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에서 바울이 부모 공경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그것이관념적, 도덕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도 미래의 새로운 창조와 약속의 땅을 위해 준비되는 중이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것이 의무라서가 아니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이 있어서다. 우리의부모가 어른으로서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는 미래를 위해우리를 훈련시키듯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수 없는 미래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우리 또한 다음 세대가 그런 미래를 갖기 바라기 때문에 그들을길러낸다.
우리가 가정에서 훈육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우리에 대한 하니님의 훈육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문제는 ‘후육을 징벌이나 지적, 고치는 것으로만 본다. 뭔가 잘못한 것에 대한 반응이 훈육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 역할의 불쾌한 측면이다. 그래서 어떤 아내가 남편에 대해 이런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부모 역할에서 모든 재미있는 것은 아빠가 다하고, 나는 훈육만 해야 해요." 다시 말해 남편이 소극적이어서 자신이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려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가 속상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큰 차원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약은 교회의 치리(discipline)에 대해서 말한다. 흔히 치리라고 하면 마태복음 18장 15-20절의 마지막 단계로서, 스캔들이 적발되었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서 추방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도 물론 훈육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치리는 교회제도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제자 삼는 위임령에 속한다.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훈육은 회복시키는 것이라기보다 형성하는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이라기보다 긍정적이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러한 소속감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는 자녀를 후유하고 제자로 양육할 때 그들을 경작해야 할 대상이나 기계 부품이이니 이격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각각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첨단기술의 시대에서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을 포함하여 만사를 기술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다섯 단계만 밟으면, 고집 센 아이를 바로잡을 수있다거나 (아기나 부모가 눈물을 쏟지 않고 배변 훈련을 마칠 수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모든 삶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리가 있다. 어떤 일반적인 원리들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 그러나많은 구체적 조항, 가령 어떤 종류의 수면 패턴이나 섭식 방법을 선택할지, 어떤 유형의 학교를 보낼지, 또한 언제 시작할지 등은 각각의 자녀와 가정마다 다르다. 이런 것들은 보편화되면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
양육의 목표는 자녀가수응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 복종할 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양육의 목표는 올바른 종류의 싸움이다. 우리는 자녀들이 하나님이 약속하는 나라를 사랑하고, 현재의 점령 세력에 대항해 싸우기를 바란다. 우리가 훈육하는 것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그것에 실패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니 누구에게로 가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정의와 사랑, 진리와 은혜가 만나는 복음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양육이다.
나니아 연대기 1편에서 에드먼드는 하얀 마녀가 건넨 터키 젤리의 유혹에 빠져 아슬란 왕과 형제자매들을 배반하고 하얀 마녀와 결탁하게 된다. 하지만 에드먼드는 우여곡절 끝에 형제들에게돌아오게 된다. 아슬란이 에드먼드를 데리고 와서 말한다. "자, 네희의 동생이다. 그에게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57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에드먼드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특히 우리 자녀에게 말이다.
플레밍 루트러지(Fleming Rutledge)가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사람은 가끔씩 자신의 힘으로 회개하고 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은혜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초에 죄 인식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는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를 둘러싸지 않았다면, 죄를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죄에 완전히 장악되어있었을 테니까… 그러므로 죄를 드러내고 자백했다면, 이미 하나님의 구속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62 정말 그렇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야기한 상처나 고통스러웠던 상처로부터 해방되기를갈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게 임한 것이다. 그 지혜로운 노인이자녀를 떠나보내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 친구에게 말했듯이, "주께서 그 모든 것을 되찾게 하신다."
가족은 매우 중요하고, 우리로부터 시선을 돌려 우주의 의미를 바라보게 하는 이정표이다. 당신의 가족이 어떻든 가족은 당신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분주함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말이다. 멈춰 서서 그 축복을 찬찬히 살펴보라. 그것을 통해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이라. 정확히 그 중요 함 때문에 가족이 두려울 수 있다. 아마도 당신은 겁이 날 것이다.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두렵고, 가족을 잃게 될까봐 두려울 것 이다. 하지만 그것도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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