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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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하지 멋있지도 않은 옆집 아저씨 같은 사설탐정의 추리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평범한 농가 출신인 스기무라 사부로가 아동서 출판사와 대기업 사보 편집자를 거쳐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서민 탐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다섯 번째 권이다. 보통 '사설탐정'이 주인공인 추리소설의 경우 사설탐정은 전지전능한 추리능력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짐을 뿜어내기 마련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사설탐정 스기무라는 특별히 명석하지도 멋있지도 않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사설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의 모습이 행복한 탐정 시리즈를 사랑받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의 첫 번째 사건은 자살을 기도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딸을 만나지 못하는 엄마의 의뢰로부터 시작된다. 의뢰자 하코자키 부인은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딸을 만나게 해줄 수 없다는 사위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힘으로는 딸 유비가 입원해 있는 것조차 확인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스기무라에게 딸의 현재 상황을 알아봐 줄 것을 의뢰한다. 하코자키 부인의 의뢰를 수행하던 스기무라는 단순한 감금 사건이 아닌 베일에 싸인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여성을 경멸하는 남자들의 추악한 욕망의 끝을 발견하게 된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인간의 육성인데 거기에는 희미한 온기조차 없었다. 다마키 고지의 체온은 '할 일을 하자'고 결심했을 때부터 절대 영도(절대 온도의 기준 온도. 영하 273.15℃)가 된 것이다." (p.191)

이어진 의뢰는 이웃에 살고 있는 유복한 고사키 부인과 집주인 다케나카 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사건이다. 처음 시작은 사건이라기보다는 간단한 수행 정도의 일로, 다소 생뚱맞은 구성으로 생면부지의 사람 결혼식에 참석하는 의뢰다. 어릴 적 자매간의 삼각관계로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아온 고사키 부인의 조카 시즈카의 결혼식이다. 끊어진 듯했던 가족의 인연이 고사키 부인의 딸 가나가 세이에이 학원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부 사무국에 입사한 사촌 언니 시즈카를 만나면서 다시 시작되고 사촌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은 가나의 고집으로 기이한 의뢰가 성사된다. 생면부지의 결혼식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스기무라는 엉망이 되어버린 결혼식의 흔적 속에서 또 하나의 사건의 의미를 찾는다.

"딸에게 어머니가 과거에 저지른 짓의 대가가 돌아왔다. 미야사키 사에코가  그렇게 생각해 버릴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던 것이다. 이걸로 없던 일이 되었다." (p.311)

마지막 사건, 세건의 사건 중 독자로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의뢰 건이다. 학교의 트러블메이커 사사유키와 그녀의 엄마 미키의 의뢰다. 사기무라는 다케나카 준코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사사유키의 눈빛이 마음에 걸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키의 사건을 의뢰받기로 한다. 대책 없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미키는 본가에서도, 전 시가에서도 골치 덩어리다. 모성이라는 눈곱만치도 없으면서 아이를 핑계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이런 미키에게는 미키와 판박이처럼 닮았지만 전혀 다른 성정을 가진 동생 미에가 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방탕한 언니 때문에 사사건건 추문에 휘말리고, 어제를 선택할 수 없었던 그녀는 급기야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고 만다. 과연 이 선택이 그녀의 내일을 찾아줄 수 있을까...

"아무리 괴로운 과거라도 그건 당신의 역사에요. 어제의 당신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당신이 있고, 당신의 내일이 있는 거예요.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열리지 않아요." (p.461)

특별히 작가를 따지지 않고 손에 닿는 데로 책을 읽는 편이여서 일본 최고 추리소설 작가로 알려진 미미 여사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이번 책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이 무엇인지 알려주듯 흡인력 있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소소한 사건인 듯 이어지고 있지만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범인을 알려줄 듯 말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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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울고 나니 배고파졌어요 - 사는 게 버거운 당신에게 보내는 말
전대진 지음 / 넥서스BOOKS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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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같은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가던 책이다. 어릴적 우는 아이를 놀리곤 했던 라임같은 우스개 소리 '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 가 떠오른다. 슬퍼서 울었든, 속상해서 울었든간에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울고나면, 나도 사람이니 배가 고파지는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말이다. 세상을 다 잃은 듯 울다가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슬며시 혼자 킥킥거리게 된다. 배고픈건 당연한거지! 창피한게 아니다!

글이 참 담백하다. 무심하게 읍조리듯 건내는 말들이 지친마음을 위로해 준다. 충분히 잘 견디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토닥여준다. 나라는 사람은 참 단순한가 보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지치고 힘들어 하다가도 그저 무심하게 건내는 책속의 한줄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걸 보면말이다.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 말을 좋아할까.

현실 감각이 떨어져서 그럴까. 정신력이 약해서 일까? 그렇지 않다. 다들 잘 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걸 누구나 잘 안다.

알기 때문에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면 힘이 나는 거다. (p.35)

 

짧은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닌것 같으면서도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책임감에 지치고 삶에 치여서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나 보다.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안풀리는 일이 있다며, 이럴때 그냥 실컷 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격려하는 말이 고맙다.

최고로 꼽는 작품이 어떤 작품이냐는 질문에 '다음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나는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를 주는 일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로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따라 기쁨과 슬픔을 가른다. 오랜시간 힘들게 쌓아놓은 과정의 탑들을 한순간의 결과에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쉽사리 습관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조금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밤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것.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사람이기에

당신은 당신이란 이유 하나로 특별한 존재.

그 모습에 멈춰 있진 말 것.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진 말자. 충분히 더 잘될 수 있으니까.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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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순정 - 그 시절 내 세계를 가득 채운 순정만화
이영희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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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여고를 함께 다녔던 동창생을 만나 수다를 떠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추억이 가물가물 그시절 그때 나를 웃기고 울렸던 모든 캐릭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책이었다. 어쩜 좋아! 나 또한 우리집에 계신 곤도마리에님 덕분에 현물을 보관하고 있지 않지만, 그시절 용돈을 탈탈 털어 사모으던 단행본과 윙크, 르네상스, 댕기 등 잡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교과서로 가린채 읽던 만화책과 잡지에서 오려낸 캐릭터들로 만든 책받침... 그 시절 나에게 그들은 살아가는 힘(?) 이었다. 캐릭터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주옥같다. 작가님의 서술처럼, 이렇게 멋진 남주들한테 빠져 있는데 어떻게 현실속에서 샤방샤방한 연애가 쉽게 이루어지겠냔 말이다! 순정만화를 기대하면 명랑만화를 넘어 개그만화가 되니 말이다. :(

 

여고시절 대부분이 그렇듯 나또한 빠뜻한 용돈으로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만화방을 드나들었었다. 월간지나 주간지에서 띄엄띄엄 읽던 만화를 통째로 읽고 싶기도 하고, 재미있던 부분을 다시 읽고 싶어서 말이다. 이런 나의 만화방 사랑은 대학시절까지 쭈욱 이어졌지만, 흥미가 줄어들즈음에는 운명의 장난처럼 주변에서 만화방도 많이 줄어 들었었다. 아마도 DVD, 컴퓨터게임 등 만화를 대체할 만한 오락거리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른이 되고 난후 쉽게 가지지 않지만, 요즘 만화방은 아니 만화카페는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진 환경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진 탓에 혼자가기 멋적어서 아이에게 가끔씩 엄마랑 만화카페를 가자고 조르곤 하지만 번번이 퇴자를 맞곤 한다.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딸들,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스토리와 대서사가 너무나도 멋진 작품이다. 요즘엔 새롭게 연재하고 계시는 카카오페이지의 카야에 푹 빠져있다. 역시 그림체나 스토리가 멋지다! 컬러풀한 주인공들이 그시절 그때의 그림에 비해 헐씬 육감(?)적이라고 느끼는건 나뿐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한승원의 프린세스 역시 넘나 사랑하던 작품이다. 비이와 비욘, 레오와 에스힐드, 그리고 프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 들이다. 이은혜의 점프트리 A+,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등등 나의 어린시절을 채워주던 그들이 다시 보고싶어 진다. 이번주말에는 추억속의 친구들을 만나러 혼자라도 만화카페이 가봐야 겠다. 

"어쩌면 어린 시절 함께 했던 만화를 다시 읽는다는 건, 그 시절의 울고 있는 꼬마에게 말을 건내는 일일지 모른다. 힘을 내. 지금은 모든 게 엉망일 것 같지만 넌 꽤 괜찮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테니까."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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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4 - 이카로스 최후의 도약, 완결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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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뱅커들이 정글속에서 정의를 지키며 살아남는 또 하나의 치열한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신념이라는 뚝심으로 밀고나가는 뱅커 한자와 나오키가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비단, 이 소설의 배경인 일본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간기업이 정부기관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의 은밀한 요구를 밀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사람의 신념만으로 지켜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도쿄중앙은행의 뱅커 한자와 나오키 또한 뱅커로서의 신념으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은행장 나카노와타리의 결단과 직속상관 나이토의 믿음 그리고 감사부 도미오카의 숨은 조력이 없었다면 부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자와의 소신도 부럽지만, 소신있는 선배와 조력자를 만난 한자와 역시 부럽다.

"은행장이 아니더라도 나는 계속 뱅커일 걸세. 뱅커인 이상, 항상 무엇인가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지. 우리에게 휴식 같은 건 없다네." (p.454, 은행장 나카노와타리가 한자와에게 마지막 인사)

뚝심있는 대응과 소신있는 책임으로 좌천되어 통쾌하게 부적절한 사건을 해결한 3편에 이어, 4편 이카로스 최후의 도약에서도 다양한 부정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촘촘히 얽혀진 사건을 한자와 답게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통쾌하게 해결한다.

"원래 대의에 따르기보다 거역하는 편이 훨씬 어려운 법이지. 하지만 여신 소관부서의 일은 합리적이고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는 거야. 만약 임원회의에 의도적으로 잘못된 결론을 올린다면, 그건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지. 위쪽에 잘보이기 위해 결론을 왜곡할 수는 없어." (p.228, 한자와의 소신)

옛T 도쿄제일은행 부행장 마키노 오사무의 유서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성실한 정통 뱅커로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마키노의 자실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진실의 무계를 견디지 못한 극단적 선택이었을까, 뱅커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었을까 이도 아니면 베일에 가려진 진실을 은폐하기 위함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든 그의 죽음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쿄중앙은행은 예T라 불리는 도쿄제일은행과 옛S라 불리는 산업중앙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대형은행이다. 서로 다른 조직이 우호적으로 합병을 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조직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두고 달리던 뱅커들이 순식간에 물 흐르듯 섞일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도쿄중앙은행의 옛T와 옛S 역시 사사건건 대립이 끊이지 않고 물과 기름이 섞여있듯 각각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안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라인'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느 라인에 서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신묘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직딩들은 '라인'이라는 말에 절대 공감을 갖기도, 몸서리치기도 한다.

이카루스 최후의 도약의 큰 흐름 또한 옛T와 옛S를 중심으로 하는 기싸움과 사심을 듬뿍 담은 정치인의 검은 손길 그리고 허영기 가득 담은 공명심에 가득찬 신예 정치인의 퍼포먼스가 흥미롭게 버무려져 있다.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K항공은 일본 항공의 중심기업이지만 무리한 노선확장과 안일한 운영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건실한 재건계획이 필요한 기업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무리한 재건계획과 실현가능성에 대한 검토없이 재건계획을 승인해주는 은행들 덕분에 TK항공은 계속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때, 우리의 구원투수 한자와 등장으로 실현가능한 재건계획이 검토 승인되었으나 느닷없이 등장한 정치쇼에 휘말려 TK항공의 재건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도쿄중앙은행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설치된 국토교통성의 태스크포스로 부터 막대한 채권포기를 요구받게 된다. 과연, 한자와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칙이 구석으로 밀려나고, 궤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지나치게 생각한 끝에 따로는 바보도 하지 않는 짓을 저지르는 것이 조직의 생리다." (p.77)

철두철미한 한자와의 뱅커로서의 승부근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쟁같은 과정이 흥미진진하다.각권이 단편처럼 하나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의 네번째 책이지만 앞권을 읽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일본 드라마로도 나왔다고 하던데, 한자와 캐릭터를 떠올리면서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책읽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한자와 시리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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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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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푸른색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갈곳을 잃은 듯 서 있는 여자아이. 아마도 요리코의 모습일 터이다.  갈곳을 잃은 소녀와 그 소녀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쇄 성폭행범의 파렴치한 범죄를 가장한 사건은 진실에 다가갈수록 잔인함의 깊이를 더해간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진실을 덮는 것만이 세상의 차가움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요리코를 위해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3부작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출판사 소개글 처럼 딸을 죽인 살인법을 찾아 살해에 이르는 복수극으로 시작하지만 독자들을 경악에 몰아넣는 충격적인 반전을 품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쯔음에는 뒷목이 서늘해 지기까지 한다. 누구를 위한 복수이며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진실에 닿고서도 밝힐 수 없었던 탐정 린타로의 복잡한 심경이 이해된다.

"인간이란 종종 가까이 이웃한 누군가에게 모든 죄업을 뒤집어 씌우곤 합니다. 때론 거기서부터 비극이 태어나죠. 니시무라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진정으로 증요해야 할 적을 잃어버리고 손이 닿는 곳에서 증오의 표적을 정해버린 겁니다." (p.113)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도 모자라 17살의 아까운 딸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를 찾아 직접 처벌하는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부터 서늘한 반전은 출발한다.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열흘간의 기록. 니시무라는 딸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페일 세이프' 작전이라 칭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수사조차 되고 있지 않은 요리코의 죽음을 추적한다. 범인의 시선으로 요리코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한발한발 다가선다.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요리코의 죽음에 대한 진실뿐이다." (p.23)

가족의 비극이 되었던 14년전의 교통사고는 니시무라의 이성을, 우미에의 신체적 자유와 뱃속의 아이를 그리고 겨우 세살이었던 요리코에게 필요한 부모의 따뜻한 시선을 앗아가 버렸다. 가족의 비극을 잊은 듯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요리코에게 필요한 사랑을 내어주지 않았던 니시무라의 이기심은 요리코의 이상행동을 가져오고야 만다.

"유지에게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의 몸을 그렇게 만들고 탄생을 기다리던 8개월 아들을 죽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요리코 였던 거에요..." (p.385)

거대한 권력의 비호 아래 부적정한 사건을 덮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니시무라가의 비극을 쫓는 작가이자 탐정 린타로의 시선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조작된 증거가 추악한 진실을 덮고 있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꾸며놓은 무대에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페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p.416)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를 읽고 있을 때는 사랑하는 딸을 어이없이 잃어버린 아버지의 부정과 권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범인을 직접 응징하고자 하는 치밀한 추리가 이어지고 있는지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니시무라 유지의 마음에 동화되어 있다. 이런 독자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벌어지는 반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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