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밀레니엄 북스 99
한비자 지음, 김동휘 옮김 / 신원문화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본격적으로 읽게 된 고전 철학의 첫번째 책이 <한비자>였다.

책이 내 손에 잡힐 때까지 나는 불안에 떨었다.

과연 다 읽어낼 수 있을까? 하고.

다행히 신원문화사에서 나온 이 책은 나의 부담을 한 방에 날려 주었다.

실제 <한비자>는 당연히 한문으로만 쓰여 있을 것이고, 양 또한 방대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을 쉽게 번역하고 중복되거나 연결이 고르지 않은 것은 편집해서 소제목 별로 한 장 남짓되게 정리해 주어 읽어나가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 점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욕심 같아서는 한 몇 달 잡고 옥편 들고 앉아서 각 장 말미에 실린 원본을 하나하나 해석해 읽어보고도 싶지만, 노력에 비해 이해가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덮어 버릴 것이 뻔해 보이기에, 그런 우려를 덜어준 이 책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제자백가 마지막 사상가 <한비>의 생각을 맛이라도 볼 수 있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여, 많이 권하게 될 것 같다.

 

한비는 기원전 3세기 초, 한나라 왕 안(安)의 서공자였다. 출신도 불안정했지만, 말더음이 이기까지 했던 순자의 제자로 수학하기도 했으며, 왕이 자신을 등용해 주길 원해 목숨을 걸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결국 한비는 조국 한나라에서는 뜻을 펴지 못하고, 진나라 시황의 마음을 사지만,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동기 이사의 계략에 목숨을 잃고 만다. 그리고 진시황은 한비는 잃었으나, 그의 사상은 오롯이 받아들여 치정에 적극 활용한다. 그래서 한비의 역사적인 역할은 춘추전국 시대라고 하는 난세에 태어난 제가의 사상을 시대의 요청에 응해 하나의 정치 기술로 정리하여 진나라의 시황제에게 넘긴 데 있다.(p.347) 고도 한다.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병편 : 명군의 덕목을 이야기한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을 법(法)이라 하고, 임금이 신하를 통솔하는 방법을 술(術)이라고 하는데, 이 법술을 바탕으로 한 형명참동(形名參同)이 한비자 사상의 기본 개념이다.특이한 점은 신하가 임금 앞에서 약속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도 벌한다는 점이다. 지나친 충성은 결국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십과편 : 임금이 몸을 망치고 나라를 잃게 되는 잘못 10가지를 이야기 한다.

 

고분편 : 자신의 이론이 고국 한나라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울분을 담아 법술을 행하지 않을 때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중신이 임금의 최 측근에서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일을 크게 한탄하고, 임금이 지혜롭게 중신을 가려 해를 피해야 함을 강조한다.

 

세난편 : 신하로서 약자의 입장에서 쓴 문장들이다.

신하로서 임금에게 진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며, 상대에 따라 달리 말할 것과 역린을 건드리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화씨편 : <고분편>과 같은 내용이나 다른 필치로 이야기한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보여주어, 임금이 사람들의 진언을 들으려 하지 않아 난세가 평정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망징편 : 말 그대로 '망할 징조'를 열거한다.

법술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 구체적인 에를 들어 전개하는 한비의 강점을 통해 한비의 사고법을 확인할 수 있다.

 

비내편 : 임금이 주의해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처첩까지 다루고 있다.

임금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임금의 목숨은 위태롭다.

임금의 아내 역시 자기 이익에 따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모든 인간이 자기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생각은 순자의 '성악설'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비의 목적은 군주에 의한 백성의 통치였을 뿐, 순자처럼 백성의 교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때문에 유가의 덕치주의에 반대되는 견해라 하여 유가에게서 이단시 된다.

 

설림상편 / 설림하편 : 설화집으로서 한비의 박학다식함을 엿볼 수 있다.

 

내림설상편 : 칠술(임금이 행할 술의 7가지)를 다룬다.

다시 한 번 형명참동(形名參同)을 강조하고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하는 속임수를 통해 신하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라고 이야기한다.

 

내림설하편 : 육미를 다룬다.

 

외저설편 : 자기주장을 위한 설화집으로, 해학과 문명비판이 적당히 안배되면서 잘 조화를 이룬다.

 

난편 : 성인과 현인의 사상에 반박하는 논쟁문이다. 이 반박은 법술의 공덕을 말하기 위해 부정하는 것이며, 한비가 일생을 통해 말해온 법술은 평범한 인물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하니, 임금의 통치법을 표준화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두편 : 학자, 유세가, 협객, 측근, 상인과 직공 다섯 종류의 좀벌레를 지적한다.

특히, 학자들을 크게 비판하고, 인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명군이 되는 길은 법을 통일하는 것일 뿐, 지혜있는 사람을 애써 찾는 일이 아니고, 술을 분명히 실천하는 일일 뿐, 성실한 사람에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평생에 걸쳐 목숨을 걸고 쓴 사상서 였기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하나하나 구체적인 예를 꼭꼭 제시하여 한비의 박학다식함이나 대쪽 같은 굳은 의지에 연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이런 사상도 저런 사상도 공론화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말 한 마디에 목이 떨어지는 일이 빈번했음은 물론 승자와 패자가 하루하루 역전되었을 당시에 이런 방대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담은 사상서는 상당히 획기적이었을 거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한비의 사상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그 자신의 통찰력이 뛰어났음을 인정하더라도 현대에 한비의 이런 사상을 적용해 본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 보다는 독재체제에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법이며 술 모두를 분립없이 임금이 반드시 손에 쥐고 흔들 것을 기본으로 하며, 그 중 하나라도 놓으며 나라가 위험해 진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외에서 국가관으로 삼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다고 보고, 대신 시간을 다투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며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는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은 성립과 존재 자체가 이익(실리)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가 자기 이익에 따를 뿐이라는 한비의 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게다가 CEO나 수장을 중심으로 권력이 일원화 되어 중앙집권 방식이 되면 뛰어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어 시간을 다투는 속도의 경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비자> 책 속에서도 이야기 하듯 시대가 다르면 해결책도 반드시 그에 맞추어 달라져야 한다. 한비의 사상에서 얻을 만한 정신은 배우더라도 적용할 때는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어려워 이해는 커녕 다 읽지도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씻고, <한비자>를 이 정도나마 읽어낸 내가 자랑스럽다. 이제 어디서 <한비자>라는 말을 들으면 한 3분은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뿌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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