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우리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고 사나 죽으나 한결같이 우리를 위로해 주는 믿음의 위대한 전통입니다.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하이델 베르크 교리문답은 우리의 삶들과 그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랑하는 이들 모두, 결코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속했다는 위대한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믿음의 유업 

기독교 신앙은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아주 매력적인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엮어 갑니다. 한 주 내내 우리는 삶의 여러 문제에 압도 되어 "나의 건강, 나의 자녀들, 내 직업, 재정적인 염려"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러다 주말이 되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교회로갑니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사셨고 또 지금도그렇게 살아계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예배가 주는 최상의 것,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삼위 하나님의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선택, 하다못해 아침 식사로 어떤 시리얼을 먹을까 고민하는것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는 엄청난 도전들을 어떻게 맞서야 할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선택도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지는 못합니다. 인생이 각자의 손에 달린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 따라 선택을계속해 가는 것은, 환상 가운데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염려와 두려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은 자신이알지 못하는 신비를 추구하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비참함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비참함에 그대로 뭉개고 사는 것보다 더 악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항상 무엇인가가 없는 것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들의 엄연한 시체입니다. 창조주만이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저마다의 작은 낙원에 있는 조그마한 결핍들은 우리를 사납게 불안과 염려로 몰아갑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받아누리는 많은 열매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대신, 우리에게 없는조그마한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것을 잡으려고 우리가 가진 피조물로서의 한계조차 무시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고는 우리의 삶에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손해를 입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 자체가 낙원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야말로 실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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