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니 좋다
서정희 지음 / 몽스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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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서정희 님은 예쁘장하고 마른 몸에 항상 긴 스커트를 입은 야리야리 천생 여자 내지는 뼛속부터 여자의 모습으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있었다. 이런 야리야리한 여인의 모습을 가정폭력에 한없이 작아지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뒤바꿔 놓은 것이 이 책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는 엘리베이터 신이다. 하얗고 청초한 모습을 한순간에 뒤덮어 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잔인한 모습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평범한 필부가 아니었던 탓에 속으로 얼마나 꾹꾹 누르며 참고 살았을까 하는 마음에 절로 안타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 아닌지라 어느덧 기억의 저편 속으로 사라진 사건이었다.

책을 읽기 전 꼼꼼하게 저자와 내용을 보고 선택하는 편이 아니라, 제목과 표지에 많은 비중을 두고 눈길이 가면 읽는 막무가내 독서 습관으로 이번 책도 책장을 펼치기 전까지 작가 '서정희'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분인 줄도 모르고 무심히 선택한 책이었다. 제목이 좋아서, 내 나이 마흔의 중반을 넘겼으니 언젠가는 꼭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사니 좋다'는데 어떤 게 좋은 걸까 하고 말이다.

'이혼'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을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실제 겪은 사람들에게 '이혼'은 '별거'인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저자의 사례처럼 좀 더 일찍 결심하지 못함이 후회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고, 조금만 더 참아볼 걸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한 이불 덮고 사는 그분이 필요할 때도, 진저리 나게 싫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인생의 별거인 사건을 이겨내고 당당한 홀로서기에 성공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집에서는 철저히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 집 밖에서 무언가를 혼자 해야 한다고 하면 겁을 내는 것 같아." (p.95)

'혼자'라는 단어가 주는 쓸쓸함을 '나'라는 새로운 세계와 이어가고 있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다. 견고한 성처럼 쌓여있는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모래성과 같았던 벽을 허물고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길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였으리라. 운전 중에 길을 잃었을 때에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했던 연약한 새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날갯짓 하기까지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넓디넓은 집을 나와 19평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투명한 유리 벽 욕실을 만들기까지 세상은 온통 가시밭길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나오는 그녀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다.

"캐스팅되지 않아도 괜찮다.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 나 자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응원하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다." (p.63)

모녀간의 모습이 예쁘게 쓰여진 글이다. 팔순 노모와 예순의 딸 그리고 곱디 고운 예순의 어마와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 홀로된 딸,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기대고 살아가는 삶이 평범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예쁘고 싶고, 새침하고 싶은 연속극 같은 인생을 로맨틱 코미디로 바꿔가고 있는 그녀의 귀여운 모습을 응원한다.

"실패 좀 하면 어때? 귀여우면 되지."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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