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몽은 "산업사회가 고도화되고 규모가 커질수록 분업이 심화된다. 각 구성원이맡은 유기적 일 중 하나만 펑크가 나도 사회가 피곤해진다"라고 주장한다. 청소 노동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우리가 사는 도시의 길거리는 난장판이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하루 200인분의 밥을 짓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라진다면 현대인들은 자 녀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산업사회에서 개인이 누리는 많은 것들, 행복과 물질적 풍요 같은 것들은 궁극적으로 사회라는 총체적인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이 말은, 산업사회에서 우리가얻는 행복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생시몽이 바라보는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할까? 나를 대신해 그 일을 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하며 사는 것이 온당할까? "나는 돈을 냈으니 당연히 그들을 무시해야겠어" 라고 거만을 떠는 것이 지당할까?
이 차이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결정한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들이 모이면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한다.

또 크로포트킨에 따르면 서로 돕고 사는 인류는 문화적, 경제적 발전을 이뤄냈을 뿐아니라 구성원들의 행복감도 훨씬 높였다. 인류는 돕고 배려할 때 지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발전했고 더 행복했다는 이야기다.
자본주의가 짓밟은 것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인류의 공동체 정신이었다. 300년 역사의 자본주의 아래 살면서 우리는 상호부조의 중요성을 너무 쉽게 잊고 말았다
경쟁을 통해 남을 짓밟는 일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가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크로포트킨의 외침을 진심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이 인구절벽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소비의 침체라고 했다. 문제가 소비의 침체 라면, 해법은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본질은 고령화에 접어든 노 인들이 마음 놓고 소비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당연히 강력한 노인복지 시스템이다. 그리고 왕성한 소비를 즐길 40대에게는 걱정과 불안, 공포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 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l)" 였다. 우리가 인구절벽을고민하는 자본가들에게 해줄 말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절대로 인구 감소가 아니다.
"문제는 복지와분배야, 이 바보들아!"

인류의 역사는 땅 위에서 이뤄졌다. 땅을 지배하는 자는 그 땅 위의 모든 것을 가질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자연의 피조물 중 하나일 뿐인 인류가, 자연 그 자체의 기반인땅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수억 원에 이르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평범한 서민이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30년 동안 월급을 꼬박 모아 야한다. 헨리 조지의 다음과 같은 외침들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땅값은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서 온기를, 배고픈 사람에게서 음식을, 병자에게서 약품을, 불안한 사람에게서 평온을 빼앗는다."

"지대는 과거에 대한 도둑질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도둑질이며, 미래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어린이들의 타고난 권리를 빼앗는 사악한 절도이다."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를 부르짖은 이후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 시스ODE템 안에 녹아들었다. 경제의 핵심은 기업에 있다고 믿었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미신도 더 확고해졌다. 이게 바로 대공황 직전까지 주류경제학이 신봉했던 신념이었다.
하지만 그 시스템 아래서 살았던 지난 25년의 결과는 어땠나? 소득 양극화와 민중의 빈곤화만사정없이 심화됐다. 부자와 기업을 부유케 하면 떡고물이 아래로 흘러 민중들도 부자가 된다는 낙수효과는 한마디로 거짓이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경제의 틀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낙수효과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분수효과다. 분수효과란 "대기업과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사람들을 먼저 잘살게 만들어야 그 재산이 분수처럼 위로 솟아올라 경제 전체가 좋아진다"는 주장이다. 케인스의 철학이기도 하고, 소득주도 성장론의 철학이기도 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나 힘겨운 일상생활에 모든 힘을 빼앗기는 사람은 내일이후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보수적이다. 이것은 유한계급이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품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보수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 우리 현실이 그렇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진보를 고민할시간 따위가 주어지기는 하나? 진보를 위해서는 주변을 돌아보고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은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철저히제제에 순응해야 한다. 찢어지게 가난할수록 시키는 일에 순응해야 그날 일당이라도받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진보에 대한 고민은 사치다. 세계적으로 선거를 해보면 보수파를 지지하는 주요 지지층이 빈곤계급이라는 사실은 베블런의 통찰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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