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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그 사람
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0월
평점 :

두꺼운 인생이야기 책이 있다.
불이 붙는다.
제일 뒷장부터 차례대로.
치매.
종이가 불에 타버리듯 기억이 사라지는 병.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병이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소중한 추억마저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허탈감.
자고 일어났을 때 한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과 서서히 하나씩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주변사람들이 제일 걸리지 말았으면 하는 병이 바로 치매다.
그동안 치매에 관한 많은 책을 보았지만 이런 책은 처음이었다.
치매라는 병에 걸린 사람이 써내려간 본인의 이야기.
버스 창으로 유령 같은 내 모습을 힐끗 보니, 다른 두려움이 떠오른다.
경계를 넘어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될까봐, 나를 '나'로 만드는 요소를 잃을까봐 두렵다.
나 아닌 존재가 대신 결정해야 되는 때가 올까봐 겁난다.
본인의 이야기를 적어내려 간 것이기에 마냥 병인 것처럼 느껴지던 치매가 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고, 깜빡거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간다.
본인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덤덤하게 써내려가는 느낌.
옆에서 보는 가족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 일이지만 내 미래의 모습을 알고 그 일에 대비하고 준비해나가는 그녀가 대단해 보였다.
호스피스 병동은 심란한 곳이 아니었어.
그곳 환자들이 잘 살아온 것처럼 잘 죽을 자격이 있다고 말없이 속삭이는 분위기였지.
어머니의 병실은 컴컴한 복도 끝에 있었어.
정말 그랬을까?
아니면 기분에 불과할까?
하지만 일단 병실에 들어가면, 창밖에 목련과 벚나무가 빼곡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지.
치매라는 병에 걸리면 모든 사람들이 치매의 끝만을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싫어했다.
그녀가 서있는 곳은 치매의 입구 언저리.
그렇기에 아주 약간의 증상이 시작된 정도지만 그녀는 직장을 잃었다.
하루하루 그녀가 잃는 것은 많았다.
그렇게 어디까지 왔는지 쉽게 알지 못하는 병이기에 주변인들의 걱정은 더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 병의 증상을 확인하고 이겨나가기 위해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다.
단순한 목숨연명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의지.
제3자의 입장에서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적혀있는 책.
나에게 온 병을 내 입장에서 적어 내려간 책이기에 어쩌면 치매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치매에 걸린 사람을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책.
딱 그 느낌이었다.
얘들아, 너희가 방에 들어왔는데
내가 못 알아보는 날이 올 거야.
그렇게 되더라도 너희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말아줘.
기억을 잃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치매라는 병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