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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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시체가 주는 이 서먹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서둘러 고전의 메시지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들지 말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콘텍스트의 경관을 꼼꼼히 감상해야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고전의 메시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서두르는 동안 콘텍스트가 주는 다채로운 경치는 모두 놓치게 되고, 경주끝에 얻은 만병통치약은 사이비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명된다. - P16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 P17

 왜 평생 배우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셨죠? 왜사랑에 대해 침묵했나요? 어떤 박해가 두려웠나요? 고요히 술에 취해 있던 그는 나직하게 대답했다. 사랑은 너무중요한 단어이기에 쉽게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고. 그래서 침묵했다고,
- P30

어디 정치인뿐이랴. 권력자하고 충돌하지 않으려고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아첨가, 비판을 주고받기 싫어서 좋은게 좋은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봉합충, 시시비비를 가리지않고 늘 중립만 강조하는 중립충, 자기편이면 무조건 싸고돌며 덕담만 일삼는 덕담충, 염라대왕은 이들을 위해 가장 잘 타는 지옥불을 지피고, 사약보다 뜨거운 물을 끓이고 있을 것이다.
『논어』에 따르면,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결코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이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 낫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제대로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미워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 P94

인간은 무지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뭘 잘 모른다고놀랄 필요는 없다. 뭘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무지를 안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채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절망하기에 충분하다.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는 가짜 지식을 섬기고 있을가능성이 높다. 버나드 쇼는 말했다.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무지보다는 가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마치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라고 한 것처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 P151

21세기한국형 파놉티콘

국가의 그러한 꿈은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 마포구에서도 발견된다. 마포구에 위치한 어느 길목에는 사람들이 종종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곳이 있다. 이에 참다못한 공무원들은 근 거울을 달아 놓고 거기에 붉은 글씨로 "당신의 양심"이라고 써 놓았다. 왜 양심 혹은 가슴은늘 붉은색인가. 하여튼, 이곳에 몰래 쓰레기를 버리러 온사람은 그 큰 거울을 마주 보게 되며, 그 거울 속에는 쓰레기를 버리려는 자신이 비치게 된다. 당신의 양심이라는크고 붉은 글씨와 함께. 이것은 21세기 한국형 파놉티콘이 아닐까.  - P170

단조로움과 화려함의 대조가 빚는 간극이야말로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간격이다. 지배층은 자신의 아름다움과화려함이 두드러지도록, 피지배층은 초라하고 단조로운상태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피지배층이 지배층의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순간, 그 피지배층은 지배층의 지배와 사회의 위계질서를 감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아름다운 사람이 뱉는 침과 그가 때리는 따귀라면 감수할용의가 있는 것처럼,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니, 부러우면지배당하는 거다.
- P198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는 데 치중하는 역사서는 모사의 관점에서는 훌륭할망정 창의적인 재현으로서는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뛰어난 역사책은 해당 과거를 그대로 복제해서 전시하려 들지 않고, 보여주고 싶은 어떤 특질을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설득력 있게 전달해준다. 과거를 복제하려고만 드는 역사가는 늘 ‘더 진짜인 사료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이런식이라면 역사가는 패배하기 바쁜 나머지 자신의 역사책을 결국 탈고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서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사료를 얼마나 핍진하게 반복하고 있느냐에 의해서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하여 얼마나 잘 이야기해주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사료는 필수불가결한 밑바탕이지만, 역사 그 자체는 아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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