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문제들과 만납니다. 단순하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거나 어떤 담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질문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길을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일 것입니다. 수학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질문을 거듭하며 우리의 사고 능력을 고양시켜온 학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페르마의 원리, 데카트트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까지, 이 들은 어렴풋한 직관을 수학을 통해 개념정리 후 새로운 의문들 제기하는 밥식으로 진화함을 알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이들은 마치 바톤을 넘기듯 의문에 답을 내고 난제를 남겼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써 그때마다 필요한 프레임워 크를 만들어가며 점점 명쾌한 이론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 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해결점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정확한 프레임워크와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확률론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선하고 악한 것도 확률론의 지배를 받는다는것입니다. 엘리엇이 묘사한 베켓 대주교의 주장처럼 우리가선하다고 결정한 것도 악한 결과를 가지고 올 확률이 있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약간의 선한 효과가 있을 수 있기때문이죠. 그런 것들도 확률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질문을 거꾸로 돌릴 수도 있겠지요. 선하고악한 것은 얼마나 확률적인가.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라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 approximation‘ 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과정, 항상 바꿀 수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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