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따뜻한 추억

담요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이것이 해피엔딩 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나는 읽는 내도록 레이나와의 행복한 결말을 생각했다. 둘이 결혼하고 함께하면서 행복한 미래를 지내는 그런 결말.

어린 시절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 추억을 가진 크레이그. 그 기억을 레이나와의 행복함으로 덮어버리길 기대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내용을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의 인생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담요와 같은 꿈. 가질 수 있지만 여러 현실적 상황으로 인해 가질 수 없는 따뜻함.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려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하는 행복한 기억. 어떨 땐 티격태격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어떨 땐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사이가 되는 동생. 그 동생의 불행을 막아줄 수 없는 그런 형.

학교를 다니면서 시작되는 끔찍한 기억. 친구들에게 육체적으로 무시당하고 선생님마저도 무섭고 자신을 무시하는 기억.

그런 현실에서 도망가고자 했던 그는 가출을 꿈꿨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고, 도망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꿈 속 과 그림 뿐 이었다. 그리고 신앙.

어린 시절 주말학교에서 말하는 세계, 천국.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천국이라고.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서 현실이라는 세상에 더욱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추억과 기억마저도 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았던 그가 주말 삭교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레이나. 그녀로 인해 추웠던 그의 삶은 따뜻한 담요를 덮은 삶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비판하는 종교로 인해 크레이크는 회의를 느끼게 된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이 점점 느껴지던 그 때, 그는 레이나에게서 편지를 받게 되고 그 편지 덕분에 다시 빈 여백 위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레이나의 편지가 끊기면 몸이 아프고, 레이나의 전화 한통에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그의 모습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레이나와 함께한 2주. 아마 그에겐 그 때가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날 일 것이다.

레이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천국이었겠지만, 그는 레이나 없이는 천국에 있을 수 없었다. 늘 자신과 함께 있어주길 바라지만 레이나는 그럴 수 없었다.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황만을 바라보고 있는 크레이그를 보며 오래가지 못할 행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레이나를 보면서 기억하게 되는 어린 시절 자신의 비참한 모습들. 또 그녀로 인해 기억하게 되는 어린 시절 행복한 모습들. 정말 그는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는 그동안 서먹했던 동생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서서히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정리하면서 천국이었던 그녀와도 서서히 정리를 하게 된다.

레이나의 선물 담요. 평생 그가 가져가게 될 천국에서의 추억.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에 조금은 담담하기도 뭔가 찡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자라고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 견디기 힘든 현실을 벗어나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버린 것들 중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레이나의 담요 같은 물건이 있을까? 버릴 수 없지만 곁에 둘 수도 없는 그런 행복. 너무나도 힘들 때, 그 때 한번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물건.

새하얀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지나온 발자취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

설령 그것이 한순간의 일이라 해도.

추억은 추억일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