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줄 아는 자녀 양육 - 자기 삶에 책임질 줄 아는 아이를 위한 바운더리 세우기 NO 시리즈 3
헨리 클라우드.존 타운센드 지음, 이기섭 옮김 / 좋은씨앗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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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세 가지 역할부모는 매우 상이한 여러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은 부모를 코치로, 어떤 사람은 경찰관으로, 어떤 사람은 친구로, 어떤 사람은 하나님으로생각한다. 부분적으로는 이 모든 역할들에 나름대로 진실이 담겨 있다.부모나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 후견인
* 관리자
* 공급자

성격이 미래를 결정한다면, 아이를 키울 때 무엇보다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안전하고 확실하고 생산적이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성격을 갖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부모를 비롯해 아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은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자녀 양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이가 미래를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성격을 갖도록 옆에서 돕는것이다.

자녀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아이에게 자신의 바운더리에 속한 들, 이를테면 감정과 대도와 행동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문제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누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했어"라며 누나를 탓하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같은 식으로 말할 것이다. 책임감 있는 어른은 언제 "제 잘못입니다. 제 책임입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지 분명히 안다. 그런 깨달음이 있어야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자랄희망이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자기 삶을 어떻게 대해야 바르게 사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그들을 사랑하고 삶의 바른 자세를 가르쳐 주며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인도해 주는 부모를 주셨다. 강아지에게 복종 훈련이 필요하듯 아이들 역시 훈련과 같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 주는 수준 이상으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즉 부모가 얼마나 책임 의식이 있는가, 책임감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가에 따라 아이가 얼마나 책임감을 잘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에 그런 의식을 스스로 키울 수 없다. 양육받는 방식에 따라 반응하고 적응할 뿐이다.

아픈‘(painful)이란 그리스어는 비통한, 마지못해 하는, 심한 슬픔을 의미한다. 결코 아름다운 말은 아니지만 훈련의 열매를 얻으려면 아픔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녀의 고통을 지나치게 자신의 고통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파종과 수확의 법칙을 방해한다. 아이가 자라서 훗날 그 고통을 겪을 게 아니라 지금 경험하게 하라. 고통은 반드시필요하다. 무책임의 결과가 훗날 실직이나 이혼이 아니라 지금 약간의혜택을 잃는 것일 때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

그럼에도 이 같은 상황에서 아이는 여전히 책임을 배워야 한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교만하거나 문제를 부인하지 않고 정직하고 겸손하게 문제를 인식한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문제가 사라지기를 막연히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청한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믿을 만하고 인격적인 사람을 선택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도움받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감사한다.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현실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개입하지 않되 아이의아픔에 공감하고 현실의 법칙을 배우는 과정을 격려해야 한다. 그것이다른 사람들의 바운더리를 존중하도록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처방전이다. 그러나 부모로서 이런 일을 해내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부모들이 가르칠 때 아이에게 창피를 준다. 아니면 학교나 다른 아이들을 비난하면서 자기 아이 편만 든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가 현실 세계에서 직접 세상살이의 교훈을 배우게 하고, 이때 아이의 고통에 함께한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의 경계선 뿐만 아니라 바깥 세상의 경계선까지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여기에는 사랑과 제한만이 존재한다. 제한을 설정할 때 공감이야말로 엄마가 버티고 서야 할 반석이다. 캐시는 설명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영화를 보러 가지 못하게 되어 이만저만 좌절하고 화난 게 아니기때문에 어떤 설명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엄마가 캐시에게 사랑과 공감만을 가지며 제한선을 지킨다면 그 제한은 현실이 된다.

슬픔은 저항이 설 자리를 잃고 현실에 자리를 내어줄 때 나타나는 표시이며, 이제 아이가 싸움을 포기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어떤 제한과 마주칠 때 이런 식으로 순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항을 지나 수용으로 넘어가는 법을 배운 사람은 중요한교훈을 얻는다. 삶은 때로는 슬프다.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정말 슬프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삶이 바뀔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거기에 매달려 힘들게 싸우는 어른들을 생각해 보라. 이런 삶의 교훈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들이얼마나 불쌍한지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어떤 것을 잃고 슬퍼하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부모가 현실을 지키면서 공감해 준다면, 아이는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헤쳐 나가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바운더리를 존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안다. 부모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않으면서 그것을 아이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또현실의 제한에 대한 존중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것보다 더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아이가 울거나 불평하면 큰일나는 줄 알고 원하는 것을 그냥 들어줘 버리는 부모는 아이에게 바운더리의 개념을 결코 길러 줄 수 없다.
아이의 성품을 성장시켜 줄 수도 없다. 아이가 숙제나 그 밖의 의무, 자기가 맡은 일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행사나 놀이등에 대해 울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질문에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 길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린 아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넘어져도 일으켜 주지않고 목발에 의지해 혼자 일어날 것을 요구하셨던 우리 어머니도, 아이가 없는 방에 가서 울면서 친구와 통화했던 일을 기억하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자녀의 것과 분리해 따로 간직하라.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은 타인이 참여하지못하느니라" (잠 14:10). 우리는 자기 몫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아이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균형 잡힌 감각을 갖게 해주고 싶다면, 부모는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어떤 종류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만족을 경험하고, 또 다른 종류의 요구에 대해서는 좌절을 경험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경험을 적절히 제공하려면 베푸는 기술, 제한하는 기술, 품어 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능동성이라는 선물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모든 일을 능동적으로 하려는 성품을 심어 주는 것이다. 능동성이란 선물은 어떤 일을 솔선해서자발적으로 행동하려는 태도다. 아이는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요구에응답하는 것은 항상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지 다른 누구도 대신해 주지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가 당연한 일을 했을 때 지나치게 칭찬하지 말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오.
히려 아이가 진실을 고백하거나 정직하게 잘못을 뉘우치거나 위험을무릅쓰고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마음을 열고 행동할 때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한다. 아이가 능동적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하며 자신의 특성을 키워 갈 때 역시 많이 칭찬해 줘야 한다.

아이에게 바운더리를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강요당하는 사람은 성숙해지거나 도덕적 선택을 할 자유가 없다. 바운더리는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에 책임짐으로써 보다 책임감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성품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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