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
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놈의 한국사회에서살아가려면 견뎌야 하는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말이다.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식 의리와 장유유서와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와 모난 돌 정 맞기와 다구리와 폭탄주와 용비어천가와 촌스러움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다름‘은 물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가능한 한 참아주는 것, 그것이 톨레랑스다. 차이에 대한 용인이다. 우리 평범한 인간들이 어찌 이웃을 ‘사랑‘ 하기까지 하겠는가.그저 큰 피해 없으면 참아주기라도 하자는 것이다.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새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로 함께 사는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채 글쓰기, 여행, 인간관계, 모두 내게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은 과분한 행운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그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팔짱 낀 채 ‘한계‘ ‘본질‘ ‘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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