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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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을 때의 전율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 머리속에 작가가 다녀온 줄 알았다.
내가 했던 고민, 생각,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질까지 작가의 그것들과 너무나도 닮았다. ˝나는 원래 불의를 질끈 잘 참는 아이였다.˝ 이 부분만 좀 안 닮았는지도.
참는 걸 잘 못 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문유석 판사가 몇 십년을 더 일찍 살아온 분이니 아마도 내가 그 분을 닮았다고 해야 선후가 맞겠지만.

일절 접점도 없던 타인의 생각에서 나와 같은 부분을 찾는 기쁨이란.
그게 찌질하거나 아픈 부분이라도 좋다. 인간은 원래 혼자라고 늘 한 발 빠져서 세상을 보는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게 만든다.

독서에 대한 편식이나 취향, 생각도 비슷해서 책을 읽으며 즐거웠다. 내게는 보물지도 같은 책이다.
이렇게까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재밌었다‘고 하는 책이라면 나도 읽어 즐거울테니.
농담 아니고, 나는 안 읽었는데 작가는 즐겁게 읽었다는 언급이 나오면 모조리 알라딘 책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언제 다 사서 읽을 지는 감도 안 잡히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작가의 다른 책들은 참 여러번 읽었다. 솔직히 오늘도 읽었던 책 또 읽을까 했다. 우울했으니까. 힘들고 아프고 우울한 일이 있을 때는 ‘세상에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어‘라고 느끼게 만드는 책을 읽고 싶다.
문유석 작가가 책을 더 많이 내 주었으면 좋겠다.

쾌락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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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지. 마찬가지로 독서도 이런 독서도 있고 저런 독서도 있는 거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발견하면 "우와, 한동안 재미있겠다!" 하며 신이 났고, 게다가 그 소설이 열 권 스무 권 밑도 끝도 없이 길기까지 하면 두고두고 퍼먹을 꿀단지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인간 세상의 변화 대부분은 A라는 문제를 B라는 문제로 대체하는 과정의 연속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문제는 새로운 문제로 대체되는 것이 낫다. 완벽한 대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잘못을 바로잡는 것 자체가 의미 있기 때문이다.

여학생은 순정만화 코너에, 남학생은 소년만화 코너에 일사불란하게 나뉘어 앉아 가끔 서로를 힐끔거리던 그때의 만홧가게가 떠오른다. 우리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자신이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뻔한 존재인지 자각하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래, 나는 에이스가 아니었어. 팀의 주역이 아니면 어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 아냐? 누가 비아냥거려도 웃을 수 있게 된다. 죄송함다. 제가 원래 에이스가 아니거든요.

낙관주의와 유머, 연민이야말로 오랫동안 살아남는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인간 심리라는 것이 묘해서 가장 바쁠 때 오히려 여가에도 독서나 운동, 글쓰기 등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고, 한가할 때는 그냥 소파에 늘어져 티브이만 보게 된다.

생명은 늘 다른 생명을 해치며 살아간다. 개인의 선의, 악의와 상관없이 말이다.

선의도 탐욕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독서란 정처 없이 방황하며 스스로 길을 찾는 행위지 누군가에 의해 목적지로 끌려가는 행위가 아니다.

가끔 글에 자기 치부까지도 적나라하게 고백할수록 뭔가 대단한 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남이 길에서 똥 싸는 걸 진지하게 봐줄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건 그냥 노출증이다.

가끔은 현실이 더 상상 같을 때도 있다.

문화적 식민주의니 뭐니 할지도 모르지만, 더 매력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가슴이 뛰는 것에 매료되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스케일이 작으면 그냥 막장이지만 엄청나게 크면 대서사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민하는 이유는 비생산적이어서가 아니라, 결국은 즐겁지조차 않아서다.

무한한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한 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피로감도 필요한 것이다.

수동적으로 내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 것이 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지성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야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직접민주주의란 공포일 뿐이다.

서점에서도 서가에 꽂힌 책과 평대에 누워 있는 책의 생명력은 천양지차다. 책은 고이 모셔놓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하는 취향의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님들아, 번식해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삶은 글보다 훨씬 크다. 열심히 살든 되는대로 살든 인간은 어떻게든 각자 살아야 한다. 되는대로 살 때 더 좋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간접경험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받은 대로, 조직논리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惡의 실체였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부모고, 자식이고, 친구였을 평범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악마였다. 타인의 입장에 대한 무지가 곧 악인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이경규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무지는 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소음과 위협, 공포에 둘러싸여서 사는 것은 불행하다.

줄다리기는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아니라 중간에 맨 손수건이 약간 움직이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중간에 있는 이들이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지 않고 시늉만 하고 있으면 줄은 한쪽으로 확 끌려가고 만다.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 이를 악물고 외쳐대는 욕설 때문에 이들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결국 가장 먼저 넘어져 뒹굴고 흙투성이가 될 것은 양끝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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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책 한 권만 있으면 싫은 상황, 싫은 곳에서도 용케 틀어박힐 구석을 찾아내어 책 속으로 잘도 피신하곤 했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든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험담이든 뭐든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내가 찾은 마법의 단어는 이거다. "그러게(싱긋 미소 지으며)". 상대가 손위인 경우에는 "그러게요(싱긋)".

『구운몽』도 그렇고 『쿠오바디스』도 그렇고 난 저자의 의도나 작품 주제와 관계없이 세속적이고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것들에 매혹되곤 했다.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 따위가 왜 매력적이란 말인가. 그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다 꺼진 후의 회색 잿더미에 불과하다. 덧없고 유한하고 표피적인 감각에 불과한 것들이야말로 바로 그렇기에 애가 타도록 매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괜찮지만 무엇이 별로라고 얘기하는 건 ‘그러는 너는!’ 등등의 소란스러운 반응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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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라서 그래. 언제나 내 몸을 지켜야 하고 두려움과 고독에 떨어야 하다가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말이야……."

"혼자." 르누아르가 페니위더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고독이야, 알았어? 고독이 주문이었던 거야. 고독은 아주 강한 힘이 있어……. 정말 이건 자연스러운 설명이야."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문자는 누구의 지식입니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모두의 것이지. 이것은 신비가 아닐세."

자네는 명인이 되었다는 것이 다른 이를 가르치기 위한 모든 것을 다 배웠다는 뜻이라는 걸 생각해봤나?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자네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걸세.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단 말이야.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있어, 가닐."
"어디 말입니까?"
"바깥세상이지."

신비로움은 사람에 속해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니라 기술을 연마할 뿐이라네.

오로지 얻기만을 원하는, 소유하기만을 원하는 사랑은 소름이 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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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저는 마법이 듣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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