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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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영화같은 12가지 충격실화는 어떤 에피소드인지,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할 정도의 이유가 어떤건지 호기심이 드는 제목과 소개글이다.

최근 다크웹이나 정준영 성범죄와 같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이 종종 있어서인지 범죄자의 양형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한편 너무 낮은 양형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대체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범죄가 있기는 한건지, 유전무죄의 양형은 아니었던건지 살짝 불만을 품은 마음으로 책을 편다.

페르디남트 폰 쉬라크는 25년간 2,500여건의 사건을 변호한 형법 전문 변호사다. 이 책을 통해 처벌의 의미와 존재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했으며, 범죄자이지만 '인간이기에 공감'하는 한편, 인간이라서 알 수 없지만 '법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 사이의 갈등을 기술하고 있다.

형사사건 변호사의 시각으로 기술한 12편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법의 입장에서 누구든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 일사부재리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등에 따라 범죄자에게 선고된, 혹은 무죄판결된 사건들이다.

범죄사실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된 판결에 동의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다만, 죄의 무거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법의 논리에 따라 죄에 상응하지 않는 선고를 하게 됨을 평범한 사람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검사는 법대로 죄를 따져 물었고

변호사는 법대로 권리을 지켜주었으며

판사는 법대로 판결했다

저자는 재판에는 제시된 증거가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데 충분한지, 범인이 확정되면 형량을 어느정도로 두어야 하는지의 두가지 차원이 얽혀 있다고 한다.

제시된 증거가 과연 범죄를 증명하는데 충분한가, 12가지 사례에서는 제시된 증거가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기도 하고, 무죄를 입증하기도 한다.

또한,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거나 형식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 계획과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지만 유유히 법망을 피해가기도 한다.

형사사건의 심리과정에서 '도덕성'은 형량판단의 준거가 되기도 하지만, (법적 지식이 얕은 내 기준으로 볼 때) 형량판단의 준거가 되는 도덕성은 객관성을 이유로 '고의성'만을 기준으로 삼는것 같다.

나의 신념과 맞지 않음에도 범죄자를 끝까지 변호해야 하는 변호인(변호사 윤리장전 제19조), 자신의 신념대로 배심원으로서 어렵게 한 질문을 편파적이라고 묵살당하며 재판에서는 거부당한 배심원으로 지명되지만 해임을 요구할 수 없는 배심원(대한민국 국민참여재판법 제32조 제1항 배심원의 해임) 사례를 볼때 과연 법이 나를 공정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사건으로부터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망가져가는 피해자를 적절하게 보호하고 있는지(범죄피해자보호법 제2조 제1항) 등 과연 우리들에게 법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12가지 충격 실화'라는 부제가 찰떡같이 들어 맞는 사건들을 법적 지식이 없는 독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흥미롭게, 흡사 단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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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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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면을 손에 쥐고 있는 붉은 색 표지는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이 든다.

미로 속 남자는 범죄학자 출신으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릴러 작가 도나토 카리시가 속삭이는 자와 이름없는 자에 이어 집필한 스릴러 소설이다. 전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호평이 많아 읽기전부터 기대되는 소설이다.

혈기왕성한 10대 중학생 사만타 안드레티가 학교에서, 아니 우주에서 가장 잘 생긴 남학생 토니 바레타로부터 만남을 제안받고 설레여 하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 된다. 그 나이의 여학생 답게 풋풋하고 설레는 모습으로 데이트 준비를 하고 학교로 출발한 사만타,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지고 짙게 선팅된 흰색 밴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러워 하는 순간! 차장 안 어둠 속 대형 토끼 한마리와 눈이 마주치고 사만타는 사라진다.

사만타가 등교길에서 홀연히 사라진지 15년후, 모두들 그녀를 잊어갈즈음 익명의 신고전화가 걸려오고, 다리가 부러진채 알몸을 한 사만타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늪지에서 경찰관들에게 발견된다.

15년간의 기억을 잃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사만타... 그녀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가 시작된다. 과연 그녀의 기억으로 미로속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단서는 오로지 공포로 가득찬 그녀의 기억과 그녀를 발견한 익명의 제보자가 느낀 공포심, 그리고 그들이 봐버린 토끼 가면 뿐이다.

사만타와 마주한 프로파일러 그린박사는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미로속 사건의 단서를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 내면서 퍼즐 조각을 맞춰나간다. 프로파일러와 사만타의 대화가 과연 진실일까...

"왜냐하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녀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p.111)

15년전 사만타의 부모로부터 그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부르너. 그는 자신을 인간사냥꾼이라 부르며, 비싼 값을 치르는 부적절한 의뢰도 서슴없이 맡아 처리하곤 했던 사설탐정이다. 해결될지 않을 것같은 사만타 사건을 피하고 싶은 부르너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타게 딸을 찾고 싶은 그녀의 부모는 비싼 값을 치르고 계약서에 서명한다. 하지만 유능한 시설탐정 부르너 역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라진 사만타 사건은 15년간 미제사건으로 잊혀져 간다.

15년간 홀연히 사라졌다가 의문을 가득 품고 돌아온 13살 소녀에서 28살 성인이 된 사만타, 우연히 사건의 단서를 알게된 부르너는 15년전 부당했던 계약에 죄책감에 느끼며 미제로 남았던 사건에 다시 발을 들여 놓게 된다. 그러던 중 알게된 또 하나의 사건, 사라진 아이는 사만타만이 아니었다!

"혹시 '어둠 속의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중략) 그들은 산 채로 매장되듯 컴컴한 지하게 감금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세상 빛을 볼 때 새로 태어난 느낌이 들긴 할 겁니다. 이미 예전의 그 아이들로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p.138)

자, 이제는 상대할 적이 정해졌다. 어둠 속에서 감염된 아이 버니와 사립탐정 부르너의 게임이 시작된다.

사건탐문중 부르너 앞에 나타난 한권의 책, '버니' 아이들만 볼 수 있는 토끼가 등장하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그림책이 묘하게 부르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과연 비밀을 품고 있는 그림책 버니는 어둠의 아이들을 구원해줄 실마리가 될 것인가?

부루너는 버니와의 전쟁을 위해 숨겨두었던 음험한 가상의 세계,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디프웹(deep web)'으로 접속하고 그 안에서 다시 맞닥뜨리는 두사람! 부루너와 버니의 쫓고 쫓기는 게임은 쫓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베일에 쌓여만 간다.

사립탐정 부루너는 사만타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얽히고 얽히는 등장인물들은 사건을 점점 더 미궁속으로 밀어 넣는다.

"자위적 사이코패스에 해당하는 놈들은 살인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놈들에게 죽음은 전적으로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p.220)

감금 되었던 아이 안에 생긴 또 다른 나, 어둠에 갇혔던 아이들은 그렇게 어둠이 되어 또 다른 어둠을 사냥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살아 돌아온 그 아이들의 영혼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끝까지 반전을 갖고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반전 끝판왕 스릴러 소설이다. 어둠속에서 인간의 추악한 면을 끊임없이 쫓는다. 어디든 누구든 안전한 곳은 없다. 주어진 게임으로부터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끝까지 사건의 범인을 쫓는 시선을 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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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처음이라서 - 89년생이 말하는 세대차이 세대가치
박소영.이찬 지음 /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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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세대로 주목 받고 있는 90년대생들을 다루고 있는 글들을 즐겨 읽고 있다. 큰 아이가 90년대의 끝자락에 태어나기도 했지만 직장의 후배로 들어오기 시작한 90년대생들의, 나와 다른 정서를 적극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나와 백만광년쯤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밀레니얼세대들이 정말 궁금하다!

말미에 기술되어 있는 묘하게 닮은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라는 설명이 나도 선배들 뒷목 꾀나 잡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한다.

89년생들이 말하는 세대차이, 세대가치를 이해하기 전 세대를 구분해 놓은 표에 눈길이 간다. X세대의 중간쯤에 세상에 등장한 나는 밀레니얼 세대를 지난 Z세대의 부모다. 우리나라의 허리와 같은 역할을 하던 386세대를 지나 태어난,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X세대가 등장했을 때도 지금의 밀레니얼세대 등장만큼 기성세대들을 혼란속으로 밀어넣었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처럼 기성세대들이 이해못하는 세대가 X세대 였다. 하지만 X세대는 선배들의 '나 때는 말이야'를 잘 들어주면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 약간은 어중간한 세대다. '나 때는 말이야'는 해성처럼 등장한 말은 아니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해서,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태풍의 눈이었다. 밀레니얼세대를 맞아 Latte is a hourse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밀레니얼세대의 키워드 "공정, 효율, 존중, 가치, 성장, 안정".... 도대체 요즘 후배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키워드들을 듣고 보니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9시 출근, 반드시 과장님, 팀장님 출근전 내가 먼저 출근했던 우리들 세대, 하지만 밀레니얼 그들에게 이런 원칙은 통하지 않는다. 사무실 로비에서 방황하다 입장할 지언정 9시전 출근에 내 시간을 내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해가 안가는 한편, 멋있기도 부럽기도 하다. 이제와서 고백하는데 나도 신입사원 때는 9시 출근 6시 퇴근을 꿈꾸곤 했지만, 행동할 용기가 없었다.

한가지 이슈를 90년생, 80년생, 70년생이 생각하는 대로 분석해 둔 도표를 보면서 그들이 이해되는 한편, 내가 늙었구나 싶어서 서글퍼진다.

90년생 밀레니얼들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어진 시간안에 효율적으로 일하고, 일한 성과만큼의 인센티브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여기고, 일과 나의 삶이 균형잡힌 안정적인 일상이야 말로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지 않은가!

4차 산업혁명, 공유의 시대, 긱 이코노미, 플랫폼기업, 크리에이터, 포노사피엔스 등등...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어대고 기존의 방식대로 살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한다. 고정관념을 깨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고정관념은 특별한게 아니다. 틀린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밀레니얼들은 그 기성세대들을 존중해주고 기성세대들은 밀레니얼들을 존중해주는 것이 고정관념을 깨는 시작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다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이효리의 말처럼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방시혁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가 겪고 있는 '꿈이 없음'과 그들이 추구하는 '소박한 행복'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자신이 경험을 녹여냈으며, '이렇게 살아라'라는 조언 대신 앞으로 자신은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를 다짐했다. 이효리씨의 짧지만 임팩트 있는 말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는 위로가 담겨 있다." (p.130)

선호하는 소통의 방법이 각각 세대별로 다르다. 어중간하게 낀세대인(이 책에서는 기성세대로 분류됨) 나는 대면, 전화와 메신저를 두루 사용하는 편이다. 선배들과의 소통은 주로 대면과 전화를 사용하고 동료나 후배들과의 소통은 메신저가 훨씬 편하다. 주관적으로는 대면, 전화보다는 메신저와 문자를 선호하지만 종종 혼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상대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분명 '아'와 '어'가 다르다.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없다.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알아듣는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은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나의 의사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개떡같지 않은 찰떡같은 진리다.

앞으로 점점 늘어나는 밀레니얼들에게 꼰대로 분류되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내가 당면한 현실이다.

"누구나 어디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에어비엔비 미션)" (p.181)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협업 보다는 책임이 분산된 독립되고 자율적인 일에 익숙한 밀레니얼들에게도 '소속감'은 중요한 이슈다. 잦은 이직과 개인적인 성향을 고려할 때 소속감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가치와 비전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 만으로도 자발적 동기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비전과 가치가 그저 좋은 말로 이루어진 전시용으로 쓰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엄마였는지, 후배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선배였는지, 막연하게 나 때는 말이야만 강요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융통성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란 X세대 화성인 김팀장과 창의성과 개성을 키우며 사바사 & 케바케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밀레니얼세대 금성인 김사원이 지구에서 만나 행복하게 살기 위한 매뉴얼 같은 글이었다. 더불어 짬짬이 분석되어 있는 이슈 데이터는 나와 그들의 생각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정보였다.

거침없는 그들, 밀레니얼들과 부딪히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보편적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40대의 중간관리자 그어디쯤에 있는 직딩들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Latte is a hourse가 아닌 진심으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나 때는 말이야를 만들고 싶은 X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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텨댜 : 마음 가는 대로
최설아(텨댜) 지음 / 북치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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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일러스트 에세이집이다. 예쁘고 귀염귀염한 일러스트라기 보다는 보통의 평범한 그 나이때 여자사람의 일상감성을 읽을 수 있는 책일것 같아서 읽기 전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대한다.

생각하는 걸 그리는 1991년생 워홀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작가 텨댜(tyeodya)는 우울하던 시절 정신건강을 위해 슬슬 그려보기 시작한 만화로 첫번째 책 [알 수 없어 두렵지만, 알 수 없어 재밌는 내 인생] 출간에 이어, [텨댜 마음 가는 대로]로 두번째 책을 출간한 그림에세이 작가다.

먼저, 일러스트 에세이니 그림에 대한 느낌을 먼저 적어보자면, 옆집 사는 친구 같은 푸근한 모습의 그녀가 살갑다. 적당히 부스스한 머리에 살짝 늘어진 턱살과 날개 같은 팔뚝은 늘상 예쁘게 꾸며진 그림들만 네버랜드 이야기처럼 보던 나에게 현실감 있는 푸근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20대 끝자락의 텨댜 작가와 50대가 얼마남지 않은 나를 비교하는건 미안하지만 집에서 뒹굴거리는 나의 모습과 싱크로율 백퍼다.

[텨댜 마음 가는 대로]는 텨댜의 일상부터 워홀, 행복, 사랑, 연애, 가족의 6개 챕터로 구성 되어 있고, 각각의 챕터는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토막시간에 읽기 좋았다.

첫번째 챕터 일상은 흔한 일상의 습관과 친구, 작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그녀만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20대 처자를 40대 아줌마에게 비교하는건 미안하지만 나의 일상과 다를바 없는 집순이 그이상의 뒹굴거림이 반갑다.

어색한 메이크업과 무계획이 제일 좋은 계획인양 살고 있는 계획파괴자의 모습, 아침형 인간을 꿈꾸고 있지만 실제는 올빼미족인 현실속의 나와 같은 모습에 미소짓게 되는 에피소드들이다.

 

두번째 챕터 워홀, 학교 졸업 후 형편상 급하게 취업을 했었던지라 워홀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해외 배낭여행의 경험도 없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인 워홀의 일상을 보여준다. 미친변태들의 만남은 워홀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무너뜨려주고, 반면 새로운 환경에서의 친구들과의 만남은 워홀의 설렘을 상승시켜준다. 보통의 워홀 경험자들은 말한다. 워홀은 일도 하고 영어(외국어) 공부도 하고 오는게 아니라 죽도록 일만하고 오는 거라고, 텨댜 작가가 요리실력을 늘려온 것 처럼 말이다. 그래도 내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워홀을 아낌없이 경험하고 돌아온 그녀가 부러운건 어쩔 수 없다.

세번째 챕터 행복, 행복이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내가 마음먹은대로 만들 수 있는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축복과 같은 파랑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평온한 일상에서 너무 쉽게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잃어버린다.

요즘 심심찮게 회자되는 소확행이나 욜로 같은 것들이 너무 부풀려진 꿈과 이상을 찾아 힘겹게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변을 다시 둘러볼 수 있도록 쉼을 주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사랑하고,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날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날이 적당하면 적당한 대로 행복한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한다. 엄마도 아내도 딸도 아닌 그저 나로 사는 삶을 살고 싶어지는 날이다.

네번째 챕터 사랑 그리고 다섯번째 챕터 연애, 사랑 뭐 그까이꺼이~ 텨댜 작가도 사랑은 대충 그까이꺼였는지 다른 챕터에 비해 짧다.고딩때의 교생선생님 짝사랑 이후, 첫사랑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직 옆에 그 사람을 두고 사는 나 역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적다. 차라리 영화의 애틋한 로맨스로 할 말이 더많은 1인인지라, 긴 에피소드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짧은 챕터에 공감하면서 웃음 짓는다. 장거리 연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난 짧은 연애담은 그간의 담백한 에피소드들 탓인지 발간하는 책마다 다른 남친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며 가슴아픈(?) 농담을 하고 있는 텨댜 작가의 눈물 맺힌 모습과 금새 잊고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동시에 상상하게 만든다.

마지막 챕터 가족,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다 알고 계시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남을 해하는 일만 아니라면) 든든하게 응원해주신 부모님에 대한 글과 그림이다.

나 또한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고, 아이의 깜찍한 거짓말을 다 알면서도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모르는척 기다려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도 않는 행동을 일삼고 반항하는 아이를, 그저 무탈하게 건강하고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언제나 든든한 내편 부모님과 남의 편 같은 내편 남편, 그리고 내 심장같은 우리 아이들 마지막으로 귀찮지만 한없이 위로가 되는 반려견... 나의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가족들이 있어서 힘들때도 기쁠 때도 한결같은 내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색연필로 무심한듯 쓱쓱 그려나간 그림과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오늘도 내일도 나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해 본다.

"우린 아직 너무 젊고 소중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니까. 마음 가는 대로, 더 큰 세상에서 새로운 행복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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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때론 혼자이고 싶다 - 혼자여서 고맙고 함께여서 감사한 순간
온기 지음 / 바이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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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말처럼 혼자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을까? 엄마는 날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없는 삶을 산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까지 혼자일 수도 없고, 혼자일 시간도 없는 안쓰러운 존재가 엄마다.

딸이었던 내가 나이들어 엄마가 되고 보니, 얼마나 철없는 딸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우스개 소리처럼 엄마가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혼자 살아도 된다고 하시던 말의 이유를 알것 같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좋은 딸,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며 종종거리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때론 혼자이고 싶은 엄마들의 고독을 응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5장으로 구성된 글은 엄마라는 여자사람이 엄마의 자리에서 느끼는 책임감과 허무함, 고된 삶을 살아낸 엄마를 바라보는 딸로서의 연민, 그리고 홀로서기에 대해서 써내려간 글이다.

엄마도 때론 혼자이고 싶다.... 혼자 일 수 없으니 혼자이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제목으로 생각된다. 각장의 도입부에 그려진,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고 다리를 꼬고 앉은 여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저 이렇게라도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책읽기가 될 것 같다.

엄마들의 고독을 응원한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를 만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개 뼉다귀 같은 말이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더더군다나 작고 연약한(보통의 경우) 여자사람인 엄마를 신을 대신하게 만들었다는 감언이설로 엄마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건 아닐까. 엄마보다 힘도 쎄고 덩치도 커다란 아빠는 뭐하고 엄마한테만 저런 짐을 지우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슈퍼맨이 되곤 한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다툼을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써내려간 글이 있다. 지금 나의 상황과 어찌나 비슷한지 옆에 있다면 말없이 다가가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성실하게 학교에 나가지 않는 아이 때문에 담임선생님과 서로 미안해하면서 연락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9시 등교시간 근처 울리는 문자알림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들에게 아이에 대한 일은 아무리 반복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일이다.

"엄마, 난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요. 엄마는 내가 행복한지 힘들어하는지 내 마음을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거 아세요?" (p.45)

아이에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전가하면서, 아이의 의지와 상관 없는 공부를 강요한다. 할머니가 지금 엄마처럼 해줬으면 엄마는 못할게 없었다는 근거없는 이유를 들어가면서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강요에 지쳐서 꾸역꾸역 말라가는 식물처럼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못난 엄마에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가끔은 멍하니 핸드폰과 뒤엉켜 있는 아이가 보고 싶지 않아서 갈곳 없는 사람마냥 무작정 돌아다니곤 한다. 아이 덕분에 평생 해보지 않았던 혼밥과 혼극에 익숙해진다. 엄마 스스로 아이가 내 소유물이 아님을 깨닫는 시간에 닿아야 할텐데 엄마의 이름으로 사랑이 집착이 되어가는 내가 나도 부담스럽다.

"내 감정에 갇혀 있을 때는 모순을 보지 못한다. 내 감정만 그저 소중하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상대의 마음을 할퀴고 난 뒤다.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가 상처를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p.54)

어린시절 보통의 가정처럼 여유롭지 못한 형편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자랐다. 엄마의 억척스러움에 미안해서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곤 했었다. 그 시절의 오랜습관이 자리잡은 탓인지 그때보다 여유로워진 지금도 내것에는 무척 빡빡한 태도로 생활한다. 누가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스스로 수도원의 수행자처럼 살면서 한번씩 폭발할 때면 부끄럽게도 수행자처럼 사는 삶의 이유를 아이에게로, 남편에게로 넘긴다. 나는 아직도 어린시절의 나에게 보상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조금씩이라도 나답게 사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린시절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던 그 겁 많은 꼬마에게 어른인 내가 보상하는 미안함의 선물이다." (p.77)

"하고 싶을 때는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구나. 그때부터 할 말을 다 참기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내뱉는다는 것에 점점 용기가 붙기 시작했다." (p.136)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에 지쳐가는 엄마들에게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잎으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 주는 글이다. 혼자만 서툴고 힘든게 아니라, 엄마는 누구나 서툴고 힘든거라고, 기운내라고 용기를 준다. 참지만 말고 가끔은 일부러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격려한다.

아직은 아이를 완전하게 독립시키지 못했지만, 어쩌면 영원히 독립시키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삶과 함께하는 삶을 조화롭게 꾸려나가는 엄마이기를 바라면서 혼자여서 고맙고 함께여서 감사한 순간, 엄마도 때론 혼자이고 싶다의 후기를 마친다.

"나에게 있어서 혼자는 어쩌면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뒤켠에 숨어 있는 그리움이자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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