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비난 본능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야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최근에 내가 이 본능을 느낀 것은 호텔에서 샤워를 할 때였다. 온수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초 지나 쩔쩔 끓는 물이 쏟아져 살을데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배관공에게 화가 치밀었다. 이어서 호텔 지배인, 그리고 찬물을 쓰고 있을지 모를 옆방 투숙객에게 차례로 화가 났다. 하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누구도 내게고의로 해를 끼치거나 태만하지 않았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수도꼭지를 천천히 돌리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그걸 원해서 그리되었다고 믿고 싶고, 개인에게 그런 힘과행위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는 예측불가능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