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차가운 푸른색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갈곳을 잃은 듯 서 있는 여자아이. 아마도 요리코의 모습일 터이다.  갈곳을 잃은 소녀와 그 소녀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 이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쇄 성폭행범의 파렴치한 범죄를 가장한 사건은 진실에 다가갈수록 잔인함의 깊이를 더해간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진실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진실을 덮는 것만이 세상의 차가움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요리코를 위해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3부작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출판사 소개글 처럼 딸을 죽인 살인법을 찾아 살해에 이르는 복수극으로 시작하지만 독자들을 경악에 몰아넣는 충격적인 반전을 품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쯔음에는 뒷목이 서늘해 지기까지 한다. 누구를 위한 복수이며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진실에 닿고서도 밝힐 수 없었던 탐정 린타로의 복잡한 심경이 이해된다.

"인간이란 종종 가까이 이웃한 누군가에게 모든 죄업을 뒤집어 씌우곤 합니다. 때론 거기서부터 비극이 태어나죠. 니시무라도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진정으로 증요해야 할 적을 잃어버리고 손이 닿는 곳에서 증오의 표적을 정해버린 겁니다." (p.113)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도 모자라 17살의 아까운 딸의 목숨을 앗아간 악마를 찾아 직접 처벌하는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부터 서늘한 반전은 출발한다.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열흘간의 기록. 니시무라는 딸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페일 세이프' 작전이라 칭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대로 수사조차 되고 있지 않은 요리코의 죽음을 추적한다. 범인의 시선으로 요리코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한발한발 다가선다.

"내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요리코의 죽음에 대한 진실뿐이다." (p.23)

가족의 비극이 되었던 14년전의 교통사고는 니시무라의 이성을, 우미에의 신체적 자유와 뱃속의 아이를 그리고 겨우 세살이었던 요리코에게 필요한 부모의 따뜻한 시선을 앗아가 버렸다. 가족의 비극을 잊은 듯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요리코에게 필요한 사랑을 내어주지 않았던 니시무라의 이기심은 요리코의 이상행동을 가져오고야 만다.

"유지에게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의 몸을 그렇게 만들고 탄생을 기다리던 8개월 아들을 죽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요리코 였던 거에요..." (p.385)

거대한 권력의 비호 아래 부적정한 사건을 덮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니시무라가의 비극을 쫓는 작가이자 탐정 린타로의 시선에는 석연치 않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조작된 증거가 추악한 진실을 덮고 있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꾸며놓은 무대에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페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p.416)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를 읽고 있을 때는 사랑하는 딸을 어이없이 잃어버린 아버지의 부정과 권력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범인을 직접 응징하고자 하는 치밀한 추리가 이어지고 있는지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니시무라 유지의 마음에 동화되어 있다. 이런 독자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벌어지는 반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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