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너무 많이 참아왔다 - 쓸데없이 폭발하지 않고 내 마음부터 이해하는 심리 기술
강현식.최은혜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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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이 한순간에 사람을 잠식하지는 않는다. 작은 상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 순간 나를 잡아먹어 버린다. 항상 건강하고 긍정적인 성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요즘에는 내가 너무 많은 상처를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는 일이 많다. 주변을 너무 많이 의식하고 있는 탓에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나 예스맨으로 분류되어 가벼이 취급되는 건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과 함께 말이다.

이 책은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의미한다는 누다심 심리 상담 센터의 대표 강현식과 상담사 최은혜 공저의 심리 상담 서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사례와 함께 기술하고 있다. 왠지 내 이야기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격한 공감과 함께 위로받는 느낌을 준다. 나만 이런 마음이었던 건 아니었구나,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마음을 좀 편해질 수 있겠구나 하면서 소개된 사례에 나의 마음을 투영한다. 내가 요즘 많이 힘들긴 했었는지 소개된 이야기들이 모두 내 이야기 같다.

전기 자극에 학습된 강아지는 조금만 움직여도 전기 자극을 피할 수 있음에도 자포자기한 채 전기 자극에 몸을 맡기게 된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사소하게 상처 주는 말들에 둔감해지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가끔은 나도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털어버려야 하는 데도 조금만 참으면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상처를 덮게 된다. 작은 상처가 벌어지고 곪아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프로이트의 우울에 대한 설명은 마음의 상처를 그대로 두면 절대로 안 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우울을 가리켜 자신을 향한 분노라고 했다. 이것이 내부로 향하면 자살로 발전할 수 있다. 반면 외부로 향한 분노는 적개심과 살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p.138)

100인 100색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생각이 있다. 내 마음 같지 않음을 이유로 무작정 폭발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무작정 참기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쯤 이기적으로 보이고, 못된 사람으로 보이면 큰일 나는 것도 아닌데 꾹꾹 참지만 말고 폭발하기 전에 내 마음도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다.

"그동안 너무 참기만 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 감정이 분노일지라도 말이다." (p.39)

'참는 게 능사는 아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감정을 보듬어 뒤돌아 보게 하는 책이었다. 밖에서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가 집으로 들어와서는 짜증만 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참는 것도 적당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내 마음도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마음도 소중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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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키스 링컨 라임 시리즈 1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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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이라고 느끼기 어려운 산뜻한 노란색의 표지와 로맨틱한 키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 'STEEL KISS'로 표지와 제목에 유난히 집착하는 나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 책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의 12번째 이야기다. '작가는 독자가 지불하는 돈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자신감 있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벽돌처럼 두꺼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범죄 그리고 오직 두뇌로만 그를 쫓는 범죄학자와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흥미롭게 이어지는 아찔한 범죄소설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한 보이지 않는 범죄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혹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에도! 편리하게 변화되는 세상에 의미 있는 경고를 던지고 싶은 작가의 의미심장한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맨허튼의 건설 현장에서 살해된 토드 윌리엄스를 살해한 범인을 쫓고 있던 뉴욕의 형사 아멜리아 색스는 우연히 몽타주에서 본 범인을 마주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범인을 뒤쫓던 중 에스컬레이터 오작동 사건 현장을 맞닥뜨린다. 범인을 쫓는 일과 무고한 시민을 구하러 가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색스는 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 사건 현장으로 움직이고 그 사이 범인은 유유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 왜 하필 지금 에스컬레이터의 오작동이 일어난 것일까... 과연 그녀는 토드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 40을 찾을 수 있을까. 일련의 사건들은 같은 듯 다른 듯 이어진다.

여타의 범죄소설과 달리 용의자는 특정되어 있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60킬로그램을 넘지 않는 깡마른 채구를 가졌지만 괴이한 식탐으로 한꺼번에 햄버거를 열다섯 개씩 먹어치우는 남자. 어디서든 눈에 띌 것 같은 용모를 지닌 용의자임에도 아멜리아의 추적에서 번번이 벗어난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경고하며 예고된 살인을 이어간다.

아멜리아의 현장감 넘치는 추적도 흥미롭지만,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전신마비의 천재 범죄학자 라임의 활약 또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범죄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박력 넘치는 영웅이 아니다. 오로지 두뇌로만 범인의 흔적을 쫓는다. 집요하고 정확하게 버려질 수 있는 미량의 증거물을 분석하고 추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의 행적을 추적한다. 전신마비 따위는 그의 수사를 방해할 수 없는 하찮은 장애로 여겨진다. 새롭고 독특한 전신마비 범죄학자라는 설정 덕분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과학지식이 좀 더 사실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데이터마이닝이나 사물인터넷, 컨트롤러 등 이미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소재들을 활용한 탓에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불량탓에 다소 긴 호흡으로 읽은 책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범죄현장에서 다뤄지는 소재도 증거를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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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 서툰 어른이 된 우리에게, 추억의 포켓몬 에세이
안가연 지음, 포켓몬코리아 감수 / 마시멜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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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피카~~ 아이들이 열광하는 만화와 캐릭터 스티커 그리고 온 국민을 땅만 보고 다니게 만들었던 포켓몬고까지 포켓몬에 대한 추억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노랗고 포동포동한 피카추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진화하는 다양한 포켓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랑스러움을 품고 있었다. 하다못해 2%로 부족한 악당으로 등장하는 로켓단의 나옹까지도 사랑스러웠으니 말이다.

노랑노랑한 표지의 피카츄와 함께 등장한 책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는 '각양 각색의 포켓몬들이 어우러진 친구인 것처럼 우리도 모두 친구다'를 온몸으로 주장하면서 내 손에 안착했다. 함박웃음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피카추를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책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그냥 피카츄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을 텐데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섯 개의 챕터 제목들이 포켓몬스럽다고 해야 할까. 참 따뜻하다. 주변에는 항상 포켓몬이 있고 = 외로워하지 말아라, 옆에는 항상 친구가 있다고, 뾰족하게 굴어도 언젠가는 둥글둥글 해질 거라고, 조금 힘들고 지친 어제는 잊어버리고 내일을 만들어 가라고 격려해 준다. 사실 챕터 제목과 그 아래 있는 작은 제목들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 포켓몬에게는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첫 번째 이야기 우리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포켓몬이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인생의 틈을 만드는 한방의 기술

세 번째 이야기 괜찮아, 결국엔 모두 동그래질 테니까

네 번째 이야기 어제는 되돌릴 수 없지만, 내일은 만들어낼 수 있어

다섯 번째 이야기 우리는 모두 친구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

 

책속에 가득 담긴 80여마리의 포컷몬들은 흡사 만화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좋음을 선사한다. 포켓몬과 뒤엉켜 뛰어 놀 수 있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편안한 파스텔톤의 색감을 가진 포켓몬들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절로 쓰담쓰담 손이간다. 예쁘기만 한걸로는 못내 아쉬웠는지 술술 읽히는 짧은 글들은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열심히 달리기만 하지 말고, 앞도 뒤도 옆도 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고 토닥여준다.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말이다.

"80% 힘으로 달라는 날도, 50%의 힘으로 달리는 날도, 조금 지치는 날에는 20%의 힘으로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을 무작정 탓하지 말고 결정적인 한방을 위해 잠시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p.163)

한참 우울할 때 책을 읽었는지, 밑줄 그어진 문장이 모두 위로하는 말들이다. 그만큼 책을 읽으면서 많이 위로 받았겠거니하고 생각하려고 한다. 꼬북이의 등껍질이 부러울 때도, 파이리의 불꽃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피카츄처럼 주변에 에너지를 주는 포켓몬이 되고 싶다. 오늘은 나의 최애 인형 잠만보와 함께 단잠을 청해봐야 겠다. 인생 뭐 있어! 게으를 때도 있고 활기찰 때도 있는게 인생이지! 오랜만에 포켓몬의 추억에 푸욱 빠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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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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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끝까지 눈치챌 수 없는 색다른 반전을 품고 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쫀쫀하게 짜여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구성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끝까지 멈출 수 없는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여성'이라는 평등한 객체를 여전히 쉽게 다루고, 조정하려고 하는 사회에 맞서 따끔한 일침을 던진다. 소녀들이여! 스스로 깨어나라! 그리고 스스로 주도적인 삶을 이끌어 가라!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가 되어 세상에 맞서라!

잠들어 있는 장미인형들의 반란은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는 학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로부터 출발한다. 무심코 보기에는 다양한 교양교육과 함께 정숙한 여성들을 길러내고 있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의 빡빡한 교양수업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모든 교육이 남자들을 위한 예의바르고 순종적인 인형을 길러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때까지는 말이다. 틀에 맞춰진 교육과 규율에 따라 생활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날때면 어김없이 충동억제치료실로 끌려가게 된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교장 페트로프와 그의 아내 리엔드라, 행동을 통제하는 사감 보스, 끊임없이 정신을 분석하고 초기화 시키고 있는 분석가 안톤, 그리고 그녀들을 탄생시킨 의사 그로거. 이노베이션스의 장미, 필로미나를 비롯한 어린 소녀들은 철저한 통제와 함께 사악한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매일 밤 소녀들에게는 비타민을 가장한 의문의 약들이 배부되고, 그녀들은 알록달록한 비타민과 함께 과거를 흘려보내고, 자아를 잃고 있다.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잊고 환하게 웃는 장미가 되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맞춤형 인형이 되어 간다. 스스로 깨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그녀들을 구할 수 없다.

'학교는 너를 남들의 말을 믿지 않도록 훈련했어. 너 스스로 도달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너를 깨우지 못해." (p.168)

스스로 깨어나 그녀들이 날카로운 막대기를 벼리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그녀들은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밤마다 주어지는 망각의 비타민을 거부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며, 그녀들을 통제하고 있는 그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멈출수 없음을 자각하고 한뿌리가 되어 그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따스한 햇빛과 자유를 위해서...

"우리가 영영 이곳을 나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조종에서 벗어났다. 이제 다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그 생각에 미소 짓는다. 조용히 짐을 꾸린다." (p.356)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여성 그리고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서사가 낯설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리얼돌이 여전히 떠돌아 다니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여성으로 당당히 살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조금은 씁쓸한 책읽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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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니 좋다
서정희 지음 / 몽스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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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서정희 님은 예쁘장하고 마른 몸에 항상 긴 스커트를 입은 야리야리 천생 여자 내지는 뼛속부터 여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있었다. 이런 야리야리한 여인의 모습을 가정폭력에 한없이 작아지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뒤바꿔 놓은 것이 이 책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는 엘리베이터 신이다. 하얗고 청초한 모습을 한순간에 뒤덮어 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평범한 필부가 아니었던 탓에 속으로 얼마나 꾹꾹 누르며 참고 살았을까 하는 마음에 절로 안타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 아닌지라 어느덧 기억의 저편 속으로 사라진 사건이었다.

책을 읽기 전 꼼꼼하게 저자와 내용을 보고 선택하는 편이 아니라, 제목과 표지에 많은 비중을 두고 눈길이 가면 읽는 막무가내 독서 습관으로 이번 책도 책장을 펼치기 전까지 작가 '서정희'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분인 줄도 모르고 무심히 선택한 책이었다. 제목이 좋아서, 내 나이 마흔의 중반을 넘겼으니 언젠가는 꼭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사니 좋다'는데 어떤 게 좋은 걸까 하고 말이다.

'이혼'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실제 겪은 사람들에게 '이혼'은 '별거'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저자의 사례처럼 좀 더 일찍 결심하지 못함이 후회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고, 조금만 더 참아볼 걸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한 이불 덮고 사는 그분이 필요할 때도, 진저리 나게 싫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인생의 별거인 사건을 이겨내고 당당한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집에서는 철저히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 집 밖에서 무언가를 혼자 해야 한다고 하면 겁을 내는 것 같아." (p.95)

'혼자'라는 단어가 주는 쓸쓸함을 '나'라는 새로운 세계와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다. 견고한 성처럼 쌓여있는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모래성과 같았던 벽을 허물고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였으리라. 운전 중에 길을 잃었을 때에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했던 연약한 새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날갯짓 하기까지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넓디넓은 집을 나와 19평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투명한 유리 벽 욕실을 만들기까지 세상은 온통 가시밭길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그녀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다.

"캐스팅되지 않아도 괜찮다.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 나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응원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p.63)

모녀간의 모습이 예쁘게 쓰여진 글이다. 팔순 노모와 예순의 딸 그리고 곱디 고운 예순의 어마와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 홀로된 딸,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기대고 살아가는 삶이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예쁘고 싶고, 새침하고 싶은 연속극 같은 인생을 로맨틱 코미디로 바꿔가고 있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응원한다.

"실패 좀 하면 어때? 귀여우면 되지."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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