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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때때로 나의 과거인 20대 시절로 돌아가보고 싶어진다. 물론 물리적 시간속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것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 상상속에서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20대 초반의 나는 예의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에 마냥 몸을 풀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오지랖을 떨며 배우고 경험하고자 하는 수많은 것들을 시작하고, 좀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좀 더 다양한 경험과 넓고 깊은 생각을 쌓아가는 일, 내가 20대로 돌아가면 꼭 하고 싶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악마에게 내 영혼을 저당잡히며까지 하고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려 노력하는 스스로에게 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에게는 자신에 대한 그런 느낌이 없었을까, 학문에만 몰두하다 늙어버린 자신을 비관하는 와중에 만난 악마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젊어진 육체를 가지고 세상의 많은 유혹과 부와 명예를 누린다. 악마를 통해 얻어진 세상의 즐거움은 과연 악마의 것인가 아니면 인간 본성의 자연스런 욕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파우스트의 시작은 성경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악마가 파우스트를 유혹한 것도 신의 허락에 의해 이루어진 일. 재미있는 것은 학문에 몰두하며 대부분의 삶을 보내어 비관에 빠진 파우스트를 신은 가장 신뢰할만한 인간상으로 이야기한다. 반면 욥은 엄청난 재산과 처첩 그리고 자식들을 거느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험이 들어가는 모습도 반대이다. 욥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병들림으로 시험을 당하지만 파우스트는 여자와 권력과 재물에 의해 시험을 당한다. 작품이 60여년동안 쓰여지느라 그런지는 몰라도 결과까지 비슷하지는 않은데 악마에 의해 저당잡힌 영혼을 빼앗기기 직전 파우스트를 사랑했던 여인 그레트헨의 영혼과 천사들의 도움으로 구원을 받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약간의 진부함을 보여준다.
사실 전체적인 줄거리보다는 괴테가 60여년이라는 시간동안 작품속에 담은 그의 세계관을 각각의 막마다, 사건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듯 하다. 그렇지만, 그런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많은 고전을 통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시대적 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 조금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고전으로 존중을 받으면서도 작품이 쉽게 논의되지 못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게다가 시적 운율을 느끼며 읽어야 할 작품이 번역을 통하여 운율미가 사라져버리니 읽는 과정이 조금은 지루한 면이 없지않다. 인조인간 호문클루스라던지 이카루스의 추락을 연상케 하는 대목은 나름 흥미가 있지만 그것이 흥미와 개략적인 수준에서의 이해로 머물러버리는 현상은 순전한 개인적 이해력과 지식의 부족때문인지, 아니면 앞서말한 배경지식과 시대사상의 이해 부족때문인가 하는 고민만 생겨버린 듯 하다.