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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브루스리에 대한 동경과 추억이 있다는 것은 이젠 중년의 나이 이상을 살아왔다는 하나의 징표가 된 것일까? 시대를 대표하던 상징들이 이제는 과거의 추억거리로 밀려남을 인지하는 순간, 나의 삶에 녹아있던 시간의 한 더미가 뒤켠으로 옮겨짐 역시 느껴야만 했다. 어쨌든, 나의 어릴적 좁다란 골목 낮은 지붕동네 시절의 이소룡은 또래아이들간의 이야깃거리이자 동경, 그리고 놀잇감이었다. 영화에서 우연히 보았던 무술비법책의 자세그림을 흉내내어 수첩에 각자의 수련자세들을 그려 동네 골목에서 연습하기도 했고, 이소룡의 근육을 만든다고 안되는 팔굽혀펴기를 연습하기도 했다. 아버지 역시 무협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지 동네에서 거의 처음으로 집에 비디오를 들여놓으시고는 쉬는 날이면 언제나 스승이나 가족의 죽음을 복수하는 제자의 무술유랑기라는 뻔한 내용의 영화를 돌려보시곤 하였다.
시대의 동경대상은 언제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란히 존재한다. 그 당시는 5공의 살벌한 시기였다. 시내와 가까웠던 우리동네는 거의 날마다 오후가 되면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최루가스가 동네로 날아들어와 동네 할머니들이나 우리는 마루에서나 골목에서 눈물을 찔끔거리고 재채기를 하며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름 무술연습이랍시고 모여서 수첩에 그린 자세들을 연습하다가도 최루가스가 심하게 날아들어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여지없이 집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심부름으로 시내를 관통하여 걸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시내를 지나며 바라본 광경은, 차들이 사라진 길에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손으로 휘갈겨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주먹을 휘두르며 가두시위를 하다가 최루탄이 터짐과 동시에 여기저기 흩어져 백골단과의 술래잡기가 벌어지곤 하였다. 건물 아래로 피신한 시민들이 서서 그 광경을 보다가 문득 거리 한복판에서 백골단의 몽둥이에 맞고 있는 대학생이 발견되면 큰소리로 항의를 하곤 했는데 그 역시 흥분한 백골단이 달려들라 치면 움츠리며 조용히 피하곤 하던 모습도 생각난다. 나름 무술연습을 했다는 어떤 치기였는지 나는 시위대와는 무관한 어린아이라는 자위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당하게 그 상황의 길을 걷는 도중 누군가를 쫒아 달려오는 백골단과 몸을 부딫히게 되었는데, 순간 둔중한 충격과 예리한 통증은 내가 가진 것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어떤 괴력 또는 넘지못할 거대한 벽같은 게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어떤 깨달음을 주었다.
아버지의 비디오 역시 때마다 삼류 무협영화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등화관제가 있던 당시, 창문커튼을 닫고 불을 끄며 동시에 모여든 동네 아저씨들은 긴장과 침묵속에 뭔가 비밀스러워 보이는 테잎을 비디오에 조심스레 밀어넣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518 광주민중항쟁을 기록한 테잎이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테잎 속에 나왔던 죽은 사람들의 얼굴, 무언가에 목과 턱이 깔려 아래턱이 눌려펴진 얼굴, 얼굴의 반 또는 4분지 1이 정확하게 없어져버린 시신들, 가슴에 칼자국이 난자한 젊은 여성...세상은 그렇게도 폭력적이고 잔인했던 때였다.
시대의 동경대상은 시간이 좀 더 지나 바뀌었다. 무협은 이소룡에서 성룡을 거쳐 바바리코트입고 담배를 멋있게 문 잘생긴 남자의 현란한 총질로 바뀌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액션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등의 음악가들로 바뀐 것이다. 시대역시 이제는 현실불가능한 액션이나 상황은 컴퓨터 그래픽이 가상을 통해 실현시켜주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었고, 세상은 나름 민주적이며 돈이 만능이 된 세상으로 변화했다. 좀 더 현실에 충실하기를 주문했던 제도교육과 내 주변의 어른들의 요구에 맞추어 내 자신의 변화를 이어가고 충분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세상의 한 위치를 자리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안위감을 내 마음아래에 깔아두고, 시대와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동경에 대한 꿈을 현실로 묵묵히 이루어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다해 공감하고 그러한 사람들을 격려한다. 내가 단 한번이라도 이런 세상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토해본 적이 있던가, 또는 뭔가 설명될 수 없는 괴로움에 소주 한 잔 털어넣어 본 적이 있었던가.
작가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이는 자체로 영화였다. 그것도 영화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글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가득한 하나의 영화였다. 개인의 이야기, 주변인물들의 이야기, 시대의 이야기가 이렇게 적절하게 배합되어 농밀하고 진득하고 감칠맛나는 소설은 흔치 않을 듯 하다. 그 안에 골고루 버무려진 작가만의 글맛과 깨알같은 재미는 이야기를 더더욱 재미나게 만든다. 소설을 풀어가는 화자의 시점이 간간히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소설을 읽는데 전혀 어려움을 만들지 않는다. 최근에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집어든 책에서 뜻하지않은 진득한 재미를 맛보았다는 사실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부담없는 해피엔딩의 눈을 뗄 수 없이 재미가득한 영화.. 나에게 이 소설은 그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