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를 들면, 자기 마음이나 지성에 따라 다른 길이 끌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에 온전히 복종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신적 계시를 통해 진리를 확인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기댈 수 있는 믿을 만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계시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인간의 이성으로 계시에 순복하면 그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을수 있다. - P74
더 많은 예가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은, 사업, 자녀 양육, 직장, 결혼 등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다음과 같은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각으로 옳음. 적절성, 선, 진실 등을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초월적인 도움이 필요한가? 히브리인은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인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고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큰 그림을 이해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인에게는 만인이 따라야 할 객관적 근거나 도덕 기준이 없다. 그들에게는 성경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었다. 그들이 인격적이고 무한하신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리스의 대중은 수없이 많은 유한한 신을 믿었고, 철학자와과학자는 말 한마디 못 하는 비인격적인 자연만을 신으로 믿었다. 객관적 계시와 그에 따른 도덕률은 그리스인의 사고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삶에 필수적이지도 않았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도덕과 사회법, 가족의 삶, 사업 그리고 인간관계는 인간이 스스로 제정한 기준에 따라 규제되었다. 그 결과 사는 법과 가치에관한 다양한 생각과 표현이 존재했고, 이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 P76
인간은 이러한 법을 위반할 수는 있어도 그 권위를 무시할 수는 없다. 가인에게 동생 아벨을 죽일 자유가 있다고 해서, 자신의행위를 정당화할 자유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절벽에서뛰어내릴 ‘자유‘뿐만 아니라 도덕률을 어길 ‘자유‘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로 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선택을 막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그에게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도 막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땅에 떨어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따라서그는 전혀 자유롭지 않다. ‘사랑할 자유‘나 ‘선택할 자유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하기 전에 그 결과를 반드시 상고해봐야 한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도덕률을 무너뜨릴 자유는 없다. 하나님의 법이 지켜지지 않을 때 그 법은 인간을 무너뜨릴 뿐이다.이것은 문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 P81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세상을 초월한 법과 질서에 순종하여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선을 위해 규정하신 테두리를 지키며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한자유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자신을 두는 것이다. 그것은 상황과상관없이 성령을 의지하여 이루어내는 내면적 자기 절제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 존재의 가장 높은 선함에 항상 집중하신다. 따라서 성경은 사람의 의무와 규칙을 가르치는 데 주저함이없다. 뜨거운 오븐에 손을 대려는 아이에게 부모가 경고하는 것이 사랑이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시는 것은 신실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은 곧 그분의 사랑과일치한다. 하나님의 법을 선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법도 기쁨으로받아들인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추구하며 주님의 법을 기뻐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시 1:3) 하게 될것이다. - P83
우리는 때로 인간의 장애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질문한다. 이질문의 답은 장애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찾을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약자가 지닌 놀라운 힘이다. 분명 하나님은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우리 안에 더 큰 내면의 장애가 있음을 깨닫는다. - P109
그러므로 모든 어린이는 신적 기원과 재능을 지닌 특별한창조물로 받아들여야 한다.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한 개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하며, 개인의 가치는 그 아이의 미래 모습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수립되어야 한다. 요점은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적절한 존중을 받기위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자라나야 할 필요나) 성장할 필요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필요도 없고, 엄마 배 속에서 수정된 순간부터 온전한 인격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 가치는 외모나 힘 혹은 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바탕을둔다. - P111
전제는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뜻 들었을 때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대조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않다.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존재라고 해도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배워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며, 부모의 권위를 따르고 인정하는 훈련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복종해야 할 더 높은존재가 있음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 만약 아이들이 부모의 더 높은 뜻에 순종할 수 있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 사회라는 더 큰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겠는가? - P114
공식적으로 성경 공부를 하든 안 하든, 부모는 교사다. 가르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의 일상을 보고 들으며 배운다. 또 부모에게서 배우거나 자녀와 부모가 서로 깨우치게 되든 어쨌든 학습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 자식관계의 본질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알도록 가르치지 않는 것은 곧 아이가 하나님을 무시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배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는가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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