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시대가열리다.
계몽주의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이루려는 이념인가? 17세기 후반과 18세기는 ‘이성의 시대‘라고 불린다. 이는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가 미신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맹목적인 신앙에대해서도 비판적인 거리를 취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르네상스와인문주의에서 시작된 발전 과정이 이제 그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든것이다. 무엇보다도 영국과 프랑스에서 새로운 정신적 사조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당시까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 종교 · 국가 ·사회·경제에 관한 모든 견해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엄격한 이성의 잣대로 이를 재검토했다. 이성에 따른 합리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관념은 마치 과학 실험에서처럼 파기되었다.
이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후 제네바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사회계약론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 그런데 도처에서 인간은 사슬에 묶여 있다." 바로 이러한 사슬을 루소 로크 칸트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의 계몽주의자들은 깨뜨리고자 했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들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개인의 자연권을 보호해 주는 공동체를 결성해야 한다. 사람들은 계약을 통해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모두의 권리와 의무를 확정한다. 또 어느 한 사람이 지나친 권력을 휘두르지못하도록 권력은 분산되어야 한다. 즉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 기관과이를 수행하는 기관은 분리되어야 하며, 모든 것이 올바로 집행되는지를 감시하는 기관도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통치자는 신이 아니라 국민에 의해 권한을 위임받는다. 통치자의 임무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자유를 수호하며 인간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통치자가 국민과 맺은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신뢰를 오용할 경우에 국민은 그를 물러나게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혁명적이고 새로운 사상은 물론 당시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절대주의와 대립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대부분의 제후들은 이를 거부했다. 단지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그리고 앞 장에서 잠시 언급된프로이센의 왕자 프리드리히만 이 계몽주의 사상의 영항을 받았다.
의회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하원과 각 주마다 두 명의 의원을 파견하는 상원으로 이루어진다.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는 권력 기관, 즉 ‘입법부‘라면, 강력한 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행정부‘는 의회에 대해 독립적인 권력 기관으로서 제정된 법을 집행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심판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법부‘, 즉 연방 최고법원의 역할은 헌법과 법률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권력 분립의 원칙은 이렇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 의해 처음으로 철저하게 현실에 적용되었다. 이제 어떤 개인이나 기관도 결정권을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게 된 것이다. - P181
하지만 나폴레옹은 정복 전쟁을 벌인 야전 사량관으로서보다는 정부의 수장으로서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다. 그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가1804년에 제정된 『민법전이다. 나폴레옹 법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법전을 통해서 혁명을 통해 제기된 주요한 요구들이 현실화되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적용되는 단일한법, 법 앞에서의 평등, 개인의 자유, 신분제 폐지, 출생보다는 업적에 따른 공직 임용, 영업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 종교의자유, 법률적 혼인 제도의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나폴레옹 법전은유럽과 전 세계 민법의 본보기가 되었다. - P175
이 대목에서 ‘우익‘과 ‘좌익‘의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개념은 원래 프랑스 의회의 의석 배치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의회에서는 의장의 자리에서 볼 때 보수적인 의원들은 우측에, 자유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의원들은 좌측에 앉았다. 그러니까우익과 좌익이란 표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오늘날에는 정치적인견해가 아주 극단적인 경우 보통 ‘극‘이라는 말을 덧붙인다(극좌, 극우),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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