에 반박하는 논쟁문이다. 이 반박은 법술의 공덕을 말하기 위해 부정하는 것이며, 한비가 일생을 통해 말해온 법술은 평범한 인물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하니, 임금의 통치법을 표준화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두편 : 학자, 유세가, 협객, 측근, 상인과 직공 다섯 종류의 좀벌레를 지적한다.

특히, 학자들을 크게 비판하고, 인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명군이 되는 길은 법을 통일하는 것일 뿐, 지혜있는 사람을 애써 찾는 일이 아니고, 술을 분명히 실천하는 일일 뿐, 성실한 사람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평생에 걸쳐 목숨을 걸고 쓴 사상서 였기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하나하나 구체적인 예를 꼭꼭 제시하여 한비의 박학다식함이나 대쪽 같은 굳은 의지에 연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이런 사상도 저런 사상도 공론화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말 한 마디에 목이 떨어지는 일이 빈번했음은 물론 승자와 패자가 하루하루 역전되었을 당시에 이런 방대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담은 사상서는 상당히 획기적이었을 거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한비의 사상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그 자신의 통찰력이 뛰어났음을 인정하더라도 현대에 한비의 이런 사상을 적용해 본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 보다는 독재체제에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법이며 술 모두를 분립없이 임금이 반드시 손에 쥐고 흔들 것을 기본으로 하며, 그 중 하나라도 놓으며 나라가 위험해 진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외에서 국가관으로 삼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다고 보고, 대신 시간을 다투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며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는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은 성립과 존재 자체가 이익(실리)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가 자기 이익에 따를 뿐이라는 한비의 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게다가 CEO나 수장을 중심으로 권력이 일원화 되어 중앙집권 방식이 되면 뛰어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어 시간을 다투는 속도의 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비자> 책 속에서도 이야기 하듯 시대가 다르면 해결책도 반드시 그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한비의 사상에서 얻을 만한 정신은 배우더라도 적용할 때는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어려워 이해는 커녕 다 읽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씻고, <한비자>를 이 정도나마 읽어낸 내가 자랑스럽다. 이제 어디서 <한비자>라는 말을 들으면 한 3분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뿌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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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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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 때는 참 낯설고 어색한 작품이어서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시인 이상의 시들과 함께 '낯설게 표현하기'를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지난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읽은 <변신>은 역시 그때와 다르게 읽혔다. 여전히 낯선 상황, 낯선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조금 생겼나 보다.

 

부모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독충으로 변해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가족들은 경악하고, 두려워하지만 점점 적응해 간다. -역시 인간이 적응 못할 상황은 없다.- 상상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 가족들이 적응해 가는 과정, 또 벌레로 변한 당사자 그레고르 또한 벌레로서 삶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 그 과정 속에서 가족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찾고 여동생이 가족의 새로운 희망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이 작품의 서술에서 카프카가 참 예민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은 어디에선가 본 카프카의 사진 때문이기도 한데, 살이 없는 볼, 배우 정보석의 입처럼 얇으며 일자로 다문 입술, 위로 날카롭게 솟은 귀, 거기에 눈동자가 큰 눈. 어쩐지 힘이 있어 강직하기 보다는 내적 고집 덕에 버티고 있는 만만치 않으면서도 조금은 가련하기까지 한 인상이다. 나는 종종 작가의 얼굴을 알고 나면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작품에 완전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카프카의 모습을 계속 그리면서 읽다보니, 더욱 잘 읽혔다. 아마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족의 모습이나 분위기가 카프카 본인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어서 일 것이다.- 해설이 그렇다고 확인해 주었다.- 거기에 카프카는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 내놓고 인정받기 보다는 안으로 더 고독을 쌓는 시대적 우울함도 가졌다고 하니,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만들어졌겠구나 싶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중 여동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음악에 재능도 있고, 관심도 있지만, 음악학교에 진학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집안일이나 도우며 소일하던 여동생이었고, 그레고르가 돈을 더 벌어 음악학교에 진학시켜 줄 계획을 갖고 있는 자립할 능력이 없는 존재였는데,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방 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유일하게 매일 그레고르의 방을 방문하고 청소하고 먹을 것을 챙기는 용기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죽은 후 가족이 전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서는 그레테 그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을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원으로서 또는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계획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떠오른 문구가 '난세에 영웅이 난다' 였다. 그리고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였다.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으면 가진 능력도 썩히기 마련인 걸 살면서 많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건성하고, 집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살던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집안이 망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여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해 내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내 주변에도 몇 있다. 그 들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고서야 자신의 존재감을 자각함은 물론 주변 사람들 조차 '그래 너라도...'하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하고 그를 중심에 두고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그 주변의 희망의 눈길이나 텔레파시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영웅이 되게도 하는 것을 본다.

실존. 실존에 대해 문학계에서는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실존은 방금 언급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각의 존재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순간. 그것을 포착한 작품, 그것이 실존문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카프카.. 시간을 갖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표현이 부족한 듯 하나, 정말 즐겁고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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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 - 긍정적 사고를 키우는
하마오 미노루 지음, 이민영 옮김 / 비즈니스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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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나 자녀 교육 관련 도서를 너무 많이 읽어 와서 인지, 솔직히 처음 이 책을 보고선 별 느낌이 없었다. 혹하고 빠져들 어떤 성공사례를 보여주는 책도 아닌데다가, 그냥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잔잔히 어쩌면 뻔한 이야기들을 짧막짧막 나열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저자의 특이한 점이라면 일본에서 동궁 시종으로 오랜 시간 일하며 왕족을 최측근에서 모셨다는 경험 정도였다. 간혹 이야기 중에 일본의 전 천황인 쇼와 천황, 현 아키히토 천황, 히로노미야 황태자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예로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촤라락 읽어 보는데,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한 책이라 별 할 말이 없었던 책이었기에 한 번 훑어 보고는 한쪽에 밀어 놓았었다.

 

한 2주만에 다시 책을 들고 한장 한장 넘겨보는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한 구절, 한 구절 눈에 들어오는 말들이 있었다. 그간 내 생활이나 심리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소제목 하나하나가 가슴에 들어와 조로록 박히는 것을 느꼈다. 희한한 일이다. 눈을 감고 의자를 뒤로 주욱 젖히고 가만 생각해 보니, 지난 번 한 번 후루룩 읽은 후에 별거 없네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책 속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지금까지 염두에 두고 늘 되새김질 했음을 깨달았다. 간혹 이런 일이 있긴 한데, 이 책을 두고 이런 경험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 책은 제목엔 ' 긍정적 사고를 키우는 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이지만, 자녀교육 전반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6가지 파트 중 한 파트이다. 

 

<1.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정말 단절되었나> 에서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단절이 없으려면 혹은 극복하려면 부모가 동심과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아이 눈높이에 맞추되, 어른이 되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길 권한다.

<2. 글의 꽃다발을 갖고 있나?> 에서는 어른이 되어 하지 않는 일들을 지적하며, 부모가 먼저 좋은 글을 읽고 , 멋진 글을 만나면 써두고, 진지하게 쓰며, 명상을 하며 자신을 항상 돌아보며 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잔소리 할 것을 부모가 먼저 실천해 보이라는 이야기다.

<3. 꾸짖기와 칭찬하기>에서는 기본적으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랑을 가지고, 아이는 하늘이 준 선물임을 강조한다. 꾸짖을 때는 부모가 원칙과 신념을 가져야 하고, 늘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을 아끼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꾸짖을 때는 용기 있게 꾸짖어야 한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꾸짖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나쁜 일을 했으면 당연히 꾸짖어야 하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화를 낸다는 것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p.90

따끔하게 꾸짖고 깔끔하게 잊어라, 엄마의 경우는 어떨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너무 오래 꾸짖는다. 보통 먼저 서론부터 시작한다. 머리말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등장인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꾸중을 듣는 아이는 물론 엄마도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따라서 먼저 결론을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p.92

또 하나 엄마들의 특징은 집요하다는 점이다. 2년 전의 일도 들춰가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의 기억에는 이미 없는 일이다. 따라서 조금 전의 일이나 어제 일을 말해도 소용없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잘못한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꾸짖고 나서는 깔끔하게 잊어라, 이 부분은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p.92-93

 

교육, 에듀케이션(Education)이라는 말의 어원은 '그 곳에서 이끌어 낸다.'이다. 즉 교육이란, 아이 안에 존재하는 재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p.96

우리도 그렇다. '너라면 할 수 있어.', '너라면 분명히 해낼 거야.' 라는 말을 들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99

"잘 할 수 있어, 차분히 하렴. 엄마가 기다릴게." 라고 말하자. p.101

 

<4. 예의 바른 아이로 키워라>에서는 아이에게 강한 의지를 키워주라고 이야기 하는데, 기본은 역시 부모가 먼저 실천하여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5. 반항기의 아이에게> 에서는 아이와 짧은 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데, 온 마음을 다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지 않는 일을 아이가 할 때에는 하지 말라고 하기 보다 그 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음을 알려주라고 충고한다.

 

'엄마는 나를 전혀 몰라, 알려고도 하지 않잖아!'

아이는 이렇게 느낄 때 부모에게 가장 많이 반항한다. 해결이 안 될 수도 있고 완전한 해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기쁠 것이다. 아이가 '아빠 엄마가 정말 나를 깊이 생각하는 구나, 사랑하는 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p.149

 

<6.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까?>에서는 80%의 엄마들이 자신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부모를 선택했다고 한다. 5% 밖에 안되는 교사보다 부모의 영향력이 월등히 크다는 뜻이기에 부모의 신념이나 행동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아이에게 적성에 맞는 길을 가게 할 것과 국어를 가장 기본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요즘 엄마들은 너무 머리가 좋고 똑똑해서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을 막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머리 좋은 엄마가 되어 머리 나쁜 척하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한 마디가 나는 가장 강하게 와 닿았다. 나를 비롯한 요즘 엄마들은 고학력에 나름 공부해본 경험이며 경력이 상당해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더 업그레이드 된 나름의 커리큘럼은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자신의 생각대로 아이를 이끌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합리적이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아이를 이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는 건 당연하지만, 한 편 아이의 자기주도성이나 스스로 찾고 성취해 가는 재미를 빼앗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함을 따끔하게 지적해 주어서 뜨끔하면서도 좋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종합예술 같다. 더 키워봐야 알겠지만, 내가 잠시 타성에 젖거나 순간을 놓쳐도 아이에겐 그대로 영향이 미치는 걸 매일 보게 된다. 늘 아쉽고, 늘 안타깝고, 늘 반성하며, 늘 내일을 기약한다. 제발 이 엄마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추어 아이들이 자라주기를...., 내가 깨치고 거듭나기 전에 아이들이 앞서가서 내게 엄마로서 실망하지 않기를... 어줍잖고도 비겁한 기도도 해 본다.

 

이 책에선 한 마디 한 마디 꼭 필요하고 맞는 말들을 읽기 편한 분량으로 하고 있다.

제목만 주욱 읽어도 부모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당연한 이야기 들이다.

읽어볼 만 하다. 하지만, 자녀교육서를 10권 이상 읽었다면 패스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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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문화를 읽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 동녘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 더 넓게는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밀린 숙제 같은 짐이 항상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 시대 30대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다양하게, 어디까지 깊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답답해했다. 나는 철학을 모르고,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을 안다, 철학을 한다라고 이야기하려면 오랜 세월 유구히 전해 오는 그 많은 고전들을 다 읽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많은 양에 압도되어 계획도 규모도 없이 기회 닿는대로 순서없이 마구 읽다 지쳐 자빠지고,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최근 적절한 길잡이를 찾아, 10년 공부를 다짐했다. 열하일기의 허생은 마누라의 바가지에 10년 공부를 다 하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집을 떠났지만, 나는 10년 공부 득도의 길을 멈추지 않고 기필코 가보리라 주먹 꽉 쥔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책 <철학, 문화를 읽다>를 만났다.

 

<철학, 문화를 읽다>는 '글머리에'- 이 책은 우리 주변의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해서 그것이 우리의 의식과 실천, 또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철학적으로 반성해 보는 안내서입니다.- 에서 밝혀 두었듯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13명의 교수가 일상 속 12가지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짧은 보고서 형식의 글 모음이다. 12가지 주제는 인간, 인간관계, 성 차별, 정치, 대중음악, 소비, 건강, 환경, 속도, 종교, 가상, 전통문화 등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1989년 창립되었고, 철학을 기반으로 한 연구자들의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전문가 단체다.

 

인상적이었던 주제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1장, 군자에서 시민까지 - 유가적 인간과 근대적 인간

철학적으로, 고대 아테네의 시민 의식과 중국 선진 시기의 군자관은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 중 군자는 간단히 말하자면 도덕성을 갖춘 인간을 의미한다. 공자는 주나라 초기에 주공이 정립한 질서 체계를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규범이라고 생각했고, 성인(聖人)은 이런 도덕적 내용을 완벽하게 실현하는 인간을 의미하며 이런 일은 덕과 재주가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난 인간이라야 할 수 있는데, 그를 '군자'라 정의했다. 그에 반해, 공공의 질서 의식이 약하고 개인의 이기심을 강하게 추구하는 인간은 '소인'이다. 또,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시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중시하며, 이성의 공적 사용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인 질서 의식으로 건강한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인간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현상보다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려는 유가의 군자관에 사유 재산 인정이라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시민의식을 조화시킨 인간'이라고 결론 짓는다.그런데, 대승의 의미가 강하며 소수의 엘리트 의식이 묻어나는 군자관과 소승의 의미가 강한 시민이 만날 접점이 필요한데, 책에서는 공적인 의로움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적인 이익도 발생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들었다. 이것은 군자관에서 사적 이익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의식과 이를 맞출 희망의 틈이 되어준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개인의 사적 이익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최소한의 것이어야 하며, 사적 이익이 공적 의로움을 해칠 정도로 소수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조건이 붙는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 보자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인간상을 이해하고,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 개개인이 그 인간상이 되기엔 버겁고, 지도자로 나서는 이에게는 이런 모습을 원하고, 하지만, 지도자로 나서는 그 자도 공익과 사익이 부딪히는 그 지점에서 의연히 이성을 지키는 이가 흔치 않아, 전반적으로 '군자관+시민의식'의 조합보다는 '소인관+시민의식'의 조합이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속 내지는 가이드라인을 도출해 합의하고, 지도자도 대다수의 시민도 이런 철학적 도덕적 성찰의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점진적으로 성숙해가는 시민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철학적 도덕적 성찰의 기회를 자주 것은 교육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고, 교육과 현실이 지금처럼 별개가 아닌라 유기적으로 긴밀히 연결이 되고, 교육의 큰 모토가 '이런 성찰을 통한 이상적 인간상 형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4장, 386에서 촛불 문화제까지 - 생활과 거리의 정치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정치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거니와, 모르다 보니, 그 들의 싸움이 그저 시끄러울 뿐이라서, 무색무취의 정치관을 갖고 있었고, 우리 나라는 결국 보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탄섞인 중얼거림 밖에 뱉을 줄 모르는 나였다. 다소 진보적인 분위기가 강한 이 장에서 조목조목 철학적인 논거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 지금까지 지금까지 두루뭉술 하게 생각했던 것이 많이 명확해졌다. 또한, 연일 각계 인사들이 현 정권의 행보가 민주주의 퇴보를 지향한다고 개탄하는 시국성명을 발표해대는 현 시점에서 크게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박정희 신드롬'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무능력, 역사적 경험이 짧은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함이 야기한 일종의 퇴행적 군중심리다. 이 현상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첫째로, 민주 세력이 개혁과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층의 거부를 압도하지 못했고 또 현실적 대안 제시를 통해 국민을 설득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의 반증이므로 주목해야 한다. 둘째는, 아직도 국민의 정서에 참여와 책임, 공동체 정신과 연대의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의 반증이므로 주목해야 한다. -p.78

 

 2007년 대선 직후 <<문화일보>> 여론조사 결과다. 국민의 67퍼센트가 바람직한 우리나라의 모습으로 '사회복지가 잘 갖추어진 나라'를 들었다. 예상밖의 결과다. 심지어 엊그제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찍은 '나는 보수'라는 사람 중에도 64퍼센트가 우파 슬로건인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좌파의 목표인 '사회복지'의 구현을 희망했다. 비록 투표는 한나라당에 했지만 정당의 이념으로는 피설문자의 51.1퍼센트가 진보정당, 녹색정당의 비전에 동의한 것이다. 이런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하고 또 극복 할 수 있을까.

 

 바로 그 동일한 피설문자가 사회복지를 위한 세금 인상에는 무려 98.3퍼센트가 반대했다.이명박 정부가 공교육을 파괴하고 사교육을 부채질한다고 욕하면서도 막상 공교육 정상화, 무상교육 확대의 전제인 'OECD 수준으로의 세금 인상'에는 모두가 반대한다. 국가 비전은 진보당이 옳지만, 내 집값 때문에 뉴타운 개발 정책을 내건 한나라당을 대거 찍은 국민들의 단견과 무임승차 심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뿐인가. 촛불을 지핀 학생과 시민의 절대다수가 여전히 박정희를 우리 민족 최고의 지도자로 꼽는 어지러운 현실이다. p.81

 

바로 내가 항상 어리둥절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어리둥절 이해하기 힘든 일들에 대해, 어지러워 하지만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민주주의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며 강조했고, 나는 기어이 설득당했다.

 

9장,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 시간체험과 공간 이동

이 책에서는 가속에 대한 현대인의 열광 내지 맹신을 '속도의 파시즘(현대 문화철학자 비릴리오)'이란 단어를 쓴다.

 속도의 파시즘은 가속의 매트릭스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더욱 불행한 것은 자신이 그러한 매트릭스에 포박당해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의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용어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가속의 극한은 어디이며, 시,공간 압축의 최종 상태는 어떤 것인가? p.195

세대를 거듭하며 첨단을 달려온 과학 기술이 결국은 속도를 높여 시,공간 압축률 높이기 위해서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존재의 속도가 가속화 되고, 지나간 세월의 기억, 즉 모든 개개인의 정체성의 내실을 느린 것으로 변질 시켜 버렸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속울 통해, 더 빨리, 더 많이 무언가를 해내고 가짐으로써 행복해졌는가? 하는 비판이다. 그리고 심지어 숭배의 대상이기까지 한 속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관성이 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사고 맟 감각 체계에 대해 냉혹하게 반성해 보자고 이야기 한다.

정말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항상 하루를 시작하며 다이어리에 빼곡히 매 시간 할 일, 갈 곳, 약속 등을 적어 놓고, 정해진 시간 안에 다 해치워야지만, 그 날 하루가 알차게 보내진 것 같은 강박 속에서 더 알찬 하루, 더 보람된 하루를 위해 한 줄 스케쥴의 동선이 전국으로 세계로 까지 뻗어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가속 기술 덕분이고, 그 뿌듯함 속에 점점 속도의 파시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결국은 자신의 행복마저 저당잡히고서 그 여유와 행복 언제 찾아다 쓸 것인지 계획도 분명치 않은 버는 것 같지만, 큰 테두리 안에서 사실은 밑지고 있는 장사를 우리 모두 열광하며 하고 있다는 걸 꼭 찝어 주어서 옆구리가 정말 아팠다. 그러게 항상 사색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그 합리의 바탕을 큰 생각, 큰 철학에 두어야 겠다.

 

이렇듯 이 책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알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지나치는 생각없음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함께 생각해 보자고 각 장 끝에 관련 영화나 책도 소개하고, 생각해 볼 문제들도 제시하고 있다. 하나하나 대답해 가다 보면 놓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찾게 된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읽어보고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책의 구성방식은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제격일 것 같다. 꼭 필요한 생각거리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께에 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읽은 책이다. 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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