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인상적이고 아리송한 제목의 소설은 쓰걸스의 우정을 담고 있다.
잔잔한 일상 속에 풍성해지는 삶과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리에, 다미코, 시키는 대학시절 셋이서 붙어 다녀서 쓰리걸스로 불리었다. 졸업 이후 돌싱, 싱글, 주부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리에의 귀국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그녀들 다운 일상은 발랄하게 출렁거린다.
집을 구할 때까지 신세를 좀 지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리에를 고민 없이 받아주는 친구 다미코는 자신의 방을 친구에게 내어주고 거실에서 자게 된다.
다미코와 사키는 리에다운 행동에 가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지만 리에다운 행동을 이해한다.
아주 가끔 만나는데 그리고 만나지 않는 동안 각자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데 만나면 옛날로 돌아가는 게 참 신기하다고 사키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난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그때로 돌아가게 하는 친구들 말이다. 그런 친구들이 떠오르며 그리워지게 하는 소설이다.

다미코는 보살이고 리에는 민폐 친구 같아 보이지만, 그런 면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리에의 이사 후 오리혀 허전해 하는 것은 리에 모녀였다.
연애할 때는 친구의 중요함을 잘 모르다가 연예가 끝난 후 친구들과의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다키노는 모두의 얘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친구라는 게 그렇다. 비슷한 성향이어야 친구가 될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성향이기에 더 오래 우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을 진짜 열수 있는 친구는 몇 안 되기도 한다.
나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시가 떠오른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공백이 있었어도 다시 만나면 변함이 없고 어느새 무장해제되어 떠들썩해지는 친구들
오래전 기억은 서로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고 소설을 읽으며 함께 상상하던 것의 정체는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더 오래도록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

오래된 친구답게 친구의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들어주고 끝까지 듣지 않고도 다 알아듣고는 뻔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들어주는 친구
"또 나는 남 얘기를 듣고 있네" 다미코는 생각했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 이야기를 친구가 들어줄 때도 있었다.
친구의 선택이 이해가 안 가도 로망이고 꿈이었다고 말하면 인정해 준다.
친구의 친구다움을 이해해 준다. "그래. 너 니까."
반전이나 갈등 같은 건 없지만 잔잔하고 난로처럼 따뜻하다. 미소 지으며 서랍 속에 오래된 기억을 꺼내게 하는 소설이다.
나이는 어느덧 중년이지만 사진 속에 어린아이들처럼 다시 만나면 천진난만해지는 쓰리걸스
다시 젊어지게 하는 시간의 마법가루를 뿌려주는 게 오래된 우정인가 보다.
각기 다른 삶 속에도 언제나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관계, 미래에도 각자의 삶은 다르게 흘러가겠지만 어떤 모습이더라도 나다움을 인정해 주는 친구들의 모습은 변함없을 것 같다.
공허한 모습을 내보이고 시끌벅적한 수다에 맞장구쳐줄 것이다.
쓰리걸스의 이야기는 우리들 삶 속에도 존재해서 더욱 친근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