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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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 때는 참 낯설고 어색한 작품이어서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지 막막했던 것 같다.

시인 이상의 시들과 함께 '낯설게 표현하기'를 배울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지난 삼십대 중반에 다시 읽은 <변신>은 역시 그때와 다르게 읽혔다. 여전히 낯선 상황, 낯선 표현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조금 생겼나 보다.

 

부모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독충으로 변해 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가족들은 경악하고, 두려워하지만 점점 적응해 간다. -역시 인간이 적응 못할 상황은 없다.- 상상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 가족들이 적응해 가는 과정, 또 벌레로 변한 당사자 그레고르 또한 벌레로서 삶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 그 과정 속에서 가족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찾고 여동생이 가족의 새로운 희망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이 작품의 서술에서 카프카가 참 예민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느낌은 어디에선가 본 카프카의 사진 때문이기도 한데, 살이 없는 볼, 배우 정보석의 입처럼 얇으며 일자로 다문 입술, 위로 날카롭게 솟은 귀, 거기에 눈동자가 큰 눈. 어쩐지 힘이 있어 강직하기 보다는 내적 고집 덕에 버티고 있는 만만치 않으면서도 조금은 가련하기까지 한 인상이다. 나는 종종 작가의 얼굴을 알고 나면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작품에 완전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카프카의 모습을 계속 그리면서 읽다보니, 더욱 잘 읽혔다. 아마도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족의 모습이나 분위기가 카프카 본인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어서 일 것이다.- 해설이 그렇다고 확인해 주었다.- 거기에 카프카는 부모가 모두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상에 내놓고 인정받기 보다는 안으로 더 고독을 쌓는 시대적 우울함도 가졌다고 하니, 그의 눈빛은 그렇게 만들어졌겠구나 싶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중 여동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음악에 재능도 있고, 관심도 있지만, 음악학교에 진학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집안일이나 도우며 소일하던 여동생이었고, 그레고르가 돈을 더 벌어 음악학교에 진학시켜 줄 계획을 갖고 있는 자립할 능력이 없는 존재였는데,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방 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유일하게 매일 그레고르의 방을 방문하고 청소하고 먹을 것을 챙기는 용기를 발휘한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죽은 후 가족이 전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서는 그레테 그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신랑감을 만나 결혼을 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원으로서 또는 새로운 삶에 대한 꿈과 계획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떠오른 문구가 '난세에 영웅이 난다' 였다. 그리고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였다.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으면 가진 능력도 썩히기 마련인 걸 살면서 많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건성하고, 집안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살던 사람이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집안이 망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여 집안의 기둥 노릇을 해 내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자주 보게 된다. 사실 내 주변에도 몇 있다. 그 들은 어려운 상황을 만나고서야 자신의 존재감을 자각함은 물론 주변 사람들 조차 '그래 너라도...'하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 하고 그를 중심에 두고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그 주변의 희망의 눈길이나 텔레파시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영웅이 되게도 하는 것을 본다.

실존. 실존에 대해 문학계에서는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실존은 방금 언급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각의 존재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순간. 그것을 포착한 작품, 그것이 실존문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카프카.. 시간을 갖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표현이 부족한 듯 하나, 정말 즐겁고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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