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때 함부로 발걸음을 흐트러뜨리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될 것이니.
공유지의 비극과 주류경제학의 해법
공유지의 비극이란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공의 자원이 있을 때, 사람들이 그 공공 자원을 조금도 아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원이 쉽게 고갈되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공동으로 사용하는 초원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양을 키운다고 생각해보자. 초원의 풀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주민들은 모두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기르는 양의 숫자를 늘릴 것이다. 하지만 초원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다. 결국 초원에는 양이 넘쳐나게 되고, 초원은 황폐화된다
이런 결과는 ‘인간은 이기적이다‘를 전제로 한 현대 경제학에 심각한 도전을 안겨주었다. 실험에 따르면 인간은 난생 처음 본 사람에게 기꺼이 불로소득의 45%를 나눠주는 협력적 존재였다. 또 인간은 2000원이라는 공짜 돈을 포기하면서 정의롭지 못한결과, 공정하지 못한 분배에 저항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류 경제학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과연 단 1원이라도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선택하는 이기적 존재인가? 최후통첩 게임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고 말한다.
한국 사법체계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불평등한 세상에 사느지 진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은, 2400원을 횡하면 해고를 당하고, 1000억 원을 횡령하면 재벌 회장으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3500만 원을 뇌물로 주면 실형을 사는데, 36억 원을 뇌물로 주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사실이다. 이게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한국 사법체계의 불평등한 민낯이다. 우리가 새로 만드는 세상은 이 불평등함을 정의로운 평등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재용에 대한 상고심을 앞둔 우리의 주장(이 책이 이재용의 상고심 이전에 쓰였음을 이해해 달라)은 "이재용을 다시 구속하라."가 아니라 "이재용을 충분히 오랫동안구속하라!" 여야 한다. 상상보다 훨씬 더 불평등한 한국의 사법체계를 바꾸는 방법은바로 이재용을 충분히 오래 구속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피프 교수는 우리에게 "돈이 우리를 얼마나 사악하게 만드는지 아십니까?"라고 묻는다. 한국 사회는 이 질문에 뭐라 대답할 것인가? 부(富)가 아무런 대가 없이 대물림되는 세상, 금수저들이 버젓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용하여 사회 지도층이 되는 세상, 이 공포의 세상을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심리학에서 노력 정당화 효과는 대표적인 인지부조화 현상 중 하나로 평가를 받는다. 인지부조화란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증상을 뜻한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서울대 출신들이 가진 ‘우리는 위대해, 우리는 남들보다 우월해‘라는 믿음은 진실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뜻이다. 예일 대학교의 해골과 뼈 클럽이나 미국 명문대학교들의 클럽이 혹독한 신고식을치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들보다 더 고생을 하도록 만들면(그렇다고 토사물까지먹이냐?) 남들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안철수 씨가 와튼 스쿨을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와튼 스쿨은 MBA라고 불 ‘리는 미국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중에서도 알아주는 명문이다. 그리고 보통 2년 동안진행되는 미국 MBA 과정은 배움이 고통스럽기로 유명하다.
친구 따라 범죄를 저지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 무심코 범죄를 저지를까?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범죄에가담할 경우 사람들은 더 쉽게 무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보라. 사람들이 다 신호를 지킬 때 용맹하 게 혼자서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반면 사람들이 우르르 무단횡단을 할때에는 나도 모르게 별 생각 없이 무단횡단에 가담한다. ‘남들 따라 저지르는 범죄의 심리를 입증하는 실험이 하나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차를 한 대 방치해 두고 트렁크를 열어 두었다. 하지만 이 차에는 1주일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후 짐바르도는 같은 골목에 똑같이 차를 1주일 동안 방치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렁크를 열어두는 대신 차 유리창을 하나 박살을 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나왔다. 사람들은 이 차에서 배터리와 카오디오, 내비게이션과 타이어 등을 모조리 훔쳐갔고, 훔쳐갈 것이 없어지자 차를 박살냈다.
대부분 기업들은 성과급을 내걸면 생산성이 높아질 거라고 착각을 하지만 현실은다르다. 물론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말이 동기를 부여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동시에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된다."
이게 무슨뜻일까? 인간이 언제나 일관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아주 작은 틀을 설정해 놓으면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 틀에 갇힌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동체입니다"라고 알려만 줘도 사람은 협동을 선택한다. 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의 전쟁터에요"라고 살짝 귀띔해도 사람은 상대를 쉽게배신한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은 이렇게 말한다. "물이 절반이 남은 컵이 있는데 A마을 지도자는 ‘물이 절반밖에 없으니 부족하다고말하고 B마을 지도자는 ‘물이 절반이나 남아있으니 아직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A마을 주민들은 물이 없어지기 전에 먼저 마시려고 서로를 배신하지만, B마을 주민들은 여유롭게 공생의 길을 찾는다.
유토피아를 향한 우리 사회의 틀
하지만 너무 허무해 하지 않아도 좋다. 이 연구를 잘 살펴보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향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장기기증 같은 도덕적이고도 어려운 결단조 ‘차도 결국 틀을 어떻게 짜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누군가 필자에게 "어떤 세상을 꿈꾸세요?"라고 물어보면, 나는 일초도 주저하지 않고 연대와 협동이 기초가 되는 공동체의 사회를 꿈꿉니다" 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표정으로 "경제학을 공부하셨다는 분이 뭐 그런 허황된 꿈을 꾸고 사세요?"라고 반문한다. 필자보고 공상주의자나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여럿 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공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한 적 도 한 번도 없다. 과연 연대와 협동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불가능한가?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이란 각자가 소유한 돈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고,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수록 만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1억 원 부자는 1억 원만큼 행복하고 1조 원 부자는 1조 원만큼 행복하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럴까? 앵커링 이펙트는 주류 경제학의 이런 주장에 고개를 내젓는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자기의 행복을 측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을 체감할 때 중요한 것은 주변사람들과의 비교다. 내 주변의 기준점들, 예를들면 직장 동료나 친척들에 비해 내가 더 가난할 때 사람이 느끼는 빈곤감은 훨씬 커진다. 반면 주변의 앵커들에 비해 내가 더 부유하면 상대적으로 느끼는 행복도도 높아진다.
"애리얼리도 빨갱이다!" 라고 외칠 요량이 아니라면 이 이야기는 정말 귀담아 들을필요가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의미가 부여될 때 더 창의적으로 일한다. 기계와 비슷한 대접을 받으면서 노동으로부터 소외될 때가 아니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스미스의 옹호자들이 빨갱이 타령을 계속 할까봐 한 마디만 덧붙인다. 그가 자유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튼튼한 옹호자로 알려지면서,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스미스는 약간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는 전혀 사실이아니다. 스미스는 매우 도덕적이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학자였다.
방관과 참여의 갈림길에서
이 게임의 이름이 ‘이타적 처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C는 단지 정의감만으로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C가 입은 손실이 누구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이타심을 이야기할 때, 나를 희생해서라도 누군가를 돕는 행위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타심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물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타심도 있지만, 어떤 경우 이타심은 나쁜 자들을 응징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프랑스 시민들이 끝없이 혁명을 반복한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악랄한 지배자들을 응징하는 일에 나섰다. 이타적처벌의 마음이 십분 발휘된 것이다.
투쟁에 나서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자. 그런 이타적 처벌이 역사를 전진시켰다. ‘모른 척 지나갈까?‘라는 유혹이 나를 끌어당길 때, 이타적 처벌이 역사를 발전시켰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이타심은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고,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그게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길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것을,정의라고 부른다.
포로의 입을 열기 위해 가족을 고문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가족을 고문하면 포로는 마치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매우 괴로워한다. 이건 단지 마음의 아픔이 아니다. 실제 포로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은 "극심한 육체적 통증을 경험했다"고 답한다. 거울 뉴런이 발견되기 전까지 주류 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성품만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타인의 고통에도아랑곳하지 않고 내 이익만 챙기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타인이 아파하면 자신도 아파하는 거울 뉴런을 가진 공감의 존재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즉 공감하는 인간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선천적공감능력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권력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이기적으로 살라고강요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선천적인 공감 능력을 없애려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말아야 한다. 침팬지가 보여준 도덕 따위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굶어죽건, 병들어 죽건 상관치 않고 효율과 성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게 주류 경제학의 오래된 주장 아닌가?
플로리다 교수의 연구를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플로리다는 창조계급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도시의 특징을 면밀히 연구했다. 문화산업이나 첨단산업이 발달한 샌프란시스코만(灣) 지역이나 텍사스 오스틴 지역이 그런 곳들이다. 그런데 이런 도시들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똘레랑스(tolerance)‘라고 불리는 관용성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문화가 창조도시의가장 큰 특징이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삶이 앞으로 나가려면 더 나은 실재를 상상할 능력이 필요하고, 그 실재가가능하다는 믿음도 필요하다. 낙관주의가 없었다면 최초의 우주선은 뜨지 못했을것이고, 중동의 평화도 결코 시도되지 못했을 것이고, 재혼하는 사람도 전무할 것이고우리 조상들은 감히 부족을 떠나 멀리까지 갈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협동의 공동체는 이기적 집단에 비해 분명히 경쟁력이 있다. 평창 올림픽에서 노르웨이 대표팀이 보여준 성과가 그것을 입증한다. 아무리 주류 경제학자들이 "개인의이기심이 세상을 효율적으로 바꾼다"고 거짓말을 해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결국 협동의 공동체가 더 큰 성과를 낸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말로 떠든다고 이뤄지는일도 아니다. 공동체 문화를 위해 모두가 겸손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건 모두 내 덕이다"라며 공치사를 남발하는 오만한 영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한걸음을 지향하는 따뜻하고 겸손한 이들의 연대가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이 이론의 명칭이 은행가의 혜택이나 은행가의 선행이 아니라 ‘은행가의 역설‘인이유는, 이런 현상이 너무나 부당하기 때문이다. 도움이란 정녕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패거리 문화와 은행가의 역설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은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끝내지 모하일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아 잘 기억할 수 있다." 웨이터가 손님의 복잡한 주문을 잘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웨이터는 주무을 주방에 전달하기 전까지 그 일을 끝내지 못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뇌는 그 이을 더 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주문이 주방에 전달되는 순간, 임무는 완수된다. 뇌는 완벽하게 끝낸 일을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으므로 웨이터의 뇌는 더 이상 그 주문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불과 30분 전까지 완벽히 기억했던 주문을 웨이터가 신속하게 잊어먹는 이유가 바로여기에 있다. 자이가르닉의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심리학에서는 이 이론을 ‘자이가르 ) 닉 효과(Zeigamik effect)‘ 혹은 ‘미완성 효과‘라고 불렀다.
"내가 딛는 한걸음만큼 당신도 한걸음을 내디뎌 주세요. 그러면 나는 용기를 얻어한걸음 더 나아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뒷걸음질을 친다면, 나도 더 이상 용기를낼 수 없어요. 우리 함께 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가자고요."
함께 걷는 걸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필자는 역사의 진보가 인류의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누군가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갈 때 역사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전진한다. 하지만 그 용기는 어떤 선천적 용맹성을 가진 영웅에 의해 발현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용기라는 것은 동지애와 동료애, 남과 함께 하겠다는 연대의 마음이라는 상호성에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필자는 매우 비겁한 사람이다. 용기도 정말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누군가 내 주변에서 용맹스럽게 한걸음을 전진하면, 필자도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한걸음을 내딛는다. ‘필자가 뒤따라 한걸음을 걷는 동안, 앞서서 나간 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맹스럽게 전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용기는 그렇게 무한하지 않다. 앞선 이 도 사람이기에 걸음을 멈추고 옆을 돌아본다. 누군가가 자기 옆에 있는지를 확인한 뒤동행이 생기면 다시 용기를얻어 앞으로 나아간다. 한국 현대사를 살펴보면 어떤 이는 목숨을 걸었고, 어떤 이는 생계를 걸었다. 이렇게 먼저 앞으로 나아간 송곳 같은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가 무한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용맹스럽게 한걸음을 내디뎠을 때, 우리도 용기를 내 한걸음 따라가야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 옆에 우리가 있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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