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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끝까지 눈치챌 수 없는 색다른 반전을 품고 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다. 쫀쫀하게 짜여진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구성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끝까지 멈출 수 없는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여성'이라는 평등한 객체를 여전히 쉽게 다루고, 조정하려고 하는 사회에 맞서 따끔한 일침을 던진다. 소녀들이여! 스스로 깨어나라! 그리고 스스로 주도적인 삶을 이끌어 가라! 면도날 심장을 가진 소녀가 되어 세상에 맞서라!
잠들어 있는 장미인형들의 반란은 외딴 곳에 고립되어 있는 학교, 이노베이션스 아카데미로부터 출발한다. 무심코 보기에는 다양한 교양교육과 함께 정숙한 여성들을 길러내고 있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의 빡빡한 교양수업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모든 교육이 남자들을 위한 예의바르고 순종적인 인형을 길러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때까지는 말이다. 틀에 맞춰진 교육과 규율에 따라 생활하고 조금이라도 벗어날때면 어김없이 충동억제치료실로 끌려가게 된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교장 페트로프와 그의 아내 리엔드라, 행동을 통제하는 사감 보스, 끊임없이 정신을 분석하고 초기화 시키고 있는 분석가 안톤, 그리고 그녀들을 탄생시킨 의사 그로거. 이노베이션스의 장미, 필로미나를 비롯한 어린 소녀들은 철저한 통제와 함께 사악한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매일 밤 소녀들에게는 비타민을 가장한 의문의 약들이 배부되고, 그녀들은 알록달록한 비타민과 함께 과거를 흘려보내고, 자아를 잃고 있다.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잊고 환하게 웃는 장미가 되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맞춤형 인형이 되어 간다. 스스로 깨어나기 전에는 아무도 그녀들을 구할 수 없다.
'학교는 너를 남들의 말을 믿지 않도록 훈련했어. 너 스스로 도달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너를 깨우지 못해." (p.168)
스스로 깨어나 그녀들이 날카로운 막대기를 벼리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있지만, 그녀들은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는다. 밤마다 주어지는 망각의 비타민을 거부하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며, 그녀들을 통제하고 있는 그들에게 분노하기 시작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멈출수 없음을 자각하고 한뿌리가 되어 그들에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따스한 햇빛과 자유를 위해서...
"우리가 영영 이곳을 나가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그들의 조종에서 벗어났다. 이제 다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그 생각에 미소 짓는다. 조용히 짐을 꾸린다." (p.356)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여성 그리고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서사가 낯설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리얼돌이 여전히 떠돌아 다니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여성으로 당당히 살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조금은 씁쓸한 책읽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