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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키스 ㅣ 링컨 라임 시리즈 12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5월
평점 :
범죄소설이라고 느끼기 어려운 산뜻한 노란색의 표지와 로맨틱한 키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 'STEEL KISS'로 표지와 제목에 유난히 집착하는 나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 책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의 12번째 이야기다. '작가는 독자가 지불하는 돈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자신감 있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벽돌처럼 두꺼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범죄 그리고 오직 두뇌로만 그를 쫓는 범죄학자와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흥미롭게 이어지는 아찔한 범죄소설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한 보이지 않는 범죄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혹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에도! 편리하게 변화되는 세상에 의미 있는 경고를 던지고 싶은 작가의 의미심장한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맨허튼의 건설 현장에서 살해된 토드 윌리엄스를 살해한 범인을 쫓고 있던 뉴욕의 형사 아멜리아 색스는 우연히 몽타주에서 본 범인을 마주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홀로 범인을 뒤쫓던 중 에스컬레이터 오작동 사건 현장을 맞닥뜨린다. 범인을 쫓는 일과 무고한 시민을 구하러 가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색스는 몸을 돌려 에스컬레이터 사건 현장으로 움직이고 그 사이 범인은 유유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 왜 하필 지금 에스컬레이터의 오작동이 일어난 것일까... 과연 그녀는 토드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 40을 찾을 수 있을까. 일련의 사건들은 같은 듯 다른 듯 이어진다.
여타의 범죄소설과 달리 용의자는 특정되어 있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 60킬로그램을 넘지 않는 깡마른 채구를 가졌지만 괴이한 식탐으로 한꺼번에 햄버거를 열다섯 개씩 먹어치우는 남자. 어디서든 눈에 띌 것 같은 용모를 지닌 용의자임에도 아멜리아의 추적에서 번번이 벗어난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을 경고하며 예고된 살인을 이어간다.
아멜리아의 현장감 넘치는 추적도 흥미롭지만,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전신마비의 천재 범죄학자 라임의 활약 또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범죄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박력 넘치는 영웅이 아니다. 오로지 두뇌로만 범인의 흔적을 쫓는다. 집요하고 정확하게 버려질 수 있는 미량의 증거물을 분석하고 추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범인의 행적을 추적한다. 전신마비 따위는 그의 수사를 방해할 수 없는 하찮은 장애로 여겨진다. 새롭고 독특한 전신마비 범죄학자라는 설정 덕분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과학지식이 좀 더 사실적으로 독자에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데이터마이닝이나 사물인터넷, 컨트롤러 등 이미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소재들을 활용한 탓에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 멀지 않은 미래에 상용화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불량탓에 다소 긴 호흡으로 읽은 책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범죄현장에서 다뤄지는 소재도 증거를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도 흥미로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