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책 한 권만 있으면 싫은 상황, 싫은 곳에서도 용케 틀어박힐 구석을 찾아내어 책 속으로 잘도 피신하곤 했다.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든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험담이든 뭐든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내가 찾은 마법의 단어는 이거다. "그러게(싱긋 미소 지으며)". 상대가 손위인 경우에는 "그러게요(싱긋)".

『구운몽』도 그렇고 『쿠오바디스』도 그렇고 난 저자의 의도나 작품 주제와 관계없이 세속적이고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것들에 매혹되곤 했다.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 따위가 왜 매력적이란 말인가. 그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다 꺼진 후의 회색 잿더미에 불과하다. 덧없고 유한하고 표피적인 감각에 불과한 것들이야말로 바로 그렇기에 애가 타도록 매력적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무엇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건 괜찮지만 무엇이 별로라고 얘기하는 건 ‘그러는 너는!’ 등등의 소란스러운 반응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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