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는 왜, 걸어서 4개월이나 걸리는 고된 여행길을 마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 (스 7:10)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번째 결심은 ‘율법 연구‘ 입니다. 먼저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귀동냥으로 들어서 "그런가봐 하는 식으로 알면 안 되는 것이지요. 성경이 어렵고 딱딱한 책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성경에 쏟은 시간이 너무도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길 기뻐하는분이십니다.
그의 두 번째 결심은 ‘준행 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나 자신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이 실제로 말씀과 일치하는지 늘 점검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스라는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안 사람들의 사명은 그 생명의 지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신앙을 계승하는것입니다. 지입니다.
느헤미야 리더십
1. 설득하여 함께 가는 것 2. 협력을 얻어내는 것 3. 방해자를 물리치는 것 4. 기본질서를 개혁해내는 것
현대 사회는 전보다 더욱 물질 중심적이고, 더 나아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러한 생각과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재물의 사용‘, 즉 ‘소비‘의 방향은 결국 그사람의 자기 정체성‘ (identity)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일 수있습니다. 재물의 중요성과 가치가 무게 있게 생각되는 사회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는 결국 그 사람의생각과 삶의 방식을 드러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재물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관계와 계약이 들어 있습니다. 계약으로 보면 십자가는 처벌이며 심판의 장소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롬 6:23)이라고 정하신 그 계약에 따른 것입니다. 온인류가 그 죄로 인해 심판받아야 하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또한 관계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진 장소인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방법은 그냥 말뿐인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음이라는 가장 처절하고 극한 대가를 통한 완전하고 영원한 용서입니다.우리는 은혜와 계약이라는 말을 나눠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구약은 율법이며 계약이고, 신약은 은혜와 사랑이라고 나눠버립니다. 이런 단순한 이분법은 옳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계약과 관계, 처벌과 용서 공의와 사랑이 함께 완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방향만으로 십자가를 볼 것이 아니라 관계와 계약의 두 방향을 ‘통(通)으로 봐야 합니다.
부자 요셉과 니고데모
예전에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에 관하여 물었던 유대관원 니고네모(요 3장)가 예수님의 장사를 위해 몰약 섞은 침향 백 근 정도를 가지고온다(요 19:39). 예수님의 사 역이 실패한 것만 같은 시기 에 니고데모와 부자 요셉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지위를 이용하여 예수님의장사를 치른다. 아무도 나서 지 않을 때, 자신의 피해를예상하면서도 기꺼이 주님을위해 일어났던 요셉과 니고데모는 우리의 재물과 지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